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해부학자의 세계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 본 것들 - 해부학자의 세계
-
사람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단순해 보이지만 누군가는 살과 뼈라고 답할 테고, 누군가는 꿈과 지성이라고 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해부학의 역사를 총망라한 이 책은 전자에 대한 호기심이 어디서부터 발전했는지 말해준다.
물론 살과 뼈, 꿈과 지성이 아예 따로 노는 단어들은 아니다. 이 단어들의 관계 또한 책 속에서 보여주는 해부학의 역사에서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몇천 년 전 사람들이 탐구한 이성과 육신의 관계에서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해부학, 즉 신체 기관을 세세하게 알고 싶은 사람들보다 해부학의 역사’, ‘해부학의 위대한 100명의 위인들’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기원전 고대 이집트에서 출발해 현대의 해부학까지 시대를 따라 같이 흘러가다 보면 인체에 대한 탐구가 얼마나 진취적이고 흥미롭게 이루어져 왔는지를 알 수 있다.
해부학이 걸어온 세상
’해부학’이라는 전문스러워 보이는 이름을 마주했을 때 아무런 장벽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을 시작할 때 해부학에 대한 나의 배경지식은 아예 전무하다고 보아도 될 정도였으니 어떤 부분을 고려하며 읽어야 할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스러웠던 점은, 이 책은 그야말로 역사서에 가까워서 의대생이 아니더라도, 의료인이나 전문 학자가 아니더라도 해부학의 몇천 년 역사를 읽어가며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고대 이집트부터 그리스, 이슬람을 넘어 유럽과 동양까지 전 지구를 누비며 알아가는 해부학의 발자취는 흥미롭기도, 충격적이기도 했다. 더불어 모든 발명과 발견이 순수하고 선한 의도로만 이루어지지 않듯이, 해부학의 발전도 그러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확인받을 수 있었다. 전쟁이 참 많은 것을 발전시켰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사람의 몸을 알고자 하는 의지가 끈질기게 이어져 왔고, 하나의 의지가 저물면 또 다른 의지가 다른 곳에서 불타오르고 있다는 사실은 그 탐구심과 호기로움에 대해 경외를 보내게 했다. 탐구하고, 반박하고, 해체하고 조립하는 수순을 모두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쉽지만은 않았을 그 과정을 이겨내고 지속해옴에 대한 경외였다.
무엇보다 생명의 정수는 어디인가에 대해 과거의 학자들과 같이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담론하는 시간이 재밌었다. 사람은 어떻게 이루어져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심장인가, 머리인가. 생물적으로 먼저 만들어지고, 손과 발끝에 동력이 될 피와 산소를 공급하는 건 심장이지만 뇌의 기능 없이 인간은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학교에서 생명 윤리와 관련하여 토론을 나눠볼법한 이러한 주제는 머리가 커서 보아도 흥미로웠다. 모든 해부학자들이 이에 대해 탐구한 것도 아니고, 이 주제가 해부학의 중심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해부학으로 인해 누군가는 자신만의 답을 찾았을 테다.
점점 발전하는 삽화 또한 보는 재미가 있다. 차마 ‘사람인가…?’라고도 묻기에 뭐한 형태로 그려진 삽화부터 스스로 뱃가죽을 열어 속을 환히 보여주는 묘사가 들어간 삽화까지 거쳐온 시간과 예술가의 흔적에 따라 점점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변해가는 그림이야말로 아마 이 책 속에서 제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따로 찾아보기도 힘든 이 그림 안에 녹아들어 있는 당대의 문화상이나 해부 요점을 찾아가는 것도 또 다른 흥미 포인트일 것이다.
세상 속의 해부학
이 책에서는 ‘해부학’ 그 자체뿐만 아니라 ‘해부학’이라는 분야가 밀접한 각 분야와 어떻게 호흡해왔는지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예술 분야가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같은 예술가들이 칭송받는 이유는 인체의 미학을 아름답게 살려냈기 때문이다. 이 미학을 알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인체에 대한 이해가 요구될 테고, 그 이해를 위해서는 해부학에 대해 알아야 했을 것이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해부학은 출판사, 범죄자, 이발사, 도굴꾼과 깊은 인연이 있다. 해부용 시신을 보관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기술의 발전도 예상치 못한 부분 중 하나였다. 이 다양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의 후반부를 탐독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후반부에서는 짧게나마 ’해부‘가 얼마나 위대한 은유인지에 대해서도 서술한다. 우리는 평상시 살아가며 수많은 ’해부‘를 마주하게 된다. 특히 무언가를 낱낱이, 서슴없이, 투명하게 거리낌 없이 파헤칠 때면 머릿속에서 온갖 장기를 다 꺼내고 있는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장벽이니 공포니 해도, 해부는 우리의 삶과 인식 속에 생각보다 밀접하게 들어와 있다.
무엇보다 해부학은 윤리와 같이 이야기할 때 시너지를 발한다. 윤리적 측면에서 해부학은 떼놓을 수 없는 잔혹하고도 차가운 분야다. 2m가 넘는 거구였던 찰스 번과 그의 몸을 얻고자 했던 헌터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침상 위에 누워있는 건 과연 사람인가 사람의 몸을 한 도구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의 노고를 잊지 않기 위한 카를 폰 로키탄스키의 말이 인상적이다.
당신이 이름 모를 시신 위에 허리를 숙이고 딱딱한 메스의 칼날을 들이댈 때, 그 몸은 두 영혼의 사랑으로 태어난 존재임을 기억하라. 그는 그를 가슴으로부터 아끼고 보호한 사람의 믿음과 희망으로 키워졌다. ... 이제 그는 이 차가운 슬레이트 위에 그를 위해 눈물 한 방울 흘려줄 이 하나 없고, 기도해 줄 이 하나 없이 누워 있다. 그의 이름은 신만이 아실 것이다. 그러나 거침없는 운명이 그에게 인류에게 봉사할 힘과 위대함을 주었음을 기억하라.
결국 이 책은 수많은 피의 집약서이자 미래를 위한 교본이다. 셀 수 없는 희생 덕분에 우리는 직접 우리의 몸을 가르지 않고도 나의 배와 머리, 팔과 다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 있고, 아플 때면 해부 연구를 위한 동의서가 아니라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멀쩡하게 살아 돌아올 수 있다.
미래에는 어떤 해부가 도래할지 모른다. 환경이 바뀌고 삶의 양상이 바뀌어 누군가는 팔이 네 개 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귀가 아니라 다른 기관으로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그때가 되면 또 이 역사가 반복될 것이다. 그 미래가 오기 전 사람들이 무슨 생각과 어떠한 과정을 통해 지금의 지식을 알게 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서재에 해부학자들의 세계를 들여보길 추천한다.
[김민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