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혼란스러운 세상 속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도서]

움베르트 에코 소설 '장미의 이름'
글 입력 2024.12.0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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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를 두렵게 여겨라. 그리고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여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유럽의 중세의 암흑기라 불리는 시대를 다룬 추리소설이다. 작품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얘기해보자면, 수도사들이 연속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수도원에서 발생한다. 해당 사건의 수사를 맡게 된 주인공 윌리엄은 수도사들의 연속적인 죽음이 수도원에 보관된 금서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금서로 지정된 도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으로, ‘웃음은 예술이며, 식자(識者)들의 마음이 열리는 세상의 문이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윌리엄은 자신이 추론해낸 사실들을 해당 살인사건을 벌인 수도사 호르헤에게 이야기하자, 호르헤는 그 책을 입에 넣기 시작하고, 장서관이 있던 교회는 불길에 휩싸이며 결말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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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와 근대의 대립을 보여주는 소설 속 장치


 

현대 사회에서 종교가 갖는 의미와 중세 유럽 사회에서 종교가 갖는 의미에는 명확한 차이가 존재한다. 현대 사회에선 개인의 믿음이 중시되고 있으나, 과거에는 개인의 믿음뿐만 아니라, 교적인 이유로 인한 무차별 학살, 그리고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다. 한 가지 예로,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주장했던 지동설, 즉 ‘태양이 중심에 위치하고, 그 주변을 지구를 포함한 다른 행성들이 공전한다.’는 사실을 기반한 가설을 제시하였을 때, 성서에 위배되는 주장이라며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이렇게 사회가 전체적으로 종교가 중심이 되었던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전환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4세기 유럽은 200년간 이어진 십자군 전쟁이 실패하며, 교황과 귀족들의 권력이 약화 되고, 황제의 권력이 강해지면서 교황과 황제의 대립했다. 해당 소설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굉장히 잘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중세 유럽을 ‘암흑시대’라고 일컫는 것을 자제하자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으나, 소설을 통해 중세 유럽을 접하게 된다면, 왜 ‘암흑시대’라고 불렸는지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모습과 대비되는, 종교의 자유가 부재하는 환경에서 이단 심문관 또는 대주교에 대한 반대는 곧 ‘죄’로 구분되어 처벌을 받는다.

 

이는 작품 속 등장하는 ‘살바토레’‘레미지오’의 고발에서 화형에 이르는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다. 해당 사건은 소설 속에만 등장하는 허구적인 사건이지만, 해당 사건을 통해 그 당시 중세사회에서 볼 수 있는 마녀재판과 이단 논쟁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죄를 저지른 사람이 처벌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해당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마녀재판에서 마녀를 판가름하고, 마녀를 처형하는 방식은 중세 사회의 재판 제도가 본래의 의미를 잊고 퇴색되었으며, 권력에 의한 부정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윌리엄의 행동으로 보는 작품의 의도


 

 

“내 생각인데 문제는, 이단이 먼저 생기고 나중에 단순한 평신도들이 여기에 가세한다고 믿는데 있을 듯하다. 사실은 단순한 평신도라는 조건이 선생하고 이 조건에서 이단이 생기는 것인데 말이다.”

 

“버림받은 자들은 자기를 발견하게 되면서부터 권력자들에게 권력의 배분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소외를 의식하는 소외된 자들은, 교리에 상관없이 이단자로 낙인찍히게 된 것이다.…신앙은 상관없다. 목적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쥔다는 목적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수도사 윌리엄은 교리와 신앙과 신은 각각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에 대립하여 호르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의 후편으로 집필했다는 가상의 글이 성서에 위배 된다고 생각하여 책을 숨겨 두고, 책이 보관된 책장에 독을 발라 수도사들을 연속적으로 살해한다. 윌리엄과 호르헤의 대립, 즉 프란치스코회와 베네딕토회의 갈등을 통해 작가는 13세기 중세유럽의 상황과 교회를 비판하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윌리엄과 호르헤의 갈등은 종교적 갈등을 넘어 개인의 이념적 갈등을 대변하기도 한다.

 

작가는 흑백논리로 존재하는 ‘신앙’이 아닌 ‘종교’라는 틀 안에 갇힌 14세기 중세 시대의 전반적인 문화 현상을 악으로 규정했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주인공인 윌리엄을 활용하여 보여주었다.

 

*

 

종교가 인간에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종교는 인간의 삶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렇기 때문일까. 인류사에는 종교로 인해 발생한 전쟁과 수많은 피해사례가 기록되었다. 그렇다면 종교는 전부 나쁜 것일까? 이 물음에 움베르트 에코는 이렇게 답한다.

 

 

“종교의 관점은 언제나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생활 방식을 제안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에 반해, 세속의 관점에서는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이고 그 선택이 다른 사람의 선택을 배척하는 것만 아니라면 어떤 생활 방식이든 최상의 것으로 간주합니다. 원칙적으로 말해서, 여러 종교가 각각의 신자들에게 부과하는 의무를 놓고 왈가왈부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나는 종교가 아닌, 시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인은 자신의 믿음과 신앙심에 대해 항시 경계해야 하며, 비종교인은 일부를 통해 전체를 보지 말고, 편향된 인식을 갖고있는 것은 아닌지 주의해야 한다.  공통적으로 우리는 자신의 믿음과 생각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인지하고, 자신과 다른 타인을 배척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4세기에 쓰여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 가령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란-이스라엘 분쟁’, 그리고 ‘IS 테러’ 등과 같은 문제들을 떠올리게 된 것 같다. 현실에도 윌리엄과 같은 이가 존재했다면, 세계가 조금은 더 평화로울 수 있었을까? 움베르트 에코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되새기며 현대 사회에서도 역시 윌리엄의 모습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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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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