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눈에 띄지 않음으로써 삶의 주체성을 가지는 법에 대해 -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

나는 이제 주변에 녹아들어 보이지 않으련다
글 입력 2024.03.1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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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짐, 보이지 않음, 눈에 띄지 않음 등과 같은 말은 적어도 대학에 진학한 이후 5년간 나에게 대체로 부정적인 표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누구보다 ‘존재하면서 눈에 띄지 않는’ 상태였고, 나의 그런 일종의 은신법은 내게 꽤 만족스러운 상황을 만들어주었다. 점심시간이면 각종 소음과 반 내부의 이해관계들을 피해 조용한 도서관으로 숨어들었고, 그곳의 구성, 공기의 흐름과 동화되어 태초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돌아간 듯한 안정감을 느꼈다.

 

그러나 영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나의 이런 삶의 태도에 대학이라는 공간에 발을 들이면서부터 서서히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정확히는 이 시기 대학생들에게는 ‘눈에 띄지 않을’ 권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자신의 관심사와 역량, 지식을 어필하고 나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했다. 그 안에서 나는 결국 오랜 시간 시작하지 않으려 버텼던 SNS어플을 깔고, 계정을 만들었다.


그 어떤 공간보다 SNS라는 사이버 공간에서는 나를 드러내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오늘 한 것 등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모두 모아 나를 내보이는 것이 이곳에서는 경쟁력이 되었고, 이곳의 팔로워와 좋아요 수는 곧 새로운 기회를 잡아 도약하기 위한 수단으로 직결되었다. 어떤 프로젝트든, 활동이든 지원서에 SNS주소를 적는 란이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제 예삿일이 아니다.


 
‘자발적인 협조와 비자발적인 협조를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디지털 감시가 만연한 요즘,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끊임없이 점검하게 된 근원적 이유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을 통해 나는 새삼 나의 삶의 태도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점을 찾아냈다. 그건 주안점의 위치가 나의 내부에서 외부로 옮겨갔다는 점이었다. 이전의 나는 ‘내가 원하고 내가 편한 방법’을 추구했다면, 지금의 나는 ‘외부의 세계가 내게 원하는 것’에 맞추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물론 그것이 과연 오로지 나의 자발적인 변화였다고 하면 글쎄, 알기 어렵다. 언제 어디에서 자신의 모습이 CCTV등을 통해 기록되고 감시되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한국 시민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타인의 물건에 손대지 않는 태도를 내제화 하고, 그것이 이제 우리의 문화가 되어버린 것처럼, 이 자연스러운 노출이 어디부터 어디까지 자발적이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나는, 그리고 우리는 쉽사리 노출의 상황에서 피할 수 없다.


 
‘인정받기를 갈망하기 보다는 일 자체에서 순수한 만족을 느끼는 것이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강력하고 흔들리지 않는 특징이다’
 


그렇게 나름 오랜 시간 플랫폼에, 주변인들에게 ‘나를 보여주는 일’에 익숙해진 나는 피할 수 없는 고민에 직면하게 된다. 과연 누구에게도 ‘그것을 즐기는 나’를 보여줄 수 없다면, 과연 나는 ‘그것’을 계속 좋아할 수 있을까? 가령, 나는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이리저리 매치해서 입는 것을 좋아하는데, 내가 어느 날 무인도에 떨어져 그 옷을 입은 나를 보여줄 사람이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된다면, 그렇게 옷차림에 신경을 쓸지 나는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취업 준비생이라면 한번쯤은 겪는다는 우울감을 해소하고자 떠났던 여행에서 카메라를 켜고 언젠가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찍으면서 강물 위로 반짝이는 노을을 핸드폰 화면 속에서만 보는 나를 발견한 순간, 과연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의구심이 내 안에서 솟구쳐 올랐다.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노을 지는 순간을, 나를 돌보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까지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나의 태도가 너무나 싫었고 내가 그간 나를 보여주기 위해 나를 기록하는 일련의 과정동안 얼마나 내 경험의 질을 스스로 낮추고 있었는지 돌아보았다.

 

 
‘보이지 않는 상태는 일탈과 관련이 있다고 믿을 때가 많지만 완전히 반대일 수 있다.’
 


나를 보이기 위해 애썼던 시간 속에서 나는 가장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순간 사라지기를 택했다. 면접을 망친 날, 시험 공부를 하지 않아 백지를 낸 날, 스스로 가장 초라해지는 날이면 나는 외부와 나를 연결하는 모든 플랫폼(메신저 어플이나 SNS 등)과 나를 떨어뜨려 놓은 채 고등학교 시절 도서관과 같은 공간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런 스스로를 비겁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이 책의 작가는 보이지 않기를 택하는 것이 부정적인 것들과 연관이 있기보다는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연 속 생물들이 적들의 눈에 띄지 않고 안전한 상태를 지키거나, 사냥감의 눈에 띄지 않게 다가가 원하는 것을 얻듯이 우리 인간 또한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됨으로써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성의 척도는 세상에 우리를 얼마나 드러내느냐가 아니라 우아하고 조화롭게 우리 자리를 찾는 것에서 비롯될지 모른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막을 수 없는 노출이 만연해진 이 사회 속에서 작가는 ‘나’를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것이 아닌 주변과 어우러져 ‘나의 존재감’을 일정 부분 덜어내는 것이 어떤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 소속감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강력해진다.


주변 환경에 녹아 들어 그 풍경을 이루는 퍼즐 일부분이 되기를 택한 자연의 존재들, 그러니까 나무 위에서 잎의 떨림까지 재현하는 대벌레나 스스로 무생물인 돌처럼 보이기를 자처한 작가의 반려 식물의 삶의 태도를 배워보려고 한다. 내가 건강하게 존재하기 위해서는 때로 눈에 띄지 않는 상태, 분명히 존재하지만 주변과 우아하게 어우러져 두드러지지 않는 상태가 될 필요가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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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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