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도달한 자의식 - 최후의 라이오니 [도서/문학]

글 입력 2023.12.1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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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휴식기가 있다. 제각각의 이유로 휴식기를 갖고, 또 회복하며 원동력을 얻는다. 나는 현재 휴식기에 있다. 목적도 없이 반복의 삶을 살다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무력감이 몰려와 잠시 쉬고 있다. 그럼에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현재의 휴식기가 과연 미래의 내게 원동력을 가져다줄까 하는 불안도 함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주한 한 소설이 나에게 평온을 주었다. 노을 지는 한강을 바라보는 듯한 그 고요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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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의 단편 소설 <최후의 라이오니>의 주인공은 강인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로몬 종족이다. 로몬은 멸망한 거주구를 탐사-회수하는 죽음과 가장 밀접한 복제종족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매번 죽음의 공포에 압도당하는 ‘심약한 로몬’이다. 로몬 고유의 종족성을 거스르는 주인공은 오랜 시간 평범한 로몬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에 주인공은 스스로에게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기 종족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주인공은 마지막 희망으로 자신이 로몬임을 증명하기 위해 3420ED 탐사를 결정한다. 그곳은 다른 로몬들도 기피하는 곳이자 외계 곤충이 득실거린단 소문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주인공이 탐사를 결정한 이유는 시스템이 주인공에게만 의뢰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주인공은 왠지 ‘네가 쓸모 있는 로몬임을 증명해 봐.’라고 하는 것 같아 떠나게 된다.


3420ED는 최소 천 년 이상은 되어 보이는 인공 구조물이자, 현 기술 문명보다 월등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의문의 우주 거주구이다. 이미 멸망한 그곳은 기계의 반란 혹은 자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그리고 동료들에게 무언가를 증명하고 싶었다. 나 역시 로몬으로서 멸망의 현장을 마주할 수 있다고, 내가 심약하기만 한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 그러나 고작 자기 증명을 목적으로 오기에 이곳은 너무 위험한 장소였다.
 


이 3420ED는 불멸의 도시였다. 거주인들의 자의식을 건강한 복제 신체에 옮기며 불멸의 삶을 살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러한 고도의 생명공학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러다 3420ED와 교류하던 인접 문명이 기술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그들은 복제인간에게 고유한 자의식이 없는 게 맞는지 증명하라고 성화였다. 그러자 3420ED는 자체적인 고립으로 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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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영화 <겟 아웃>을 떠올리게 한다. 부유한 백인의 뇌를 건강한 흑인의 신체로 옮겨 그들의 자의식을 빼앗아 불멸의 삶을 사는 인간의 잔인한 욕망에 관한 이야기. <최후의 라이오니> 속 3420ED도 그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불멸의 과정에서 복제인의 자의식이 발현하는 일이 빈번했지만, 불멸인은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결국 그들의 자의식이 복제인의 자의식을 삭제하기 때문이었다.


이 소설이 <겟 아웃>과 다른 점을 시사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희망을 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소설에는 자명한 두 가지의 욕망이 있다. 자의식을 다른 신체로 옮겨 불멸의 삶을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자신을 증명하고 또 알고 싶어 하는 욕망이다. 즉 후자의 욕망을 가진 주인공의 여정이 우리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잘못된 종에 갇혀있다는 감각. 나는 평생 감금되어 있다는 감각을 느껴왔다.”
 


주인공은 매번 탐사 기록에 ‘실수’, ‘오판’과 같은 단어를 자주 썼다. 실수투성이에 두려움을 갖는 결함 로몬.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재의 우리와 같은 인류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처럼 ‘인간적’이라 느껴지는 이유는 결함을 가졌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탐사 도중 거주구 한쪽에 자리 잡은 기계 문명을 마주한다. 기계끼리 자생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곳은 딱 '연명'의 모습이었다. 기계들은 대개 파괴·손상된 부분을 어떻게든 죽은 동료 기계의 부품으로 덧대거나 하여 과거에 그들이 번듯한 기계였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 말 그대로 ‘고물’의 모습이 된 상태였다. 그중 기계의 리더 격이자 거주구의 전체 시스템을 맡고 있는 ‘셀’은 주인공에게 비틀거리며 다가와 말한다.


“라이오니, 드디어 돌아왔구나.”


주인공은 라이오니가 아닌데 말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기계들 또한 자의식을 갖고 있다. 고립을 결정했던 불멸 도시는 유희를 위해 자의식이 있는 기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불멸 도시에 불멸인의 자의식을 복제인에게 옮기는 과정을 막는 의문의 감염병이 발현했고, 불멸인은 점점 자멸했다. 그중 복제 과정에서 성격 결함으로 인해 폐기 대상이었던 복제인간 ‘라이오니’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복제인과 기계들을 모은 뒤 숨어 지냈다.


시간이 지나 모두가 기계를 두고 곧 멸망할 도시를 떠나려 할 때 라이오니만이 남아 기계들과 함께 지냈다. 그러다 라이오니는 셀에게 기계들을 다른 행성으로 옮길 방법을 알아 오겠다며 약속하고 떠났다.


이러한 내막을 3420ED 도시의 기계를 통해 전해 들은 주인공은 의문을 품는다. 만약 라이오니가 어느 행성에 자리 잡아 복제를 만들었다면? 만약 자신이 그 라이오니의 복제 중 하나라면? 그도 그럴 게 셀은 광학 신호 입력기가 파괴되어 시력이랄 게 없었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셀만이 느낄 수 있는 ‘라이오니’의 원본이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셀이 그토록 자신을 라이오니라 부른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당신은 라이오니가 아닙니다.”

기계는 말한다. 짧은 침묵 이후 한마디가 덧붙여진다.

“하지만 당신은 라이오니를 닮았습니다. 그렇게 믿고 싶을 만큼요.”
 


결국 주인공이 라이오니의 복제인지 아닌지 그 사실 여부를 판단해 줄 만한 것은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3420ED에 셀과 기계들을 두고 떠난 라이오니의 강력한 믿음을 느꼈다. 라이오니의 복제 중 라이오니처럼 결함을 가진 이가 3420ED로 도달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그리고 그 수많은 결함을 가진 라이오니의 복제 중, 오로지 주인공만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행동하였기에 다년의 시간을 거쳐 셀과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일 테다.

 

*

 

주인공은 로몬 종족 안에선 쓸모없는 로몬이었다. 하지만 3420ED의 기계들에게는 ‘최후의 라이오니’가 된다. 비록 그것이 거짓이고 그렇게 믿고 싶은 것뿐일지라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에세이가 있다. 그 에세이 속 한 문장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해 줄 것 같다.

 

“어떤 옷, 어떤 사람은 흔들리는 것으로 잠시 자신을 찾기도 한다.” - 김현 <아무튼, 스웨터>

 

그러니 흔들리는 것에 낙담하지 말고 계속해서 질문하고 걸어보자. 그럼 어째서인지 평온함이 느껴지는 나만의 3420ED에 도달할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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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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