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일요일 같은 월요일

지루한 사람이 되었구나!
글 입력 2023.09.25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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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국 앓아누웠다.

 

2주 내내 주말과 저녁을 자격증 시험 준비와 약속들로 ‘테트리스’ 했던 탓이다. 원래 조금만 피곤해도 몸에 두드러기가 나거나, 눈이 건조하거나, 여드름이 나거나 하는 식으로 바로 반응이 오는 게 내 몸이었으니, 목이 붓고 콧물이 좍좍 나오고 땀이 비질비질 나는 게 이상하지도 않다. 오히려 지금까지 버틴 게 놀라울 정도.

 

추석을 앞두어 사람 만날 일이 많았다. 주요한 명절을 앞두고는 왜 이상하게 한 번씩 ‘뭉치고’ 싶은지. 우리 한번 봐야지, 그래그래. ‘추석’은 좀 그렇지? ‘추석’ 끝나고는 머니까 그전에 보자. 추석이라는 게 마치 테트리스 창의 하늘이라도 되듯이, 웬만한 약속은 이번주 까지가 데드라인이었다.

 

이번에 약속을 정하고 일정표를 조정하며 느낀 건, 우리가 더 이상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그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자잘한 이유가 있다. 서로 일을 하고 있거나, 큰집에 어른들을 뵈러 가거나, 여행을 가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우리의 삶의 방향이 많이 달라져서’로 일축할 수 있다.

 

 

2. 대학교 사람들 많이 만난 이야기

 

이번에 조금 희한했던 건 대학교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보통 내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중학교 친구들이나 고등학교 친구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선배, 후배, 동기들…지금이면 살짝 많이 쌀쌀할 캠퍼스에서가 아니라 서울 어딘가에서 만나니 그것 또한 신기했다.

 

선배랑 만나서는 서로 무얼 하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이야기했다. 주로 내가 고민을 이야기했고, 그 고민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에 관한 것이었다. 선배는 괜찮아~ 잘 하겠지 뭐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다. 이런저런 내가 지금은 생각하지 않고 있는 다양한 길도 보여줬다. 잠시 같이 놀았던 찰나의 시간을 이야기했고, 시간이 너무 빠름에 각자 놀라는 시간을 가졌다.

 

후배를 만난 건 아주 잠깐이었다. 파업으로 정상화되는 중이던 기차 시간표가 준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이번엔 잠깐 보고 헤어지기로 했다. 이번엔 내가 후배에게 요즘 무엇을 하는지 묻고, 앞으로 어떻게 가면 좋을지를 내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많이 이야기해 주었다. 굳이 후배가 자신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저녁값을 내겠다고 했다. 다음을 기약하며 그 제안에 응하기로 했다. 대신 가는 길에 허전하지 말라고 빵과 음료를 사 주었다. 언제가 다음이 될지 모르니까.

 

동기들을 만나고 나서는 기억이 잘 없다. 이 친구들과 하는 대화는 거의 ‘집단적 독백’에 가깝기 때문이다. 지금 정확히 뭘 하는 거야? 거긴 그런 곳이기도 하지. 나 요즘은 이걸 해, 걔는 그렇게 지내고 있더라. 근데 그때 걔는 그러긴 했어.

 

여기에 이번에 더해진 건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어떤 선배의 결혼이었다. 사실 그 선배와 결혼이 어울리지 않는다기보다는, 그냥 학과 사람들과 결혼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참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오래 사귄 다른 커플들을 세어 보다가, 이제는 다들 일도 하고 연애도 오래 하고, 결혼 이야기도 한다며, 우리들도 많이 변했다고 푸념했다.

 

 

3. 우연히 발견한 사진첩

 

한때 사진 찍는 취미가 있었다는 게 좋은 점은, 지금은 완전히 잊어버린 과거를 생생하게 다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이유로 오래된 USB를 열어볼 일이 있었는데, 글쎄, 거기에 내가 제일 활발하게 과 활동을 했던 때의 사진이 가득가득 있었다. 나는 대학교 때 매주 어느 요일에 디지털카메라를 들고나와 학교 사람들을 찍어 대곤 했다.

 

이상하게 다 봤던 사진인데도 새롭고 놀랍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난다고 생각했던 선배들의 얼굴은 앳되고, 차마 어디 공유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날것인 사진들도 많았다. 이 사람들이 지금은 다들 각자의 역할을 하는 부품이 되어 사회를 돌아가게 하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친구에게 ‘우리 천둥벌거숭이였던 시절’이라며 공유했더니 ‘ㅋ’ 글자만 몇십 개는 본 것 같다. 최근에 가장 크게 웃었던 때를 묻는다면 아마 이때를 고르지 않을까 싶다.

 

나도 참 재미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이렇게 뻔한 이야기만 나열해 놓은 글이라니! 다르고 재미있는 걸 찾아다니느라 바쁘던 때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러면서도 아직 철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아직 동기들을 만나면 옛날에 술 먹고 했던 실수들에 깔깔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앞에서 술에 취해 춤을 추는 사람을 보며 키득대고, 지하철에서는 손톱이 웃기게 생겼다며 몸을 꺾으며 웃다가 눈총을 받는다.

 

나중엔 더 이상 이런 것들을 하지 않는 때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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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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