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투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공연]

글 입력 2023.07.1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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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를 처음 접하였을 때는 2022년 한국뮤지컬어워즈 축하공연을 통해서였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중 각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프롤로그 넘버였다. 열정적인 플라멩코 멜로디, 박자, 그리고 춤. 그리고 마치 상복을 입은 듯한 새까만 드레스들. 그 모순적인 대비가 내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그때 처음으로 <베르나르다 알바>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였고, 드디어 이 작품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1.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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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뮤지컬은 각기 다른 개성과 매력을 지니고 있는데, <베르나르다 알바> 또한 이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의 매력이 있다. 예측할 수 없고, 온몸에 전율을 일게 하는 그러한 매력이.


첫 번째로, 치열한 생동감이다. 위에서 말했듯 플라멩코를 넘버 곳곳에 사용하여 스페인의 정취를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플라멩코는 온몸을 악기로 사용하는 장르인 만큼,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고, 또 온몸을 가볍게 두드리며 만들어지는 역동적인 춤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거기에 덧붙여 작품 내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와 비명소리, 악을 지르는 소리가 주는 에너지로 ‘압도당했다’는 느낌을 수시로 받았다. ‘자유를 향한 갈망’이라는 메시지가 피부로 와닿는 기분이었다.


두 번째로, 아슬아슬한 긴장감이다. 작품의 주인공 ‘베르나르다’는 남편이 죽은 이후 본인을 포함하여 자기 딸들과 어머니도 금욕적인 삶을 살게 하고 그들을 집안에 가두다시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젊은 딸들의 넘쳐나는 욕망을 억누를 수는 없었고, 베르나르다의 어머니 ‘마리아 호세파’는 치매에 걸렸음에도 장사 같은 힘으로 하녀들을 뿌리치고 집안을 마음대로 휘젓고는 했다. 거기에 첫째 딸 ‘앙구스티아스’와 결혼할 예정인 젊은 청년 ‘뻬뻬’의 등장으로 다섯 딸들이 가진 욕망의 도화선에 불이 붙기 시작한다. 자식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자식과 어머니 사이의 갈등으로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듯한 긴장감이 생겨난다.


세 번째로, 지독한 죽음이다. 이 작품의 다른 후기들을 읽어보던 중 ‘죽음에서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난다’는 구절을 본 적이 있었다. 이 문장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베르나르다의 두 번째 남편 ‘안토니오’의 죽음으로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되고 막내딸 ‘아델라’의 죽음으로 스토리가 끝을 맺는다. 무대 배경 안쪽에 있던 커다란 문이 열리고 닫히듯이. 위의 두 가지 매력을 생각했을 때는 다섯 명의 딸들이 어머니의 억압을 뿌리치고 모두 집 밖으로 달아날 결말을 예상했지만, 오히려 뻬뻬의 도망과 아델라의 죽음으로 나머지 네 명의 딸들이 계속 베르나르다의 집에 갇히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것이 나에게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2. 자유에 대한 갈망과 억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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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딸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정숙한 여성상에서 벗어나 자신도 자유롭게 남자와 사랑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여 베르나르다의 집에서 벗어나는 것. 즉, <베르나르다 알바>에서 의미하는 자유는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제도와 관습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가족으로부터의 자유.


이러한 자유를 철저히 억압하는 주체는 베르나르다이다. 본인 또한 젊은 시절 자유를 꿈꾸던 여성이었지만 남자들로부터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고 본인은 ‘창녀’라는 강박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딸들은 본인처럼 ‘창녀’로 만들 수 없다는 생각에 과도한 방어 기제와 그릇된 억압이 생겨난다. 검은 드레스와 코르셋, 그리고 구두. 제 마음대로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마리아 호세파를 제외하고 모두가 그렇게 옷을 차려입는다. 그리고 베르나르다는 제 말을 듣지 않는 딸에게는 폭력을 행사하고 딸들에게 억울한 일이 생겨도 입을 다물도록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댄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다섯 딸들의 반응이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첫째 딸 ‘앙구스티아스’는 어머니의 폭력과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뻬뻬와 결혼하고자 한다. 둘째 딸 ‘막달레나’는 이미 그 폭력과 억압에 순응하여 집에서 벗어날 의지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셋째 딸 ‘아멜리아’는 원체 순수하면서도 부끄러움이 많고, 넷째 딸 ‘마르띠리오’는 제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와 남자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 남자들에게 다가가는 것 자체를 꺼린다.


하지만 막내딸 ‘아델라’는 자유를 갈망하는 가장 대표적인 주체이면서도, 자유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남들이 검은 드레스를 입을 때 하얀 드레스에 맨발 차림을 하고, 주로 붉은 배경 안에서도 초록색 드레스를 입는 것을 꿈꾸는 주체적인 여성이다. 하지만 그녀가 앙구아스티스 몰래 뻬뻬와 사랑을 나누며 자신이 진정으로 뻬뻬와 사랑하는 사이라고 항변하는 모습은 ‘자유’와 ‘방종’의 위험한 경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아델라의 행동을 알고 있는 딸들은 서로 언쟁을 벌이는데, 아델라의 행동이 앙구아스티스를 배신하는 것이며 비도덕적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남몰래 뻬뻬를 사랑하여 제 사적 욕심으로 아델라의 행동을 반대하는 이도 존재한다. 이는 자유에 대한 갈망 속에서도 자유라는 주제로 여러 가지 의견으로 나뉘어 논쟁이 생겨나는 약자들의 다툼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집안의 ‘폭군’, 강자를 상징하는 베르나르다는 이 갈등을 손쉽게 정리해버린다. 아델라는 뻬뻬와 사랑을 나눴다는 것을 베르나르다에게도 들키지만, 오히려 그녀에게 ‘폭군’이라 칭하고 침을 뱉으며 반항한다. 뻬뻬가 아직 바깥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곳으로 달려간 베르나르다, 그리고 총성이 들려온다. 베르나르다가 뻬뻬를 죽였다고 생각한 아델라는 절망하여 제 방으로 들어가 목을 맨다. 그렇게 이 집안의 자유가 죽음을 맞이한다. 자유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처절한 슬픔, 그리고 그 뒤 다시 돌아오는 것은 강자의 억압과 침묵이었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혼란스러운 이 사회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자유와 더 나은 환경을 갈망하는 약자들, 그러나 그것을 이루려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그들 간의 다툼, 강자에게 직접 달려드는 소수의 용감한 자들, 그리고 그것을 조용히 방관하고 있다가 순식간에 그들을 권력으로 침묵시키는 강자. 그 끊임없는 악순환을 이 작품은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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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플라멩코 장르가 주는 신선함뿐만 아니라, 스토리가 주는 메시지와 상징, 그리고 그 속 여러 감정과 욕망의 충돌이 주는 생동감과 긴장감이 <베르나르다 알바>의 재미를 더욱 가미시켰다고 생각한다. 역으로 원작 희곡이 뮤지컬로 변신하며 주는 흥미진진함도 즐길 수 있었다. 뮤지컬을 보고 난 후 며칠이 지난 지금도 플라멩코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적인 작품, <베르나르다 알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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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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