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저기요 미라 씨, 제가 당신을 박물관에 전시해도 될까요? [미술/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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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박물관에 전시된 미라의 의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고 투명한 유리 벽에 둘러싸인 채 관람 되는 것을 생전의 그도 원했을까?
갈라 포라스-김은 유물, 오브제가 그들이 위치한 장소와 맺는 관계에 집중한다. 문화유산을 규정하고 정의하는 미술관, 박물관의 권위와 그 속에서 해당 유산이 애초에 가졌던 의미를 잃고 탈맥락화되는 과정을 조명한다.
갈라 포라스-김의 작업 의도
역사적 유물이 고대와 현대에 갖는 의미는 다르다.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다룬 고인돌을 예시로 들 수 있다. 고인돌은 삶과 죽음에 대한 공포와 존경의 의미를 담은 제의적 기능을 담당했으나, 현재는 예술작품이나 국보로 분류되고 관리되며, 박물관에 전시되기도 한다.
갈라 포라스-김은 이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자 한다. 미술관이나 관련 기관과 긴밀히 교류하며 관련 규제나 법을 만들도록 촉구하고, 이를 통해 과거의 의미가 현대의 인류에게도 와 닿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실에서는 작품과 함께 그가 미술관과 연락하며 보낸 편지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갈라 포라스-김의 작품들
<매각 절차보다 화장을 통해 박물관을 떠나는 것이 더 쉽다>, 2021
이 작품은 박물관에 발생한 화재로 인해 소장되어 있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간 유해 ‘루치아’가 불에 타 재가 되어버린 사건을 다룬다.
박물관은 루치아를 복원하여 다시 전시하고자 하였으나, 작가는 그러지 않을 것을 제안했다. 그의 편지에서 “화재는 소장품으로 갇혀버린 유해들에게 있어, 박물관에서의 생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갈라 포라스-김은 이러한 방식으로 루치아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되살릴 수 있다고 믿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물로 규정된 이 유해는 박물관이 소장과 보존을 포기하는 순간,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편히 쉴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작품은 재가 된 유물을 닦은 휴지이다.
<만기의 순간 나타난 영원한 흔적>, 2022
이것은 영국 박물관 수장고에서 곰팡이 포자를 채집하여 만든 작품이다.
수장고 속 곰팡이는 작품의 상태를 설명하는 자료이기 때문에 소장품의 일부로 분류되어 수장고에서 멋대로 반출될 수 없다. 작가는 그 곰팡이가 수장고로부터 나와 번식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작품 또한 수장고가 아닌 세상 밖으로 나와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음을 드러낸다.
<신호 예보>, 2021
이 작품에서는 천, 흑연은 물론 제습기까지도 모두 작품이다. 제습기로 전시실 안의 습기를 모아 액상 흑연을 머금은 천 위에 떨어뜨리고, 그 물방울이 떨어지며 남긴 흔적을 기록하는 작품이다. 전시 공간에서는 흔히 습기와 수분으로부터 작품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이미 전시실 공기 속에는 물이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갈라 포라스-김의 전시관을 인상적으로 관람한 뒤, 리움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에도 방문했다. 국보 10점과 작가의 신작 2점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그 중 <국보 530점>에는 남한과 북한의 국보가 그려져 있고, <일제강점기에 해외로 반출된 한국 유물 37점>에는 제목 그대로 해당 유물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국보 530점>, 2023
남북한에서 각각 소장 중인 국보들과 해외로 나간 국보들은 갈라 포라스-김의 작품 안에서 한데 모인다. 일제강점기와 분단을 겪고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게 된, 갈라지고 찢어지는 아픔을 겪은 우리 유산과 역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갈라 포라스-김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충격적이었다. 특히 박물관, 미술관에서 전시를 관람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전시를 충분히 즐기기 위해 열심히 사전에 공부하고,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전시장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맥락이 파괴되고 관찰 대상으로서밖에 존재할 수 없는 빛을 잃은 유물들을 보며 감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적 가치를 지닌 유산을 보존하는 것 또한 인류의 몫이다. 갈라 포라스-김이 그의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유물 보존과 소장은 그것이 존재하던 시공간의 맥락과 그 존재 목적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최아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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