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키워드 인터뷰] 작은 생애의 인연 ‘숲속의 먼지’ - 이진희 작가

그림책 '숲속의 먼지' 이진희 작가 인터뷰
글 입력 2024.04.0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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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자신의 그림책에 어울리는 키워드를 선정하고, 해당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인터뷰입니다.

 

스크린샷 2024-04-04 오후 5.11.14.png

 

#태어남  #우정  #두개의문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그림을 그리고 책을 만드는 이진희입니다.



그림과 책은 엄연히 다른 장르인데,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고 계신가요? 예를 들어 일러스트 위주로 작업하시면서 책 작업을 하시는 분도 있고, 회화 작가인데 그림책을 만드시는 분도 있어요. 


장르에 경계를 짓고 작업하는 편은 아니지만, 요즘은 그림책과 개인 작업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특히 그림책은 제가 오랫동안 사랑해 온 매체예요. 한때는 짝사랑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림책이란 물성 자체에 빠져 있었고, 늘 잘 해내고 싶은 영역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책 앞에 서면 마음이 경직되거나 무거워질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림책 작업을 단시간에 해내기는 어렵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그림책에 대해 작아지는 마음도 그런 어려움에서 기인한 것 같아요.



그림책은 가꿔야 하는 부분이 참 많아요. 그림도 여러 장 필요하고 이야기를 쓰면서 동시에 그 둘의 짜임도 기획해야 하니까요.


아무래도 그렇죠. 이제는 작업을 빨리 해내지 못해서 아쉽다고 생각이 드는 마음을 또 다른 그림으로 해소하는 법도 알게 되어서 전보다는 자유로워요. 그래도, 저는 정말 다작을 하고 싶어요. 여전히 제 안에 아직 보여드리지 못한 이야기가 쌓여 있거든요. 저의 이야기를 독자분들께서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숲속의 먼지'는 작가님의 세 번째 그림책이에요. 이전에 출간하신 책과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주제나 그림체 등 자유롭게 말씀 부탁드립니다.


전작 ‘도토리 시간'은 첫 그림책을 작업하고 7년 만에 나온 그림책이었어요. 그 책을 만들 땐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그림 그리는 시간 그 자체를 많이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숲속의 먼지’는 어른들을 비롯해, 아이들이 좋아하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 작업했어요. 독자를 의식하며 처음 캐릭터를 만들어보기도 했고요. ‘먼지', ‘얼룩덜룩이' 같은 이름도 붙이고, 가능한 귀여운 스타일로 그림을 그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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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독자로 아이들을 생각한 계기가 있나요?


언젠가 모 작가님의 전시에서 아이들이 책을 가슴에 폭 안고 사인을 받으러 줄을 선 광경을 본 적 있어요. 그때 문득 ‘아, 그림책은 아이들이 보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장면이 오랫동안 인상 깊게 남아 있었나 봐요. 그리고 제가 워크숍을 할 때 어떤 아이가 손을 들더니 “이진희 작가님이시죠"라고 의젓하게 말하는 모습도 기억에 남아요. 굉장히 개성이 뚜렷한 아이였는데, 제 그림책을 좋아한다는 말이나 작업에 관한 피드백을 직접 듣고 만나는 경험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순수함이 잘 느껴졌거든요.




Keyword 1. 태어남


 

이 그림책에 태어남의 의미를 특별히 담게 되신 계기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그림책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무겁지 않은 분위기지만, 여기엔 저의 오랜 고민이 담겨 있어요. 어릴 적부터 ‘나 왜 여기 있지, 왜 이 세상에 태어나 있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이유를 찾기는 어려웠어요. 요즘도 종종 생각해요. ‘왜 여기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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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대한 답은 찾으셨나요?


아직도 명확한 답은 못 찾았어요. 천국이 있으면,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요? 그런 단순한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는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림책 이야기의 주인공이 ‘먼지'인 이유도 첫 번째 키워드와 관련이 있을까요? 가령 우리를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처럼요.


그런 이유보다는, 제가 먼지라는 단어를 좋아하기 때문에 떠올린 대상이에요. 먼지는 아주 작고,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의미 없이, 쓸모없이 존재해요. 덩그러니 태어난 느낌들 있잖아요, 거기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가요.


최근에 곤충들 보면서 작은 존재와 태어남에 관해 더 생각할 계기가 되었어요. 이 책을 만들 때쯤 이사를 했는데, 집 근처 산책로에 곤충들이 많이 죽어있는 거예요. 사마귀나 두꺼비가 너무 아깝게 죽어 있었어요. 이들도 이 세상에 왜 왔는지 모르고 태어나서 이런 죽음을 맞이하는 거잖아요. 그런 걸 보며 어떤 생명은 아무렇게나 태어나서 죽어버린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어요. 



처음 이 키워드를 들었을 때 사노 요코의 그림책 ‘태어난 아이'가 떠올랐어요. 이상하게도 그 책을 보며 태어남이란 주제에 관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만은 생각을 정리하기는 어려웠던 기억이 나요.


탄생이라는 건 여러 작가가 관심을 두는 주제인 것 같아요. 살아간다는 건 애처롭죠, 녹록지 않으니까요. 아이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제 커서 학교도 들어가고 경쟁도 할 테고, 취업이나 결혼 등 감당해야 할 인생의 과제들이 보여서 그냥 애틋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결국에는, 그런데도 잘 태어났다고 말해주고 싶더라고요. 탄생은 아이의 선택이 아닌 부모의 선택이라고들 말하지만, 한편으론 내가 선택한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요. 그런 가능성을 열어두면 삶에 대한 관점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어요.



작가님의 관점이라면,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경험을 적극적인 태도로 맞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태어남, 탄생에 관한 개념을 독자가 어떻게 이 책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을까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어느 매체에서 자신이 만든 모든 것들이 태어난 아이들을 열렬히 응원하는 의미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인터뷰했던 내용이 기억나요. 비슷한 맥락에서 저도 아이들에게 잘 태어났다고 말해주고 싶은가봐요. 아이들에게 “왜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좋은 순간도 있어, 좋을 때도 있어.”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그런 마음을 담아서 그림책 결말도 고양이와 먼지가 함께하며 행복해진 장면으로 마무리하게 되었죠.




Keyword 2. 우정



사랑과 우정의 차이가 뭘까요? 


사랑과 우정, 두 단어 모두 좋지만 개인적으로 미지근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지금은 우정이라는 은은한 감정에 더 마음이 가 닿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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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을 보고 누군가와 같이 이렇게 편안하게 있는 모습 자체가, 기적 같다는 생각했어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시간이 갈수록 깨닫고 있거든요.


이 장면을 실제로 함께 있지는 않더라도 어떤 마음의 은유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아요. 심지어 이제 연락을 하지 않게 된 상대에게도 이렇게 해주고픈 바람이 있잖아요. ‘잘 됐으면 좋겠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 하는. 



먼지는 고양이를 만나서 행복해졌을까요? 


이 그림책을 만들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결말을 맺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이 자꾸 들더라고요. 그러니 먼지와 고양이는 서로 만나서 행복해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서 행복해지더라도 나라는 사람 자체가 바뀌는 것 같진 않아요. 내가 원래부터 갖고 있는 어떤 부분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그림에 흔적처럼 남겨놓은 부분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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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왼쪽 아래 이 그늘 같은 검은 형상인데요, 그림책 곳곳에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그렸어요. 이 형상은 먼지가 고양이를 만나기 전과 후에 크기에 변화가 있어요. 자세히 보면 좀 작아지거든요. 하지만, 아주 사라지지는 않아요.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서 다시 커질 수도 있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에 가까울까요?


내가 나를 나답다고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근원적인 것, 어렸을 때부터 저와 항상 함께 있었던 무언가예요. 어릴 땐 저를 지배했다면,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예요. 커가면서 조금씩 흐려지는 게 느껴져요. 그래도 나와 앞으로도 계속 함께해주면 좋을 것 같은, 저라는 사람의 필수적인 부분이죠. 하나의 의미로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오래된 친구 같기도 하고요, 기쁨보다는 슬픔, 어두움일 수도 있고, 마음 깊은 곳의 서늘한 반짝임 같은 것이에요. 이 부분은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고 그때마다 변화를 겪기도 해요.



그렇다면 작가님께 타인의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요? 먼지가 고양이를 만났어도 내면의 어떤 부분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어서 궁금해졌어요. 그리고 전작 ‘도토리 시간'은 혼자의 시간에 관한 이야기인 반면 이번 그림책은 타인과 관계하는 결말을 맺는다는 것도 비교되고요. 


저는 사람과 소통이 힘든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사람들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사람보다 동물을 더 좋아할 때도 있었는데, 사람들 속에서 살아야 하니까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때로는 재미있었고, 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기도 했어요. 사람들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 속에서 저 나름대로의 시선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사람이라는 존재가 가장 궁금하고 신비롭다는 생각도 종종 하며 지내고 있어요. 




Keyword 3. 두 개의 문



두 개의 문이 등장하는 페이지를 펼쳤을 때 순간 장르가 바뀐 느낌이 들어 새로웠어요. 개념적이고 철학적인 표현이잖아요. 그런데 세 번째 키워드네요.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인가요?


이 페이지에 나온 두 개의 문에 관한 상(像)이 언어화하기 이전에, 제 머릿속에 선명하게 항상 있었어요.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 어릴 때부터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잖아요. 살면서 계속 선택의 순간에 부딪힐 때, 내가 선택하는 것들이 과연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다른 선택지는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고민한 경험이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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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에 대해 나중에 후회하게 되면 어쩌지’ 조바심이 나기도 하잖아요. 그럴 때 작가님은 어떻게 하시나요?


‘내가 선택한다'라는 사실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기로 한 다음부터는 마음이 좀 가벼워졌어요. 예전에는 누가 나 대신 선택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다 내가 선택해야 하는 거고 나는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해요. 무겁게 생각하면 한없이 무겁겠지만, 단순한 논리이기도 해요. 그래서 다른 걸 선택했을 나도 있겠지만, 지금도 좋다고 받아들이게 되었죠. 


먼지가 고양이를 두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떠났다면, 더 멋있는 먼지가 될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이 작은 세상에서 고양이와 함께 살기로 선택했다면 그 현실 속에 먼지는 존재하게 되죠. 세계의 확장은 좋기만 한 것일까, 늘 고민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떠남과 머무름이 작가님에겐 어떤 의미인지 자유롭게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예를 들어 머무는 곳이 견딜 수 없어 떠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싶어 떠난 사람들도 있잖아요. 떠난 사람들도 늘 완벽한 조건에서 그런 결정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떠난다는 것 자체는 아무래도 인생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게 되는 주제인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있는 곳을 떠나 다른 세계로 가는 것도 의미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살아있고, 이곳에 있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아주 길지는 않지만 삶을 살아오며 느낀 것은, 내가 살아있다면 언제든 나의 생각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지금 이곳에 있는 것도 어쩌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것만큼의 큰 여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모두의 삶이 완벽한 선택의 결과일 수는 없겠지만 오늘 하루 내 곁에서 작은 숨을 내쉬는 소중한 먼지들을 바라보면, 왠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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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 작가

 


그림책 재료로 어떤 걸 사용하시나요?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하지만, 주로 색연필과 연필을 사용합니다. 재료에 대한 마음은 늘 열려있어서 새로운 재료들을 사용해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장면은요?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꼽으면 다른 장면들이 서운해할까 봐 마음속의 비밀로 남겨두고 싶어요.

 

 

주로 작업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작업의 아이디어는 저의 생활 속에서 얻습니다. 별다를 것 없는 삶을 살며 지나가는 생각들이 그림책이 되어 왔습니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작업을 하며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나쁜 점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제일 좋아하기 때문에 이 시간을 더 많이 늘리고 싶습니다. 요즈음은 아주 단순히 그림만 그리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제일 많이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다음 작업은 어떤 그림책이 될까요?

 

아마도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그림책이 될 것 같은데, 조금 빨리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나에게 그림책이란?

 

우정이고 싶은 사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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