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표백되지 않은 일상 그리고 예술 - 아트페스티벌 숲

글 입력 2024.06.1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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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예술의 경계는 어디서 그어지는 걸까. 예술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느낀 건 중학생 시절 예체능 수업을 들었을 때다. 선생님들은 렘브란트, 피카소, 바흐, 모차르트 등 초국적인 명성을 얻은 이들의 작품을 보며 예술적이라 말하곤 했다. 예술이다. 그건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비범함에 대한 찬사였다.

 

학생인 내가 만든 찰흙이나 풍경화 따위는 예술과 거리가 멀었던 셈이다. 누군가의 훌륭함을 흉내 내면서 쌓인 실패들이 모여 일상과 예술 사이 경계선이 되었다.

 

성인이 되고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문화를 접하면서 그 경계가 느슨해지고 있다. 스무 명 남짓한 인원을 수용하는 소공연, 카페에서 열리는 전시, 길거리의 버스킹, 젊은 작가들의 책. 거대한 인기와는 별개로 작동하는 예술의 세계가 분명하고 다분하게 존재한다는 걸 목격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머릿속 예술가보다는 더 친숙한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예술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막연하고 숭고해 보이는 예술의 시작점을 추적해 보면 항상 보통의 사람이 있었다. 세계는 너무나 다양한 질서로 짜여있어 저마다 다른 감각을 느끼며 살아가게 되고, 보통의 사람은 동시에 독특한 사람이 된다. 나의 일상이 누군가의 비非일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술이란 보통의 개인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이야기로 공유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다르기도 비슷하기도 한 타자의 삶에 공명하고 때론 대항하면서 다양한 일상이 우거지는 숲을 만드는 게 결국 예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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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예술을 잇는다는 문구를 내 건 <아트페스티벌 숲>이 궁금한 이유였다. “커다란 나무와 아름다운 꽃, 그리고 이름 없는 여러 가지 작은 들꽃들이 어우러져 성장하는 숲처럼 예술가와 함께 지속 가능한 문화생태계를 만들어”간다는 수림문화재단의 모토에 공감했고, 그 방식을 엿보고 싶었다.


페스티벌은 서성협, 서인혜, 지희킴, 현우민, 최영 작가의 상시 전시, 전시 연계 프로그램, 간단한 놀이와 먹거리 부스, 공연으로 구성됐다. 행사가 진행된 김희수 아트센터에 들어가자마자 관람객 대부분이 아동과 청소년을 동반한 가족이라는 점에 놀랐다.


정체성의 경계, 디아스포라, 권위적인 텍스트의 해제와 같은 주제를 다룬 전시장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페스티벌은 아동 역시 해당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주체임을 인식하고, 그들의 시선에서 공간에 녹아들 수 있는 여러 체험(오락실, 그림그리기, 편지 쓰기 등)을 마련했다. 다양한 층위의 사람과 예술이 한곳에 모여 있는 모습이 말 그대로 숲을 이루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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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상시 전시가 열리는 공간을 방문했다. 어두운 실내에 조명이 은은히 빛났고, 지희킴 작가의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강렬한 색채와 그래픽이 산발적이면서도 규칙적이게,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형상으로 흩뿌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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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나비, 꽃 등의 익숙한 생물이 마구잡이로 편집되어 생경한 풍경으로 어우러지기도 했다. 작가가 자연물을 인식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적어도 이미지를 바라보는 기존의 관습이 그이에게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지희킴의 탈관습적인 시선이 돋보였던 건 책 위에 다양한 그림을 그린 <북 드로잉 프로젝트> 파트였다. 낯선 외국어 서적 위로 자신에게 가장 친숙한 언어인 드로잉을 끼얹은 전위적인 작품. 문득 학생 문화인 ‘교과서 낙서’가 오버랩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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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드로잉 프로젝트> 작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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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낙서

 

 

학생들은 또 다른 ‘낙서’를 보면서 자신들의 놀이 역시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물건과 규칙을 자기 마음대로 헤집어도 된다는 전복적인 유희를 어떻게 소화했을까. 그런 가르침이 어떤 재미난 상상과 결과물을 잉태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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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희킴의 전시 옆으로 현우민의 영상 전시가 이뤄졌다. 이주와 인간의 이동에 관심이 많은 그이는 아버지, 어머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아버지. 한국에서 태어나 결혼을 위해 일본으로 이주한 어머니.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일본에서 생활하는 현우민. 그들의 역사는 무척 다름에도 재일 한국인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인식되고 기억되는 경우가 흔하다.


협소한 인식에 의문을 가진 현우민은 개인 고유의 이야기와 그로 인해 생기는 거리감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가령 같은 곳을 수 분 동안 응시하는 영상이나 인터뷰 내레이션 간격을 길게 배치한 형식이 그렇다.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건 집요할 만큼 오래, 낯설 만큼 길게 하는 호흡에서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느림 속에서 비로소 저마다의 디아스포라는 자라나고 얽힐 수 있다고 증언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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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공간에선 최영 작가의 프로젝트 소설 <작은 빛>의 낭독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계단에 앉아 종이 속 텍스트가 청각과 시각 정보로 탄생하는 순간을 보았다. 글을 쓸 때 그것이 입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경우는 드물다. 납작한 종이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모종의 작용으로 누군가의 삶에 스며드리라 믿을 뿐이다.


텍스트가 다양한 옷을 입을 때 얻게 되는 생명력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글이 글에서만 끝나는 건 어쩌면 가혹하고 허무한 처사 같다. 생생한 생명체가 되어 누군가의 피부를 자극하는 것, 그렇게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글의 역할이 아닐까. 글의 잠재력을 깨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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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서성협 작가의 테트라포드(방파제) 전시와 서인혜 작가의 <잔상여행> 전시가 같은 공간에서 진행되었다. 다섯 작가의 작품이 밀접하게 모여 있는 것이 특징적이었는데, 전시 공간과 외부 공간 역시 엄격히 분리되지 않아 소음이 커지거나 낭독 퍼포먼스의 음성으로 영상 전시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감상에 방해가 된다고 몇 번을 생각하다, 문득 떠올렸다. 이곳이 ‘일상과 예술을 잇는 숲’이라면 되려 자연스러운 풍경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소란을 깨끗이 표백한 고요는 결코 자연의 소리가 될 수 없으니까. 모든 소란함을 품어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 숲이므로 이 공간은 분명 푸릇한 생명의 군락이었다.


노키즈존, 다양한 생명이 살아남지 못하는 숲과 바다가 머리를 스쳤다. 나는 언제부터 소리를 소음으로 여기게 되었는지. 그건 다른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나태한 의지가 아니었는지. 세계를 단일 농작하는 데 가담한 것은 아니었는지. 불편함을 거세하는 것만이 발전은 아니라고, 불편함의 근원을 찾아봐야 한다고. 왜인지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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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공연이 열리는 야외 정원에 들렸다. ‘전통연희’를 소재로 한 ‘연희집단 The 광대’의 <당골포차>, 퍼포먼스와 그림을 접목한 ‘크로키키 브라더스’의 <드로잉 서커스>, 국악기를 사용해 전통과 현대를 엮어낸 ‘악단광칠’의 <매우 춰라!>가 진행되었다.


사실 공연을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느 무엇보다 마음에 남았다. 그들이 또 다른 이야기를 펼쳐낼 새싹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깨끗한 미소 속에 지속 가능한 문화생태계의 답이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생애주기와 관계없이 일상에서 크고 작은 예술을 접할 수 있을 때. 일상과 예술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믿는 이들이 많아질 때. 예술이 지속 가능한 일상을 담보할 때. 그것은 가능해질 것이다.


세계란 숲이 다채로운 생명력으로 빛나는 걸 목격하고 싶어졌다. 그 따스한 품에서 나 아닌 많은 것들과 살아가고 싶어졌다.

 

마법 같은 상상을 하곤, 그 조각을 품은 채 살아가겠다고 작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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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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