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평범했던 이들의 이야기 :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화]

불행을 완전히 제거하면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는가?
글 입력 2023.09.0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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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많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 정유정, 『완전한 행복』, 은행나무, 2021, p.112

 

 

정유정의 소설, 『완전한 행복』에는 위와 같은 대사가 나온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완전히 맞거나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아예 불행의 싹을 줄여나가자는 태도에서 출발해 소거법처럼 행복을 이루어 가자는 것에도 분명한 일리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위 소설을 완독한 독자들은 이 논리에만 집착하여 파멸한 이의 이야기를 읽고, 다시금 저 문장에서 생길 오류에 대해 재고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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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영 중인 영화, <유토피아 콘크리트> 역시 궁극적인 인간의 삶, 행복에 대한 가치관을 생각해 보게 했다. 대지진이 일어나 황폐해진 서울엔, 놀랍게도 무너지지 않은 단 하나만의 아파트만 남았다는 설정이다. 극한 상황 속에 대부분은 죽었고, 아파트의 빈집을 얻기 위해서라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아파트로 모여들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아파트 입주자들과 주민이 아닌 사람들의 심한 충돌이 일어난다.


결국, 아파트 주민들은 외부인들을 내쫓을 것인지, 지금처럼 수용할지 투표로 결정하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이는 침묵하고, 어떤 이들은 이 날씨에 나가라는 건 곧 죽으라는 거 아니냐며 같이 살자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이 아파트에 들어와 사는 데만 몇 년이 걸렸다며 지금부터라도 우리만 살고 싶다고 말한다. 모두의 의견이 공감되는 바이다. 그래도 초반엔 ‘어려운 시기고, 현실적으로는 내쫓는 게 맞지’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그러나 영화는 계속해서 그들을 내쫓는 게 옳은 선택인지를 묻는다. 회의를 통해 마을 주민 대표를 정하게 되는데, 이전에 화재 사건을 진압한 영탁이 덜컥 대표님이 된다. 그는 대표로서 선두로 외부자들을 막아내 보지만, 두 집단의 갈등은 첨예하다. 한 외부인에게 맞아 영탁의 피가 눈알까지 흐르나, 분노에 못 이겨 굴러가는 눈알 사이로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이 외친다. '다 나가' 라는 단호한 대사에 칼날 같은 무서움이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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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외부인들을 내보낸 후, 영탁을 중심으로 방범대가 구축된다. 야외에 남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영탁의 힘은 점점 더 막대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거대한 힘을 의심하는 이들이 나타난다. 처음부터 외부인들을 내쫓길 반대했던 명화와 영탁의 옆집에 살던 혜원이다. 혜원은 영탁이 실제 거주자 김영탁이 아님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며, 그가 등장하면서 그의 실체가 밝혀진다. 실제로 영탁의 정체는 영화 도입부에서도 몇몇 힌트를 주고 있었다.


특히 자신의 이름 '김영탁'을 쓸 때, ‘ㄱ’이 아닌 ‘ㅁ’부터 쓰는 장면 등에서 관객은 유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영탁의 존재가 수상하다는 것을. 그리고 진짜 영탁을 죽인 '모세범'이라는 살인자였음을 알게 된다. 실제 영탁을 죽이는 과정에서 그는 하얀 바둑알을 가득 집어넣어 끔찍이 죽게 만드는데, 이때 쓰인 바둑알은 주민 투표에서 쓰인 바둑알과도 겹쳐 보인다. 주민 투표에서 하얀 바둑알이 내쫓자는 입장을 대변했고, 압도적으로 하얀 바둑알이 많았으므로 이는 욕망과 이기심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꾸역꾸역 집어넣은 바둑알들 역시 살인을 유도한 과도한 이기심과 욕망의 장치로도 이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영탁의 집에 모여 회의를 하는 와중에 바닥에 떨어진 하나 남은 바둑알과, 이를 응시하는 그의 시선에도 긴말 없이 불안, 불편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나 남은 바둑알마저 지워버리고 싶어 하고, 외부인들은 바퀴벌레와 같은 존재라며 또 다른 가능성은 차단하는 그의 논리 속에서 그 작은 바둑알과 혜원의 존재는 한치도 용납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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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영화는 나아갈수록, 영탁의 존재와, 그의 선택을 지지하는 것이 옳은가를 또 질문하게 한다. 다시 주민회의 상황으로 돌아가, 방범대에 홀로 참여하지 않겠다며 이기적으로 보이던 '도균'이 사실은 외부인들을 몰래 보호해 주던 이타적인 사람이라는 것. 그런 도균을 투신자살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도균과 같은 선량한 주민들을 불러세워 ‘잘못했습니다’를 몇 번이고 복창하게 하는 장면 등을 보며, 정말 누구의 잘못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등을 생각하게 한다.


영화는 계속해서 ‘즐거운 나의 집’을 들려주며 역설적인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들은 행복하기 위해 외부인들을 쫓아내고, 불행의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서 높이 담을 쌓았다. 하지만 이는 현명하다고 생각되는 판단의 배반으로 결말을 맞이한다. 영탁이 자신의 논리에 의해 버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민성의 희생은 안타까운 것이고, 고고하게 높은 명화의 도덕심이 한심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엄태화 감독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 안에서 가장 현실적인 희망이 무얼까를 많이 고민했어요. 그 문제를 명화란 인물이 상징하고 있고요. 명화 캐릭터가 중요한 이유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에요.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누군가는 질문이나 방법을 찾을 시도 자체를 안 하잖아요. 이 영화가 가진 엔딩도 명화처럼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끝났으면 했어요. 그게 희망 아닐까요?"

 

(출처: 류지윤, 데일리안, "엄태화 감독 "모든 걸 쏟아부은 '콘크리트 유토피아', 후회 없다" [D:인터뷰]", 20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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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영탁의 눈에 비친 명화와 혜원의 모습이 죄와 벌에 나오는 두냐와 소냐를 떠올리게도 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속에는 비범인의 살인은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밖에 없다는 오류가 많은 논리를 펼치던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러나 책 속 진정한 영웅이나 구원은 굳건해보이던 논리나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니었다. 피폐해지는 상황 속에도 흔들리지 않던 소냐와 단호하게 자신을 지킬 줄 아는 그의 여동생 두냐가 진정한 삶의 영웅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눈동자는 명화와 혜원처럼, 흑백 논리 속에서 행동하는 영탁의 눈과는 달랐다. 그리고 영탁 역시 이를 알기에 그들의 존재를 그토록 불안해했을 것이다.


제목에 쓰인 '유토피아'같던 아파트는 그 말처럼 현실에 존재할 수 없었다.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은 소문처럼 정말 사람들을 잡아먹던 사람들이나 다름없었고, 그들 자신의 이기심을 감추기 위해 타인을 이기적이라고 바라봄으로써 스스로를 속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도 이미 알고 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그래서 선과 악 사이에서 고민하는 복잡한 존재라는 것을.

 

그래도 우리를 구해줄 행복은, 덧셈 또는 나누기의 원리에 가까이 있으며, 사랑과 희망이라는 분명한 길잡이가 존재해 왔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파멸을 맞이한 영탁과 빛이 들어오는 예배당 안에서 숨을 거둔 민성. 죽음이었지만 분명 다른 죽음이었듯이, 결국 따스하게 온정을 베풀며 살아가는 또 다른 이들의 모습을 담으며, 피폐가 아닌 희망으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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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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