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회피 끝의 낙원 [음악]

글 입력 2023.12.2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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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WOODZ(우즈)가 지난 18일 디지털 싱글 < AMNESIA >로 돌아왔다. 강렬한 기타 사운드의 후렴구가 중독적인 얼터너티브 록 장르다. ‘amnesia’는 기억 상실 혹은 건망증을 뜻한다. 제목을 충실히 따르는 듯 가사는 줄곧 기억을 잃은 화자의 허무한 중얼거림으로 채워진다.

 

 

모든 게 전부 덮였잖아

꼬여진 매듭 등 돌린 나

반복이 됐어 버릇인가

어제 그 기억 사라졌다

 

고개를 돌리며 또 모른 척

그렇게 쌓여온 잿더미가

내 모든 걸 전부 덮었잖아

털어 넣은 술과 담배 연기로

오늘이 전부 사라졌다

 

 

‘털어 넣은 술과 담배 연기’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화자의 기억 상실은 사고나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닌, 자의적인 선택의 결과다. 가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화자는 의도적으로 기억을 지우기에 이른다.

 

화자를 괴롭힌 것은 “너무 깊었던 실망감”, 그리고 “하물며 아물지 않은 기억”이다. 사실 현실에서 발생하는 어떤 문제들은 장기적으로 해결 가능한 종류의 것이다. 개인 간의 갈등부터 단체의 이념 대립까지 완전한 해결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타협과 수습이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개인의 내적 갈등과 혼란이다. 이는 명확한 원인도, 완벽한 해답도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의 일이라는 범위 안에서 나는 사형수인 동시에 집행관이다.

 

이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 “도망가는 것”이다. 무지의 기쁨은 “이기적인 눈물 한 방울” 값으로 손쉽게 얻을 수 있다. 회피는 달콤하고 대가는 먼 미래 같다. 내면의 갈등을 겪는 이에게 먼 미래를 고려할 여유 따위는 없다.

 

우즈는 술을 마신 뒤 잠시 필름이 끊기는 순간을 돌아보며 ‘나는 무엇을 그리 외면하고 싶었는가?’[1] 하는 물음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 생각에서 출발해 현실 도피를 기억 상실에 비유한 < AMNESIA >가 탄생했다. 가사를 말하는 화자에 우즈의 자아 일부가 투영된 셈이다.

 

후렴구에서 화자는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회피가 완벽한 해결책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스스로 기억을 지우는 일만이 끝없는 고뇌와 고독을 벗어나게 해 주었다. 앎과 무지, 무지로부터 깨닫는 앎이라는 굴레를 영원히 돌며 카르마를 등에 진다.

 

곡은 명쾌한 해답을 내리지 않은 채 끝난다. 찢어지는 기타 리프만이 귓가를 맴돌다 뚝 끊겨 버린다. 마치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긴 사람의 기억 같기도 하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땐 이 장황한 노랫말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완벽한 기억 상실이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는 말이 있다. 한편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다고도 한다.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제대로 직면해 해결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라는 뜻이다. 누구나 도망치고 싶은 순간에 이 두 명제 사이에서 갈등해 본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 AMNESIA >는 이 고민에 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한 사람의 고뇌일 뿐이다. 우리는 그 고뇌에 귀를 기울이며 저마다의 고통을 돌아보는 것밖에 할 수 없다.

 

[1] 정현태, 「우즈 “’AMNESIA’ 통해 무르익어가는 느낌 주고파”」, 『싱글리스트』, 2023. 12. 19. (검색일: 2023.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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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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