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현신하는 예술가: 그의 몸을 파헤치다 ①

지금, 여기를 비추는 거울
글 입력 2023.08.1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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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미술, 하면 대부분 '단색화'를 떠올릴 것이다. 현재 세계 시장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한국의 작품이라 하면, 색을 빼놓을 수 없다. 그만큼, 한국의 '색'과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독창적이다.


색이 아니라면, 구상과 추상 그 사이 언저리에 존재하는 자연을 담은 작품들을 볼 수 있겠다. 자연에 대한 구상에서 시작하여 자연을 연상시키는 추상으로 이어지는 대서사. 그것 또한 한국 미술의 스타성이다.


'한국 미술'이라는 테두리에 묶이진 않지만, 그 또한 한국 미술인 부류의 작품도 있다. 서구의 쟁쟁한 미술가 사이에서도 경쟁력을 잃지 않는 뾰족함. 아주 많이 가져오거나 아예 덜어내는 실험적인 미술 또한 많은 이로부터의 이목을 이끄는 한국인의 미술이다.


하나의 말로 정리하고 싶은데, 그 독특함들이 너무나 천차만별이라 깔끔히 정리할 만한 단어가 없다. 단지 '한국 미술'이라 칭하면 그들의 특징을 심히 뭉개게 된다. 이러한 위험성에도 감히 욕심내어 한국의 미술을 하나의 특성으로 표현하자면, '섞임'인 것 같다. 정확히는, 섞임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이다. 섞여도 흐려지지 않는 고집이랄까. 좋은 것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적인 탁월함이 발견될 때 한국의 미술에 찬사가 쏟아지는 듯하다는 개인적인 감상이다.


그중 필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의 미술 중 실험미술, 그 안에서도 '몸'이라는 키워드를 보여주는 한 행위예술가이다.

 

*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이 명언은 예술가들이 자주 인용하는데, 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가지는 생의 시간은 짧으나, 무수한 존재가 함께 만들어가는 예술의 생은 길다는 뜻을 내포한다. 동시에, 짧은 생을 영위하는 예술가가 그의 작품으로 인해 길고 긴 예술 안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예술가에게 있어 작품, 그리고 이름은 생계와 직결된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은 곧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대서사에 하나의 점을 찍는다는 점, 그리고 그것의 창작자에게 길이 남을 명예와 바탕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그가 했던 생각들, 또는 그가 가진 철학. 나아가 예술가가 걸어온 길이 작품 안에 표현된다는 것은 오직 예술가만이 가질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메리트인 것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도 짧다."
 


반면 예술이 인생과 같이 짧다고 말하는 이건용 작가는 그의 작품에서 그의 이름에 대한 욕심을 배제한다. 자세히는 그의 머리로부터 생산되는 것들에 대한 사유와 같은 것들. 생각으로 인해 생겨나는 수많은 감정과 감각을 제외한다. 즉, '사유'에서 시작되는 붓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다만 그의 '몸짓'에는 철학이 담긴다. 지금, 여기. 나의 몸이 서 있는 그곳에, '투명함'이라는 가치를 담는 것이다. 이건용의 몸은 투명하다. 투명하여, 그가 사는 곳과 시대를 그저 비출 뿐이다. 어떠한 해석도 보태지 않고서. 그러나 확실히 존재한다. '비춘다', 혹은 '내보낸다'라는 행위의 주체로서.

 

이건용의 작품 중 '달팽이 걸음'은 그리고 지우는 것을 반복하는 행위의 결과물이다. 여기서 '그리다'는 어떠한 의미나 해석을 담는다기엔 지나치게 단순하고 일차원적이다. 그의 팔이 가는 대로 '선'은 그려진다. 반면, '지우다'는 '그리다'와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무언가이다. 행위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그리기 위해서 나아간 곳에 지움이 있었을 뿐이다. 즉, 그린다는 신체적 행위엔 '지움' 또한 포함되는 것이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조선일보.jpg
@조선일보,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우리가 알고 있던 '회화(혹은 그림)'라는 개념적 측면에서는, 이 작품더러 그가 '표현'했다는 설명 또한 모호하다. 그 말보다 선행하여 결정되어야 하는 것은 '그'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이다. '그'는 행위의 기저에 있는 사유인가, 아니면 행위 하는 그 몸 자체인가. 정신은 신체의 움직임을 만드는 '목적'인가, 아니면 신체로부터 받아들인 감각을 해석하는 '수단'인가.


지금부터 파헤칠 이건용 작가를 미리 요약하자면, 사고뭉치다. 사고방식이 어느 한 줄로 풀어낼 수 없을 만큼 뭉쳐있다고도, 사고를 번번이 일으킨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는 여러 개의 사고방식을 뒤섞고 반전시키는가 하면, 사회가 금지시킨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행하기도 한다. 이건용 작가를 사회적 흐름에 따라 편승하는, 정치적 인물이라 말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그에게 정치(定置)란 없다. 바뀌는 사회의 모습, 그리고 그로부터 전해지는 감각을 반영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사회가 그의 투명한 몸에 스쳐 지날 뿐이다.


그에게 '몸'이란, 그저 '몸'일뿐이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뿐이다. 입장을 표명하기 위한 매개도, 정신으로부터 명령받는 시종도 아니다. 몸이야말로 주체다. 주체의 현신이다. 세상에 드러낸 것. 그것은 그 자신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건용의 작품들은 새로운 개념의 '회화', 몸이라는 출발선에서 뻗어나가는 또 다른 직선적 행위라고 말하는 것이 온당할까.

 

이러한 그의 작품 세계는 몇몇 이론과 그의 작품을 연관지어서도 설명이 가능한데, 여기서부터는 다음 편에서 이어가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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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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