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우리가 원하는 걸 항상 가질 순 없겠지만

Nothing But Thieves ‘Overcome’
글 입력 2024.02.0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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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임에도, 한 번도 음악을 듣고 울어본 적이 없다. 눈물을 흘리기는커녕 비슷한 감정까지 간 적도 없는데, 딱 한 번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다.


지난 5월, 독일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이동했다. 원래도 잠을 잘 자지 못하는 편인 데다가, 이래저래 불편해 저녁에서 밤으로,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 동안 계속 가물가물한 정신으로도 깨어 있었다. 그래도 언제나처럼 이어폰을 챙겨가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게 위안이 되는 지점이다. 좋아하는 영국 밴드인 ‘Nothing But Thieves’의 노래를 들으며 가고 있었는데, 당시 기준으로 가장 마지막에 나왔던 싱글 ‘Overcome’이 흘러나왔다.


사실 이 노래는 처음 공개되자마자 들어보았을 때 내 취향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영 별로인 건 아니지만, 이 밴드에게서 기대하던 음악이 아니었기 때문에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이후로도 거의 들은 적이 없었고, 그날 이 노래가 이어폰으로 나오기 시작했을 때도 바로 스킵해버릴까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피곤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싫었기 때문에 그냥 듣기로 했다. 어쨌든 좋아하는 밴드의 곡인데 못 들어줄 것도 없었고.


그렇게 듣기 시작했는데 이전과는 너무 다른 감상이 느껴졌다. 푸른색으로 휙휙 바뀌는 바깥 풍경, 으슬으슬까지는 아니라도 약간은 서늘한 공기, 이제야 좀 밝아지는 새벽이라 푸르스름한 색으로 들어오는 빛, 사람들은 많지만 다들 자고 있어 쥐 죽은 듯 조용한 주변. 그 상태로 이 노래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 눈물을 흘린 건 아니지만서도 내 인생에서 ‘음악을 듣고 울었다’는 경험에 가장 가까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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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그 경험을 하고 나자 이 노래가 새롭게 들렸다. 분명 맨 처음 들었을 때는 썩 맘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이후로 정신만 차리면 계속 이 노래를 듣고 흥얼거리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때만큼 울컥하는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며칠 후, 이 노래의 리릭 비디오가 공개되었는데 보자마자 살짝 소름이 돋았다. 내가 그날 버스에서 보던 풍경과 느낀 감각이 리릭 비디오의 화면에 그대로 담긴 것 같았다.

 

 


 

 

물론 영상은 텅 빈 지하철이고 나는 꽉 찬 버스였지만, 새벽녘에 흔들리며 달리는 고요한 차 안이라는 공통점이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겹쳐 꼭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We don't always get all that we want

Redefine the pain to something more

 

우리가 원하는 걸 항상 가질 순 없어

그냥 그 고통을 통해 뭐라도 얻는 척하는 거지

 

 

노래 가사의 일부다. 두 번째 줄은 의역을 좀 했다. 직역하자면 고통을 더 좋은 무언가로 재정의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우리는 자꾸 고통을 포장하려 든다. 꼭 고통 다음에 따라올 어떤 보상이 있을 것처럼 말한다. 어떤 경우에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정말 그렇게 믿는 건 아니지만 위안 삼기 위해 그렇게 우긴다.


하지만 가끔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고통은 고통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고. 매운 음식을 먹고 탈이 나면 그냥 그렇게 아픈 거지, 그렇다고 내 위장이 강화되지는 않는다. 한 아이돌이 지금만큼 유명해지기 전에 했던 고생(?)을 돌아보며 “저 때가 있으니까 (지금의) 우리가 있는 거야”라더니 바로 이어서 “-라는 말이 제일 싫어 나는”라고 말했다. 농담조로 한 말이지만 진심이 들어가 있을 게 분명한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도 우린 지금의 고생이 미래의 나를 만든다고 믿고 산다. 종종 고개를 쳐드는 의심은 두더지잡기 하듯 의식 아래로 쑤셔 넣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고진감래, 액땜(?) 등등을 되뇐다. 영어로도 비슷한 속담이 많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어떤 성취 앞에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는 건 흔한 일이니. 하지만 그 고통과 보상 사이의 인과 관계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이 말을 믿는 이유는 그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위의 가사는 사실 저 부분만 봐서는 안 된다. 사실 모든 가사가, 모든 이야기가 그렇다. 우리는 명대사니 명언이니 하며 한두 문장만 뽑아 읽기를 좋아하지만 익숙해지면 위험한 습관이다. 유지혜 산문집 <우정 도둑>에는 모든 문장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래서 두 개의 문장을 읽는 것은 세 개의 문장을 읽는 것과 같고, 한 문장만 읽는 것은 결국 앞뒤 문장까지 포함해 세 개의 문장을 놓치는 일과 같다(p.132). 저자는 책을 대상으로 이 말을 했다. 책 한 권을 통째로 읽는 것의 쾌락을 말하는 글이지만, 모든 이야기에 해당하는 말일 테다. 노래와 그 안의 가사에도.

 

 

We don't always get all that we want

Redefine the pain to something more

And we shall overcome as we've done before


우리가 원하는 걸 항상 가질 순 없겠지만

그 고통을 통해 뭐라도 얻는 척하면서

극복하고 나아가자, 언제나 그랬듯이

 

 

먼저 인용한 부분에서 한 줄을 더 했다. 이 고통을 통해 뭐라도 얻는 척하면서 ‘극복하고 나아가자’, 여기서 이 노래의 제목, overcome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진실을 꿰뚫어 보고 냉소적인 태도를 갖는 게 강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진짜 강한 것은 진실을 꿰뚫어 보고도,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자기기만이라 하겠지만, 이 고통을 통해 뭐라도 얻는 척하면서, 극복하고 나아가자(overcome).

 

 

 

김지수_아트인사이트컬쳐리스트.jpg



[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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