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How about You (2)

글 입력 2024.03.1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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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여기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카페에서 일한다. 게으른 사장과 무례한 손님들과 함께 하는 매일매일이 그녀는 지겹고 고달프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직업은 택배기사다. 그의 고객들은 불친절하고 왕처럼 대접받기를 원한다. 그는 이런 대우를 받는데 지쳤고, 성질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 카페에서 일하는 여자와 택배 트럭을 모는 남자가 각자의 영역에서 만나게 된다.

 

 

1편에서 계속…

 

다시 목요일이 되었다. 오늘은 각 팀의 작가들이 쓴 시나리오는 보고 서로 품평을 할 예정이었다. 어떤 평가가 나오려나. 어떤 말을 주려나. 재미가 있으려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한편으론 걱정도 가득했다. 기대와 불안의 한 가운데에서 내 마음은 파도처럼 계속 요동쳤다.


6시가 되자 다들 둥글게 모여 앉았다. 부회장 누나는 미리 뽑아온 시나리오들을 모두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그녀는 심심할 테니 이거라도 읽고 있으라며, 내겐 다른 팀이 쓴 시나리오를 건넸다. 잘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인어공주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이야기였던 것 같다. 얼떨결에 시나리오를 받긴 했지만 사실 그때 나는 글자들이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내 신경은 온통 귀에 집중되어 있었다. 서걱서걱. 침묵 속에서 종잇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작은 공간을 빼곡히 채웠다.


‘재밌네.’ 누군가의 혼잣말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순간 주위가 환해진 듯했다.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내가 쓴 이야기를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선보인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반응이 호의적이라면 기쁘지 않을 리가 있나. 하지만 이윽고 날아든 말에 분위기는 급변했다.

 

“그러니까 이거 여자가 남자한테 복수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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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복수라니? 머리가 멍해졌다. 그런 장면이 있었던가. 기억들을 헤집어 보았지만 그런 장면을 넣은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알고 보니 마지막 장면이 이유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는 택배를 배달하러 온 남자에게 쓰레기를 건네는데 그게 복수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그 문제를 나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그런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여자가 남자를 알아보는 모습을 일부러 넣지 않았고, 여자가 남자를 만나기 전에 아예 처음부터 쓰레기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으로 동선을 만들기까지 했다. 


다음으로 제기된 문제는 ‘카드지갑’에 관련한 것이었다. 최종고에서는 삭제했지만 초기 시나리오에서 나는 카드지갑에 인서트 컷을 수시로 할애했다. 왜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일종의 상징적인 표현으로써 두 사람을 연결하는 의미에서 장면들을 배치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동아리 사람들은 왜 자꾸 카드지갑이 등장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오히려 그 카드지갑 때문에 여자가 남자를 알아보고 쓰레기를 돌려준 것 아니냐는 반문을 제기했다.


나는 그런 오해에 맞서 문제의 장면들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숨 막히는 토론이 이어졌다. 반박과 재반박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입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바보들 아냐?’ 이런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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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논쟁의 책임은 사실 내게 있었다. 아무리 내가 그런 오해들을 방지하고자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썼다 하더라도 관객의 입장에선 여자 주인공이 자신에게 쓰레기를 맡겼던 남자를 알아보고, 복수의 의미로 다시 쓰레기를 되돌려 준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관객의 잘못이 아니었다. 관객은 오로지 영화 속에서 주어진 것들만을 보고 판단한다. 만약 오해가 발생했다면 그건 영화가 관객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영화의 의도를 잘못 받아들인 건 관객들의 이해력 문제라기보다는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 자체, 감독과 작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초보 작가였던 나는 문제의 원인을 나보다는 남에게서 찾기를 택했다. 내가 만든 세계에 취해 주제와 상징에 집착하느라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볼지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이게 내가 저지른 첫 번째 실수였다.

 

자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가 잘못했을 가능성을 항상 맨 마지막에 고려한다. 그전까지는 원인을 타인에게서 찾는다. 허나 그런 태도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강 한가운데에서 칼을 잃어버려 놓고는 강가에서 찾는 것(刻舟求劍)과 다를 게 없다. 백날을 찾아봐라. 칼의 털끝조차 발견할 수 있는지.


회의가 끝난 후, 나는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우선 오해의 여지가 있는 카드지갑 부분은 완전히 들어냈다. 사실 이 장면들이 없어도 영화가 진행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필요 없는 장면들도 줄였다. 17개 씬이었던 분량도 최종본에선 10개 씬으로 줄였다. 여자가 남자에게 복수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인물 간의 동선도 확실하게 정리했다. 이제 작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끝이 났다. 이제부터는 감독의 영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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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업은 언제나 책상 위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자료수집이나 취재 등을 위해 밖으로 돌아다니는 일도 종종 있지만 실질적인 작업들이 벌어지는 장소는 결국 책상 앞이다. 작가는 그동안 수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상상 속에서 세계를 축조한다. 그 세계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계.


허나 우리는 영화의 언어가 문자가 아닌 ‘이미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책상 위에서 빚어진 가능성의 세계를 현실로 끄집어내야 한다  그걸 해내는 게 바로 ‘촬영’이다. 촬영은 단순히 카메라로 피사체를 찍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상상과 현실이 마주하는 아주 혹독한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다음은 촬영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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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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