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물어볼 수 있는 용기, 그 하나를 위하여 [문화 전반]

일상을 돌아보며 느낀 물음의 용기에 대해 논하다
글 입력 2023.12.04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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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화창한 10월의 토요일. 시원한 국물이 먹고 싶다는 엄마의 말에,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고 엄마의 니즈를 만족시킬 만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십몇 분의 시간이 흘러, 하나의 장소가 내 머릿속을 스쳤다. '..서울숲?..'

 

"엄마, 우리 서울숲 갈까?"라고 말을 끝내자마자, 서울숲의 단풍을 카메라 렌즈에 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채로 현관문을 나섰다. 서울숲까지 버스 한 대를 타고서 도달할 수 있는 위치에 산다는 건, 계절 옷을 바꿔입는 자연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큰 행운을 얻은 것과 같다.

 

동대문 방면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그 작은 버스정류장에 엄마와 나를 포함해서 일곱이었다. 근처 성당을 다녀오셨다는 할머니, 우리와 같은 목적지를 가졌던 모자, 등산을 간다는 나이가 지긋한 부부. 다들 포근한 날씨에 기분이 좋은 듯, 옅은 미소를 띤 채 초록 버스를 기다리며, 버스정류장에 작은 이야기들을 채워가고 있었다.

 

저 멀리서 우리가 기다리던 버스가 오는 중이었다. 할머니는 000번 버스가 맞는지 옆에 서 있던 모자에게 물어보셨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그 버스가 정류장 앞에 정차하기만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찰나에, 블랙홀처럼 짙은 검정 선글라스를 낀 버스 기사가 출입문을 활짝 열었다. 할머님의 다리가 불편하신 걸 안 모두가 먼저 타시도록 배려하는 순간이었다.

 

버스 기사는 [OOO 방면]이라고 쓰여있는 간판을 강하게 내리치며, 할머니가 버스에 올라가려 계단에 발을 딛는 순간 강하게 소리쳤다. "잘 보고 타라고요, 잘 보고! OOO 방면인 거 알아요?" 그 버스 기사의 위협에 할머니는 잠시나마 올렸던 그 발을 거둘 수밖에 없었고, 당황한 기색으로 뒤로 물러나셨다. 그 상황을 뒤에서 지켜보던 여섯의 사람들도 당황한 나머지 모두 얼이 빠졌다. 뭐가 그리 화가 났을까. 누가 들어도 위협이라고 느낄 정도의 성량과 말투로 윽박질렀던 이유는 뭐였을까 하고 머리를 짚었다.

 

*

 

몇 주 뒤, 학교에서 회사로 향하던 버스 안. 여느 때처럼 음악을 들으며 창밖에 시선을 둔 채 점심 메뉴를 고르는 중이었다.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출입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함께.

 

파란 버스의 앞문이 열리는 순간, "OOO 가요?"라는 물음이 버스 안으로 들어왔다. 그 물음 앞에 버스 기사는 "아니요~ 안 갑니다~"라고 따스한 톤으로 대답했다. 나는 속으로 몇 주 전 초록 버스 사건이 생각나며, 마음이 점점 더 불편해졌다. 그러는 순간, 또 한 번 파란 버스의 문 앞에 물음이 서 있었다. "기사양반.. OOO까지 가는가..?"라는 힘없는 어르신의 물음에, 버스 기사는 여전히 따스한 톤으로 "어르신~ OOO까지는 안 가는 버스입니다~"라며 친절히 문을 닫았다.

 

몇 번이고 지속된 물음에도 톤의 변화는 없었다. 물어본 사람의 연령에 따라 목소리 크기의 변화만 있을 뿐이었다. 이 상황을 보며, 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어느 누가 봐도 초록 버스는 좋지 못한 태도를 지닌 사람, 파란 버스는 따뜻한 태도를 지닌 사람으로 인식했을 텐데, 난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했던 것일까. 그 불편함의 씨앗을 찾았을 때는 물음에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였다.

 

*

 

누군가에게 묻는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내가 궁금한 사실이나 정보를 알 것 같은 대상을 찾는 것이고,

둘째, 내가 그 사실이나 정보를 모른다는 것을 그 대상에게 알리는 것이며

셋째,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하거나 예상치 못한 반응이 올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것.

 

 

물론, 세 가지가 모두 해당할 때, 물음의 용기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라도 충족이 된다면, 물어볼 수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지만, 물음의 용기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그동안 살아오며 쌓인 삶의 데이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내 물음이 이상한가?', '이런 질문은 하면 안 되는 건가?'라고 끊임없이 반문하며 살아왔던 사람이라면, 용기를 낼 때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물음에 두려움이 생기는 건, 대상에 따라, 상황에 따라 무응답과 무시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몰라?', '그것까지 내가 알려줘야 해?' 물음을 뚫는, 차가운 말투와 시선이 녹여져 있는 대답은, 물음표의 곡선을 곡해한 채 온점만 남기게 된다. 더 이상의 물음은 묵살시키며 본인의 우월함을 뽐낸다.

 

그러나 묻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아무리 저명한 학자여도, 만물을 아는 사람이어도, 모르는 분야가 생기기 마련이고, 모르는 분야에 관해서 물어보는 게 마땅하다. '인간'은 잘 모르면, 물어보는 게 당연하다. 그 정보나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묻는 행위가 당연하지 않을지언정, 적어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타당하다.

 

*

 

팀 프로젝트를 하며, 선택한 질적 연구는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프로젝트 주제의 연구 대상이 학교 상권 소상공인이었기 때문에, 이분들을 대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30분~1시간 정도의 인터뷰를 할 시간을 내줄 수 있냐는 물음을 던져야 했다. 정보를 얻기 위한 물음이 아닌, 협조를 위한 물음은 다른 결의 도전이었다. 물음의 용기가 다시 작용해야 할 타이밍이 온 것이다.

 

협조를 위한 물음을 들고, 첫 가게로 향하는 발걸음은 아주 무거웠다. 갯벌 위를 걷고 있나 착각할 정도로. 심호흡하고 들어간 가게에 발을 딛고, 준비한 멘트를 말하는 동안 불안함에 마음은 요동쳤다. 그러나 '언제가 괜찮아요?'라고 먼저 물어봐 준 사장님 덕에 불안함은 평온함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물음에 긍정적인 답변과 신호가 온 첫 순간의 감정은 그 이후에 더 큰 용기를 갖게 해주었다.

 

이후 불안함이 아예 없는 채로 협조 요청을 하러 다닌 건 아니지만, 첫 가게에서 받은 물음에 대한 긍정적 경험은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상쇄시켰고,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잘 모르는 분야지만, 인터뷰 대상자인 소상공인들은 잘 아는 분야에 관해서 물었다. 인터뷰하기 전 공부도 하고, 많은 조사 과정을 거쳤지만,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차원이 달랐다. 모르는 정보라는 것을 질문으로 계속 드러내면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따. 묻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는 정보까지.

 

물음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사장님들이 물음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했던 것이다. 가게 운영시간 일부를 쪼개어 인터뷰한다는 것부터가 탐탁지 않은 일일 수 있는데,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장님은 마음을 다해서 대답을 해주려고 노력하셨고, 인터뷰를 하는 사람도 그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긍정적인 경험이 물음에 대한 용기를 더 강화했다. 거절당할 수도 있다고, 그걸 인정하는 자세의 기반에도 물음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

 

모르는 것을 꼭꼭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보다는, 모르는 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채우려고 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더 건강한 사회이다. 서로의 모르는 것을 채워주고, 도와주는 게 당연한 분위기가 사회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그 물음들로 인해 느낌표가 생기는 사회가 발전 가능성이 충분히 조성된 사회이며, 여러 인사이트로 사회가 힘차게 굴러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비단 어린아이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듯, 물음에도 끝이 없다. 그것이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정보라도. 궁금과 물음이 생긴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과 같다. 더 이상 궁금한 것이 없는 사람은, 그저 숨만 쉬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묻는 것이 본인을 낮추는 행위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걸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 정보와 사실만 모르는 거니까. 본인이 잘 아는 분야가 있으니까. 잠깐 본인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다고 느낄 수는 있지만,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는 없다. 나의 모름에 대해 표현하고, 묻는 행위를 통해 그것을 채우려고 하는 자세 그 자체가 용기 있고, 대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본인이 궁금한 일이라면 묻는 자세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가 도래하기를 바라고, 물음이 용기를 내서 해야 하는 행위가 아닌, 자연스럽게 대화하듯 흘러가는 하나의 수단이 되기를 바란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져 그 물음의 깊이가 어떻든 상관없이, 아는 정보라면 다정하게 알려주는 자세, 모르는 정보더라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자세를 함양하는 게 당연해지기를 바란다.

 

물음에 친절한 사회를 위하여. 물어볼 수 있는 용기, 그 하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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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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