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샤먼으로서 디오니소스 되기 - 멀티미디어 음악극 '디오니소스 로봇' [공연]

글 입력 2023.11.2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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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아시아문화전당 홈페이지

 

 

사회 안에서 성장하는 인간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란다. 인간 공동체의 기본적인 사회 규범을 익히고, 서로가 그 규칙을 따르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그 위반의 경중에 따라 가해지는 처벌은 사회적 비난에서 법에 따른 제재까지 다양하다. 논리, 과학, (여전히) 이성이 기준으로 기능하는 현대 사회에 질문 없이 쏟아지는 다양한 정보를 그대로 수용하며 살아가는 존재. 우리는 이를 ‘사회화된 인간’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이때 ‘사회화된 인간’이란 사회 구성원으로 잘 기능하는 ‘로봇’과 동의어가 되지 않을까?

 

충동성은 언제나 절제해야 하는 것이며 절대 사회에 풀어두어서는 안 되는, 내재적이어야만 하는 속성이다. 우리는 개별 충동성을 성공적으로 거세하고 나서야 우리는 성숙한 인간임을 인정받는다. 이러한 인정 과정에서 스스로 질문에 답을 구하는 과정이 생략되고 간접 경험의 형태로 세계를 인식하게 된 우리의 앞에 갑자기 디오니소스가 나타났다.


“어쩌면 과다한 미디어 정보로 인하여 지금 이 시대의 인간들은 직접 부딪혀 경험하여 이해하기보다는 입력된 정보로 세뇌된 줄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한 멀티미디어 음악극 〈디오니소스 로봇〉은 세 명의 샤먼의 주문으로 포문을 열며, 포스트모던 굿 형식을 통해 디오니소스를 지상에 현현한다. 현대인이 일시적으로라도 자아 정체성을 잃는다는 것은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병리적 현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광기와 도취, 망아(忘我)를 목적으로 삼 이들이 있다. 게다가 의도적으로 비이성과 비합리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이유를 오히려 인간-되기라고 답한다. 지상에 광기와 도취의 신이 강림했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비정상의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인간-됨을 얻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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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아시아문화전당 홈페이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극장 1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설치된 거울에 반사된 푸른 조명 빛이 극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한다. ‘포스트모던 굿판’, ‘제의’와 같은 단어들로 설명되기 때문일까. 무대에선 숭고함이 섞인 묘한 긴장감이 맴돈다.

 

연주자 없이 놓인 여러 악기가 어떻게 활용될까, 악기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상상했던 기대를 좋은 의미에서 극단적으로 모조리 배반하는 이 극은 현대 기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이용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 위 스크린의 영상작품과 무용수, 가창, 조명 등 ‘음악극’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우리의 눈과 귀는 그 어느 공연보다 바쁘게 움직인다.


“전통적 시나위는 굿판에서 즉흥 변주 능력과 제의 절차의 이해가 요구되는 전문 연주자들의 음악”으로 (원일(2023), 〈시나위 개념의 새로운 확장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에 관하여〉, 《한국예술연구》 (40), p.330) 〈디오니소스 로봇〉은 “시나위(무악, 巫樂)의 현대음악 버전”이다. 무속음악은 신의 강림을 위한 제의 의식 때 사용되는 음악으로, 현대 사회를 이루는 근간이 되는 그 무엇과도 결을 같이 하고 있지 않은 ‘무속’은 현재 예술의 영역에서만 그 의미를 되찾는다. 비논리적이며 원시적이고 구식의 문화유산 속의 무악과 굿판, 샤먼의 존재는 여전히 비이성적이고 원시적이기도 하며 (바꾸어 말하자면) 유서 깊은 타 종교에 위상을 모두 빼앗긴 지 오래다. 그럼에도 디오니소스를 현현하기 위해 왜 굿을, 그것도 서양의 악기와 전통 악기, 전자음과 인간의 발성을 이용하여 벌이는가?

 

모든 것이 교차한 곳에서 신을 부르는 주문을 외는 것은 샤먼이다. 샤먼은 이제 인간도, 신도 아닌 신이 지상에 내리기 위한 하나의 통로이자 교차점이 된다. 샤먼의 발화와 소리 정령(연주자)들의 “로봇-됨을 거부하는” 연주는 자연 세계를 새롭게 재현하는 기원이며 공동체의 소망을 담은 기원이기도 하다. 그들의 기원에 얼굴을 드러낸 것이 내재적 충동성이자 도취성으로 망아의 경지에 이르는 광기 자체인 디오니소스라는 점이 새롭다. 인간됨을 요구했더니 광기가 현현한 것인지, 광기를 부르자 인간-됨이 뒤따른 것인지 우리는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없다. 사실은 파악할 필요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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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아시아문화전당 홈페이지

 

 

인간의 원초성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이 극은 신화와 종교가 지배하는 원시적 공동체 속 샤먼-됨에서 인간-됨의 실마리를 찾는다. 끊임없이 변주되는 시나위 속에서 강림하고, 사냥하며 축제를 벌이며 토해내듯 삶을 즐기는 디오니소스는 샤먼의 곡소리 속에 제 죽음을 준비한다. 점점 잦아드는 차임(chime) 소리로 마무리되는 극은, 과거 사람들과 피부로 와닿는 공간에서 생명을 영위하던 굿판을 예술의 영역으로 옮겨와 그때와 같이 모인 관객들에게 제의라는 경외감과 억압된 광기의 충동성을 표출하며 예술로서 자신의 영역을 공고히 한다.

 

섬세히 고려된 조명과 무대를 제단으로 형성하며 디오니소스의 심경을 보여주는 시각 영상은 우리를 압도하며 그들의 제의를 넋 놓고 바라보도록 만든다. 잊힌 샤먼의 발화는 하나의 웅얼거림, 혹은 아기의 옹알이에 불과하다. 원본 없는 복제품의 옹알이는 음계와 장단을 타고 넘어 우리에게 의미 있는 무엇으로 다가온다. 타령은 비명으로 혹은 환희로 읽히고 그들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는 발화로, 샤먼의 랩과 호응하는 신의 움직임은 로봇-됨을 깨트리며 광기에 진입한 정령들의 무아를 넘어선 망아의 경지로 읽힌다. 망아적 테크닉을 통하여 광기 도취상태에 진입한 이들은 비정상성과 동시에 인간-됨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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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아시아문화전당 홈페이지

 

 

이 극의 제목인 ‘디오니소스’와 ‘로봇’은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다. 인간이 로봇-됨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디오니소스-됨이 필요하며, 디오니소스-됨에는 샤먼의 주문과 기도가, 그를 뒷받침하는 무악, 시나위가 필요하다. 우리는 아주 치밀하게 구성된 오케스트라 음악에서 즉흥성을 찾고, 모든 움직임에 다른 이의 시선을 고민했을 무용수의 움직임에서 충동성의 해방을 찾으며 음악과 움직임, 영상과 빛이 감각적으로 제공하는 파동을 읽어낸다. 로봇과 신, 전자음악과 국악의 충돌이 일으키는 충격파가 관객석을 훑을 때, 우리는 디오니소스가 이끄는 신화적 삶 속으로 순간 끌려 들어간다. 신화적 삶으로 끌려간다는 것이란 이성과 광기, 자연과 문화,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현대 사회에서 사장된 질문을 꺼내게 되는 것이다.

 

전자 음향과 인성(人聲)이, 베이스기타와 아쟁이, 바이올린과 해금의 심포니가 예상 가능한 정도의 섞임을 뛰어넘는다. 질서 속 무질서의 섞임은 그 자체가 단일하다. 그러니 그것은 더 이상 어떠한 이분법의 질서로 나뉠 수 없는 ‘시나위오케스트라’가 된다.


인간이기 위하여 인간을 포기하고, 인간을 포기하는 순간 인간이 되는 역설의 굴레는 주체 없는 타자-되기, 정상 없는 비정상-되기, 인간 없는 동물/신-되기로 확장된다. 불완전성의 완전성이 지닌 모순, 샤먼으로서의 디오니소스-되기는 결국 질서 속 무질서의 섞임이며, 이질성에서 기인하는 동질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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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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