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현대 추상회화의 대표적 작가인 마크 브래드포드의 개인전 《Mark Bradford : Keep Walking》을 개최한다.
마크 브래드포드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대형 추상회화 작업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아왔다. 이번 전시는 마크 브래드포드의 국내 첫 개인전이자, 아시아에서 열린 브래드포드 전시 가운데 최대 규모의 회고전으로, 20여 년간의 작업 세계를 한자리에 모았다.
마크 브래드포드는 흑인, 성 소수자, 도시의 하층민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토대로 도시의 부산물을 회화의 주재료로 삼아 인종, 계층, 젠더, 도시 공간의 문제들을 탐구해 왔다. 그는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단지, 포스터, 신문지 등을 겹겹이 쌓고, 긁어내고, 찢는 과정을 거쳐 종이의 거친 물성을 드러내며, 현대 사회의 주요 이슈에 대한 시각을 표현한다. 그는 이를 통해 ‘사회적 추상화 (Social Abstraction)’라는 독자적 언어를 구축하며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왔다.
<떠오르다(2019)> / 사진 양혜정
전시는 전시장 바닥 전체를 뒤덮는 대형 설치 작업 <떠오르다>로 막을 연다. 관람객은 1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바닥에 펼쳐진 색색의 천을 마주한다. 이는 작가가 로스앤젤레스 작업실 인근 거리에서 수집한 전단지, 광고 포스터, 신문지 등을 긴 띠의 형태로 재단하고 노끈으로 이어 붙인 것이다. 관람객은 작품 위를 직접 걷고, 이에 따라 작품의 표면은 매 순간 미세하게 변화한다. 작가는 자신이 다루고 있는 작업 주제 중 하나인 도시를 신체적으로 관람객이 체험하도록 했다. 관람객은 작가가 깔아놓은 다채로운 색의 카펫을 걸으며 마크 브래드포드의 작업 세계로 들어간다.
〈떠오르다〉 위를 걸어 2전시실에 들어서면, 마크 브래드포드의 작업 세계를 여는 초기이자 대표 연작 〈엔드 페이퍼〉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브래드포드는 유년 시절 어머니의 미용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미용 도구와 미용실에 놓인 잡지에 자연스레 익숙해졌다. 미술대학에 진학한 작가는 그 익숙한 물건들을 작업의 재료로 사용했다. <엔드 페이퍼> 연작의 엔드 페이퍼(end paper)는 미용실에서 파마를 할 때 사용하는 얇고 반투명한 종이이다. 그는 엔드페이퍼의 가장자리를 토치로 그을리고, 여러 겹 덧붙여 격자 구조를 만들어냈다.
전시실에는 <엔드 페이퍼> 연작의 서문을 연 2003년, 2005년의 초기작부터 시작해 2024년에 제작된 최신작까지 20여 년에 걸친 연작의 변화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작품들이 걸려 있다.
<믿음의 배신(2024)> / 사진 양혜정
<엔드 페이퍼> 연작 가운데 <믿음의 배신>이라는 작품의 설명을 읽으며 필자는 잠시 의문을 품었다. 엔드 페이퍼의 격자무늬가 개인에게 주어지는 억압과 제한의 틀이라면 왜 정밀하고 직선적인 모양으로 종이들을 붙이지 않았는가? 또 그 격자구조를 가로지르는 흰 선이 개인의 자유와 억압으로부터의 탈피를 뜻한다면 왜 이것이 오히려 매끈하고 깔끔한 형태인가? 둘의 성격이 반대인 쪽이 더 작가의 의도를 잘 전달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큰 캔버스를 한눈에 담기 위해 뒤로 멀찍이 물러섰을 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밀집되어 한 장 한 장의 존재감은 희미해진 채 패턴을 이루고 있는 파마용 종이를 뚫고 지나가는 흰 선에서 통쾌함과 해방감이 느껴졌다. 소수자들의 존재를 지우는 대도시 안에서 작가가 이러한 억압의 구조를 뚫고 지나가려는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무제(상업 포스터)(2024)> / 사진 양혜정
이어지는 <상업 포스터> 연작은 작가가 로스앤젤레스 거리에서 수집한 전단지를 재료로 한 콜라주 회화 시리즈이다. 도시의 전단지들을 물에 불리고, 깎아내고, 겹겹이 쌓고, 찢는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진 콜라주 작품들은 울퉁불퉁하고 구겨진 표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이는 필자에게 그로테스크하기도 하고 처절해 보이기도 했다. 꼭 대도시의 피부처럼 보였다. 작가가 소수자로서 바라본 미국 도시의 일면을 벗겨내어 현재 한국의 미술관으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받았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강렬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잿더미의 왕이 되기 위해서라도 나라가 타오르는 것을 볼 것이다(2019)〉 / 사진 양혜정
2전시실을 지나 3전시실의 영상 작품, 4전시실을 거쳐 도착한 5전시실에는 거대한 설치작품 〈그는 잿더미의 왕이 되기 위해서라도 나라가 타오르는 것을 볼 것이다〉가 공간 중앙을 장악하고 있다. 관람객에게 압도감을 주는 이 대형 설치 작품은 크고 작은 지구의 모습을 시각화한 것인데, 질감과 크기가 서로 다르게 이루어져 있으며 걸려 있는 높이와 각도도 저마다 다르다. 이는 오늘날 지구가 처한 불균형과 고립의 현실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우리 모두가 같은 행성에 살고 있지만 결코 같은 세계를 공유하고 있지 않는다는 점, 즉 각자가 처한 환경과 현실의 격차를 상기시키고 있다.
<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2024)> / 사진 양혜정
전시실 벽면에는 <기차 시간표> 연작과 <신발 사이즈> 연작이 걸려 있다. <기차 시간표> 연작은 20세기 초·중반, 차별을 피해서 이주해야만 했던 600만명의 흑인들의 ‘대이주(Great Migration)’를 주제로 한다. 작가는 당시 기차 출발 시간과 지명을 담은 기차 시간표를 가져와, 이를 종이와 안료를 반복적으로 덧입히고 쌓아 올리는 자신만의 작업 방식으로 재구성하였다. 두텁고 불균질한 표면은 이주 과정에서 흑인들이 겪어야 했던 불안과 상실의 흔적을 촉각적으로 전한다.
6전시실 전경 / 사진 양혜정
6전시실은 이번 전시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공간이다. 6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는 <폭풍이 몰려온다> 연작은 특히 이번 서울 전시를 위해 새롭게 구성된 최신 연작이다. 작가는 2005년 미국 남부를 덮친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따라간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루이지애나 미시시피강 삼각주와 미시시피 해안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으며 앨라배마와 플로리다 해안가도 큰 피해를 보았다. 특히 뉴올리언스는 제방 붕괴가 발생하여 도시의 80%가 물바다가 되어 큰 피해가 났고, 6만 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자연재해 자체의 피해도 컸지만, 이후 드러난 것은 미국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었다. 피해 복구는 지연됐고, 수재민들은 열악한 환경에 방치됐다. 특히 피해 지역 주민 대다수가 흑인이었기에, 재난은 곧 인종차별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는 ‘폭풍’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자연의 힘과 정부의 피해 복구 과정에서 드러난 소외된 삶에 주목하였다. 전시장 전체를 둘러싼 검은 벽지와 금빛 무늬는 폭풍의 결을 상징하며 공간에 긴장감을 더한다. 마크 브래드포드는 종종 서로 다른 사건과 인물을 병치하여 그 속의 공통된 의미를 드러내는데, 총 여섯 점으로 구성된 〈폭풍이 몰려온다〉 연작에서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역사적인 퀴어 인물 윌리엄 도어시 스완을 함께 다룬다.
윌리엄 도어시 스완은 미국 최소의 드랙 퀸으로 알려진 흑인 인물로, 노예로 태어났지만 자기 표현과 공동체의 자유를 위해 싸운 선구자였다. 이곳에서 허리케인은 거대한 힘에 의해 삶이 뒤집히는 경험을, 윌리엄 도어시 스완은 사회적 편견과 억압 속에서도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투쟁을 상징한다. 이 둘을 병치한 브래드포드의 작업은, 허리케인의 물리적 파괴와 억압 사회에서 정체성을 지키려는 싸움은 모두 거대한 폭풍 속에 서 있는 인간의 이야기임을 전하는 듯하다. 결국 작품 속 ‘폭풍’은 기상현상을 넘어 사회적 폭력, 차별, 역사의 소용돌이를 다 함께 비유하는 상징이 된다.
전시 제목인 ‘Keep Walking’처럼, 전시는 작가의 친구인 멜비니 로스앤젤레스 거리를 걷는 뒷모습을 담은 영상 작품 ‘나이아가라’로 마무리된다. 쓰레기가 나뒹구는 거리에서 마른 몸의 흑인 남성이 묵묵하게 걸어간다. 작가가 흑인 퀴어 남성이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버텨내는지를 보여주며, 동시에 소수자들에게 주변 환경에 괘념치 않고 앞으로 계속 걸어갈 것임을 독려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Mark Bradford : Keep Walking》은 대형 추상 작업 특유의 압도감과 통쾌함 속에 사회 문제를 직시하게 만드는 전시였다. 특히 설치작품 〈떠오르다〉는 단순히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는 방식을 넘어, 관람자가 직접 몸으로 경험하게 만들었다. 이로써 브래드포드가 전하려는 사회적 메시지와 소수자에 대한 존중이 더욱 직접적으로 와 닿았다.
다만, 전시 내용의 인상 깊음과는 별개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공간은 관람자 친화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한국어 없이 영어로만 표기된 안내 문구(‘in’, ‘out’, ‘push’ 등)와 다소 복잡한 동선은 아쉬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는 마크 브래드포드가 지난 20여 년간 걸어온 작품 세계를 폭넓게 조망하며, 예술이 사회와 맺는 관계를 깊이 성찰하게 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작가는 화려한 색채와 거친 질감, 그리고 그 속에 숨은 목소리들은 예술이 어떻게 현실을 증언하고 저항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는 전시장을 나선 뒤에도 한참 동안 여운을 안겨주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Mark Bradford : Keep Walking》 전시는 2025년 8월 1일부터 2026년 1월 25일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