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반응할 우리의 눈 - 빅토르 바자렐리: 반응하는 눈 [전시]

글 입력 2024.01.1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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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할 수 없이 멋진 이름, '반응하는 눈'


 

나에겐 어떤 전시를 보든지 내 감상을 담은 별명을 지어보는 버릇이 있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만났던 [이집트 미라전: 부활을 위한 여정]에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났던 [페터 바이벨: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에는 [박제된 거울]이라는 이름을 붙였었다. 굳이 전시의 의도를 담지 않더라도 내 감상을 제목 하나로 요약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빅토르 바자렐리: 반응하는 눈]은 내가 별명 붙이기에 실패한 몇 안 되는 전시다. ‘반응’이라는 단어가 그 무엇보다 바자렐리를 잘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객의 감상이 제목으로 귀결되도록 기획에 들인 정성이 전시장 내부에서 선명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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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이 정말 좋은 안내문이었다. ‘20세기 추상미술의 한 장르인 옵아트를 대표하는 화가’라는 소개로 시작된 글은 전시가 바자렐리의 어떤 면을 조명하고자 하는지, 그의 옵아트가 어떻게 그를 ‘선구자’로 만드는지 일목요연하게 서술한다. 전시로의 첫걸음인 소개글을 찬찬히 읽고 바로 옆의 초상 사진을 바라보는 순간, 미술 교과서 한편에서 보았던 그림의 작가였던 바자렐리는 혁신의 꿈을 꾸는 야심가가 되었다.


전시 구역을 하나하나 넘어가는 과정마저 바자렐리의 광학 예술로 나를 이끄는 느낌이었다. 이동할 때마다 마치 그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듯한 벽을 지나가는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아래 사진과 같은 벽을 여러 개 지나면 바자렐리가 직접 출연한 당시의 영상을 만날 수 있는 아카이빙 공간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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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중간에 보이는 사람은 전시를 함께 즐겨준 내 친구다. 사용 허가를 받았다.

 

 

 

바자렐리, 야심에 찬 혁신가


 

바자렐리는 모국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미술을 시작하였으나 프랑스 파리에서 대부분의 업적을 일구어냈다. 상업 예술가로서 파리에 자리잡은 바자렐리는 안주하지 않고 광학 효과를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픽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의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색채의 대비를 어떻게 이용할지, 빛을 통해 질감을 어떻게 표현할지 깊게 연구한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바자렐리를 떠올렸을 때 흔히 생각하는 옵티컬 아트는 아직 등장하지 않으나, 1950년대의 바자렐리가 그려낸 [탄생] 연작으로부터 우리의 눈을 혼란스럽게 하는 작가의 특성을 뚜렷히 느낄 수 있다. [탄생] 연작에는 간단한 선의 조합인데도 어딘가 미간을 찌푸리고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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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 Vasarely, 1945, Chaux-vive. Oil on Plywood. Vasarely Museum, Budap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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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 Vasarely, 1952, Naissance-Q. Ink on Paper. Vasarely Museum, Budapest

 

 

바자렐리는 그래픽 아티스트에서 멈추지 않고 성공한 광고 디자이너, 추상미술 작가, 종래엔 공공미술 프로젝트 개발자가 된다. 수학적 계산과 과학적 광학 이론을 접목한 그의 그림을 보자면 ‘더 먼 곳’을 향한 그의 맹목적인 욕망이 이해될 것 같기도 하다. 아카이빙 영상에서 만난 바자렐리는 ‘과거의 방식에 천착하지 말 것’을 주장한다. “더 이상 그림에 아름다운 풍경이나 지난 세대의 양식만을 담을 수는 없다”라고 말한 바자렐리가 자신의 제자에게 ‘이 부분엔 00번 파랑색을’ 칠해달라 부탁하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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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 Vasarely, 1982, Vasarely Chess Set. Screenprint on acrylic, Perspex. Vasarely Museum, Budapest

Victor Vasarely, 1980, Du car de l'echiquier. Pencil and Acrylic on Paper. Vasarely Museum, Budapest

 

 

과거와 선을 그은 바자렐리는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만들어 냈다. 그의 조형 언어이자 체계인 ‘플라스틱 개체’에서 ‘색채 형태 알파벳’은 색과 형태의 두 가지 요소를 결합한 조형 단위로 기능한다. 바자렐리는 조형 언어를 창작할 때 언어의 보편성을 상당히 많이 고려한 듯하다. 그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에서 나아가 예술을 전 세계로 확장하여 ‘다채로운 행복의 도시’를 만들고자 했다는 사실은 이 전시의 제목이 왜 [반응하는 눈]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전시는 그가 만들어 낸 작품, 그리고 작품들이 담고 있는 사상에 주목한 것이다. 아카이빙 영상 속 ‘감정은 순간적이지만 사상은 지속된다’라는 바자렐리의 발언이 뇌리에 박혔다. 

 

 

 

바자렐리는 어디에나 있다


 
전시를 보고 나와 아카이빙 영상 속 그의 발언들은 곰곰이 돌이켜봤다. ‘과거와 깨끗하게 단절해야 한다’와 ‘감정은 순간적이지만 사상은 지속된다.’ 그는 옛 방법론을 버리고 새로운 예술 세계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과거 중시되었던 감정이 아닌 사상을 중시한 것 또한 그 세계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영상 내내 그는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로 향하고자 한다.


나는 그런 바자렐리가 주창했던 ‘예술과 과학기술의 협력’이 예술계를 완전히 뒤집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수채화를 배우고 소묘를 그리지만, 이제 나에게 가장 익숙한 형태의 그림은 컴퓨터상의 프로그램을 통해 그려진, 코드화된 색상표로 이루어진 그림이다. 색이라는 언어가 색상 코드라는 문자로 재정립된 셈이니, 내가 사는 지금은 어찌 보면 그가 말했던 과거와의 단절이 이루어지는 과도기일지도 모른다.


과거와의 단절에 관해 생각한다. 사실 나쁠 것만은 없는 이야기다. 백 년 전, 천 년 전에나 귀했던 가치를 논하는 작품들을 보고서 작가의 열정에 공감하거나 작품을 통해 무언갈 사고하기는 아무래도 힘들다. 세상 만물의 가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꾸준히 변해왔고, 이제 어떤 것들은 아주 고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자렐리의 보편적인 조형 언어에 대한 욕망은 어쩌면 더 이상 낡지 않을, 변하지 않을 가치를 향한 것이지 않았을까.


급변하는 세상에 치여 사는 나에게 ‘새로운 보편성’이라는 바자렐리의 예술 세계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가 제시한 보편이 또 하나의 급변이 되어 쏜살같은 세계의 흐름 일부가 된 것이 슬프지만, 누구나 본인의 사상이 담긴 예술을 표현할 수 있는 세계를 꿈꾼 그의 ‘조형적 통일성’은 생각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보편은 급변뿐만 아니라 예술의 확장에도 크게 이바지했음이 틀림없다. 만약 바자렐리가 0과 1로 만들어진 최신 컴퓨터 예술을 감상할 수 있었다면, 그는 분명 흥미로워할 것이다.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현실로 끌어내기 위한 그의 노력, 플라스틱 개체와 색채 형태 알파벳을 꽤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작품에 감탄하는 것에서 나아가 작가에 호감이 생기는 전시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바자렐리라는 예술가를 깊이 알아가고 싶게 해준 고마운 시간이었다.

 

 

썸네일: Victor Vasarely, 1979, Bi-Octans. Acrylic on Canvas. Vasarely Museum, Budapest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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