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제 지구는 누가 지키나… [영화]

요르고스 란티모스, <지구를 지켜라> 리메이크 확정!
글 입력 2024.03.1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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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 나름의 기대를 안고 재생 버튼을 눌렀건만… 납득하기 어려운 외계인 소재와 피식하게 만드는 편집 감성이 흘러내린다. 독특한 작품일 것이라 예상했음에도 몰입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 재밌는 소재와 기발한 상상력에 낄낄대며 보던 내가, 어느새 말이 없어지고 착잡한 마음에 휩싸이기 시작한 게 아닌가!

 

주인공 병구(배우 신하균)가 만취 상태로 귀가하는 유제 화학의 사장, 강만식(배우 백윤식)을 납치한다. 병구가 강만식에게 원하는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니다. 단지 외계인의 왕자를 만나게 해달라는 것.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병구는 외계인으로 인해 곧 지구가 큰 위험에 처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지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외계인을 처단해 왔고, 개기월식 전에 외계인의 왕자를 만나서 지구의 재앙을 막아야 한다는 집착에 휩싸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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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구는 그저 망상에 빠져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정신 질환자처럼 보인다. (정확히는 그렇게 보이도록 설정되어 있다) 그를 쫓는 형사들의 반응과 납치 현장에서 발견된 우울증 치료제. 외계인을 향한 엉뚱한 고문과 조치들은 그런 관객들의 생각에 확신을 불어넣어준다.

 

300v 이상의 전기 고문에도 견디는 모습을 보다보면 진짜 외계인인걸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다가도, 텔레파시를 나누지 못하도록 머리카락을 다 밀어버리고, 신경 시스템을 약화 시키기 위해 발등과 눈에 물파스를 바르는 모습을 보다 보면… 그저 터무니없는 상상이구나 싶게 되는 것이다. 무서울정도로 확신에 가득 차 있는,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믿는 병구.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폭력의 정당성, 가해자와 피해자의 혼합 


 

병구의 일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의 삶은 비참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떠나보낸 것도 모자라, 사랑하던 애인이 구사대에게 맞아 죽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이 외에도 학창 시절 모욕적인 체벌을 당하고 소년원에서 간수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는 등 험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를 힘들게 만든 것은 강만식의 화학 공장에서 일하다가 약물중독으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어머니일 것이다.

 

이제껏 철저히 가해자로 보였던 병구, 그리고 피해자로만 보였던 강만식의 위치가 흔들리는 순간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섞여서 더 이상 판단할 수 없게 된다. 내 눈앞에는 그저 태생부터 가난하여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궁지에 몰리게 된 노동자와, 부유하게 태어나 유리한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성공한 자본가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일지도 모른다. 나 또한 영화 < 조커 >와 <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정당화할 수 있는 폭력은 없다. 이는 곧 모든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조커도, 마츠코도, 병구도 그들만의 서사가 있고 아픔이 있고 결핍이 있다. 폭력은 다양하고, 피해자와 가해자는 중첩되어 있다. 그렇기에 모든 고통은 고귀하고 입체적일지도 모른다.

 

 

 

결말을 둘러싸고


 

"너희들은 날 못 이겨"

 

... 결국 병구는 죽고, 강만식은 구조된다. 그리 반전 있는 결말은 아닐 것이, 강만식은 권위 있는 회사의 사장이자 경찰청장의 사위이기 때문이고, 병구는 있어도 없어도 모를 사회의 한 노동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엔딩만으로도 씁쓸함은 충분한데, 갑자기 밤하늘에서 외계인의 우주선이 나타나서 강만식을 데려가는 것 아니겠는가.

 

이럴 수가! 병구가 옳았다. 강만식의 정체는 외계인이 맞고, 그들은 머리카락으로 텔레파시를 주고 받으며, 마음만 먹으면 지구를 없애버릴 수도 있다. 외계인 왕자 강만식은 더 이상 지구에는 희망이 없다고 결론 내린다. 나름 인류를 살리겠다고 진행하던 공격성 유전자 (인간의 과도한 유전자 조작 도중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제거 실험도 전체 중단시켜 버린다. 그렇게 지구는 폭파되어 사라진다.

 

다소 허무맹랑하고 어처구니없는 이 결말. 말도 안 돼. 정말로 강만식이 외계인이 맞았단 말이야? 병구가 정신질환자인 게 아니란 말이야? 라는 말들이 입 밖으로 마구 튀어나온다. 사실 중요한 것은 강만식이 진짜 외계인인지 아닌지가 아니다. 병구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짜 외계인이었다는 것. 우리는 그런 그의 세계를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되려 그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는 것.

 

 
"순이야, 엄마, 이제 엄마한테 갈 수 있어... 근데, 이제 지구는 누가 지키지?"
 

 

그러게. 이제 지구는 정말 누가 지키나.

 

 

 

외계인과 인간, 그 사이의 닮음


 

“잘 생각해봐. 너희들은 정상이 아니야... 미쳤어! 이 우주 어디에도 니들처럼 같은 종을 학대하고, 그걸 즐기는 생물은 없어!”

 

병구는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켜야한다고 말해왔지만, 막상 외계인은 인류로부터 인류를 지켜야한다고 말했다. 정상이 아니라고, 미쳤다고 말하며 인류 전체를 비판하고 있다. 인간 사회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전쟁과 폭력들, 오염되고 황폐해져 가는 지구. 그리고 끝없이 목격되는 인간의 추악함과 이기적인 모습들을 보며, 외계인은 인류가 다시 멸종할 것이라 직감한다. 그 멸종을 막기 위해 가속성 공격 유전자를 제거하는 실험을 진행했다고는 하는데 … 글쎄다. 외계인은 정말로 인류가 멸종하지 않기를 바란 것일까? 그러기엔 너무나 편하게 지구를 폭파시켜버린 것은 아닌가? 지구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결정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단순히 병구에게 당한 것들이 분해서 내린 감정적인 결정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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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랄하게 인류를 비판하고 떠나버린 외계인. 표면적으로는 단순히 인간 전체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경고해주는 제3자의 존재로 보일 수 있겠으나. 내가 앞서 던져놓은 수 많은 물음표를 떠올리다 보면... 더 빨리 구하러오지 않았다며 주저 없이 같은 종족의 뺨을 휘갈기는 강만식을 보다 보면... 그래. 너희들도 다를바 없다. 너희들도 너희들이 그렇게나 경악하던 인간들이다.

 

괴물도, 귀신도 아니고 외계인. 왜 하필 ‘외계인’일까? 라는 의문에 대한 답변도 같은 맥락이다. 외계인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병구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일종의 방어기제로써 등장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괴물이나 귀신은 아무리 기이한 존재라 하여도 같은 지구촌 안에서 살아왔다고 할 수 있지만, 외계인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병구는 같은 종을 학대하고 그것을 즐기는 생물들, 즉 담임 선생님과 교도소 간부, 그리고 강만식을 외계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 아닐까. 인간이 인간을 괴롭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외계인이 인간을 괴롭히고, 나를 괴롭게 한다고 믿는 편이 훨씬 납득될 테니 말이다.

 

외계인과 인간. 절대적으로 구별될 것만 같은 두 종족은 사실 너무나 닮아있다. 무엇이 선과 악이고, 무엇이 강만식인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리메이크


 

< 지구를 지켜라! >의 리메이크 건으로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 유전 >, < 미드소마 > 등을 촬영한 아리 에스터 감독이 리메이크를 맡게 될 것이라는 정보가 있었으나, 지난 2월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제작할 것으로 공식 발표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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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곳니 >, < 더랍스터 >, < 킬링디어 > 등 여러 작품을 촬영한 그리스 영화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현재 상영작 < 가여운 것들 >로 돌아왔다. 해당 작품에 주연으로 등장하는 엠마 스톤은 < 지구를 지켜라! > 리메이크 프로젝트에도 출연을 논의하는 중에 있다고 한다.

 

평소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작품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는 잘 설계된 폐쇄적인 공간에서 이분법적 사고를 무너뜨린다. 사회가 만들어낸 선과 악의 경계를 허물고, 옳고 그름의 구분을 헷갈리도록 만든다. 대중들의 불쾌함을 극대화하여 그 불쾌함의 근원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하게 한다.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 지구를 지켜라! > 통해서 또 어떠한 질문들을 던지고 어떠한 도전을 내밀까 기대 된다.

 

 

[한정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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