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4일부터 9일까지 아시아 유일의 음악영화제가 열린다. 올해로 21회를 맞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JIMFF)이다. 음악은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영화 앞에 ‘음악’이라는 키워드가 붙는다면, 단순히 음악이 삽입된 형태를 넘어서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음악 영화란, 작품 내에서 음악이 또 다른 언어 형식으로 사용되는 영화다.
언어는 전달력에 한계가 있다. 국가는 각기 다른 언어 체계를 사용하고, 개인의 언어는 주관성을 지닌다. 그런데 여기에 뉘앙스가 더해지고, 나아가 멜로디가 입혀질 때, 언어는 더 멀리 도달할 수 있다. 멜로디에는 감정이 있다. 감정은 보편적인 요소이기에,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도 서로 공유될 수 있다.
<키리에의 노래>는 2023년에 개봉한 이와이 슌지 감독의 음악 영화로,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주인공 ‘키리에’는 말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노래를 할 때만큼은 당당하게 목소리를 낸다. 키리에는 언어가 아닌 음악으로 말한다.
영화는 삶과 닮아있다
이 영화는 다층적인 서사 구조를 갖는다. 말을 잃은 여자아이, 길거리 뮤지션 ‘키리에’, 초등학교 교사 ‘후미’의 시점을 오가며 사건이 전개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은 인간 행위의 모방”이라 말했다. <키리에의 노래>는 삶의 복잡함을 모방한다. 우리의 현재는 하나의 사건, 하나의 인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사건과 삶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지금 이 순간을 만들어낸다. 현재의 ‘키리에’는 말을 하지 못한다. 집 없이 거리를 떠도는 길거리 뮤지션이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며 서서히 들어나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구성하는 층위들이 밝혀진다.
어느 날, 초등학교 교사 ‘후미’는 고분 근처에서 어린아이의 노랫소리를 듣게 된다. 그곳에서 여자아이를 보았다는 학생의 말을 듣고 고분을 다시 찾아간다. 나무 위에서 여자아이를 발견한 ‘후미’는 집으로 아이를 데려온다. 아이는 학생의 증언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듯하다. ‘후미’는 아이의 가방에서 이름과 출신지를 찾아낸다. 아이는 미야기현의 이시노마키시 온 ‘코즈카 루카’. ‘후미’는 ‘루카’를 데리고 ‘나츠히코’를 만나러 간다. 그는 '루카'의 언니인 '코즈카 키리에'의 약혼자다. ‘나츠히코’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영화의 개별 사건들이 순서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나츠히코’와 ‘키리에’는 연인관계다. 그들은 미성년자임에도 육체적 관계를 통해 예상치 못한 아이를 갖게 된다. 대학 진학을 앞둔 ‘나츠히코’는 혼란을 겪지만 결국 상황을 책임지기로 결심한다. 개인 내면의 흔들림이 멈추자 이번에는 지면이 흔들린다. 미야기현에서 진도 7의 대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키리에’는 가족을 찾으러 나간다. 거리에서 동생 ‘루카’를 만난 순간, 쓰나미가 덮친다. 자연의 우연성이 가져오는 폭력에서 개인은 무력하다. ‘나츠히코’의 결심은 무용해진다. 카즈코 가족은 행방불명이 되었다.
‘후미’를 통해 ‘나츠히코’는 ‘루카’와 만나게 되지만, 사회 시스템이 둘 사이를 가로막는다. ‘루카’를 보호소로 보낸 국가 기관은 친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후미’와 ‘루카’에게 ‘루카’의 소식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고등학생이 된 ‘루카’가 다시 ‘나츠히코’를 찾아오지만, 사회 시스템은 여전히 ‘루카’와 ‘나츠히코’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 개인은 자연의 우연성과 거대한 사회 아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련의 사건을 겪은 루카는 세상과의 관계 맺기에 서툰 존재로 자라난다. 말을 잃고, 거리 위를 떠돌게 된다.
상처를 치유하는 노래
거리를 떠돌던 ‘키리에’는 ‘잇코’를 만난다. 그들은 각각 ‘루카’와 ‘마오리’에서 ‘키리에’와 ‘잇코’가 됐다. ‘키리에’와 ‘잇코’는 모두 상처 위에 덧씌워진 이름이다. ‘루카’는 언니 ‘키리에’를 잃어버린 날에 그대로 멈춰 있다. 엄마 때문에 꿈을 잃게 된 ‘마오리’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간다. 서로의 상처를 확인한 ‘키리에’와 ‘잇코’는 가수와 매니저 관계가 된다.
‘잇코’는 ‘키리에’를 세상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인다. ‘키리에’는 ‘잇코’로 인해 사람들과 함께 음악하는 법을 배우고 점점 더 많은 관객들과 교감하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또다시 ‘키리에’의 목소리를 막으려 한다. 페스티벌에서 ‘키리에’의 순서가 다가왔을 때, 민원이 들어왔다며 경찰이 공연을 당장 중지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키리에’는 이전처럼 사회 시스템의 억압에 굴복하지 않는다. ‘잇코’를 통해 ‘키리에’는 비로소 언니를 잃어버린 순간으로부터 빠져나와 세상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다. 무대 위에서 ‘키리에’는 본인의 말을 한다. 자유롭게 무대를 활보하는 '키리에'의 노래가 관객의 마음에 닿는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된다. '키리에'의 노래는 '잇코'를 치유했듯이 또 다른 누군가를 치유하며 더 멀리 퍼져나갈 것이다.
우리 세상은 어디에도 없어
그래도 지금 이곳을 걷는 거야
희망 따위 찾을 수 없어
그래도 네가 여기에 있으니까
몇 번이고 몇 번이라도 갈 거야
모든 것이 겹쳐질 수 있도록
<키리에의 노래> 주제가 <연민의 찬가> 中
'키리에'가 목소리를 회복하는 순간, '잇코'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된다. 서로를 치유하던 두 여성은 왜 다른 결말에 도달했을까? 왜 '키리에'는 살아남고, '잇코'는 사라져야 했을까? 영화에 ‘잇코’의 이야기는 없다. 그 점에서 영화는 키리에 역을 맡은 아이나 디 엔드 배우의 매력과 이와이 슌지 감독 특유의 뛰어난 영상미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서사적 설득력이 떨어진다. 디렉터스컷은 무려 60분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아직 시청하지 않았지만, 그곳에 해답이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