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떻게 살아야 할까, 뮤지컬 "렌트"

새해, 어떻게 살지 같이 고민해주는 뮤지컬
글 입력 2024.01.0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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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돌아왔다. 매년 이맘때면 다이어리를 하나 사서 첫 장을 펼쳐두고 올해의 목표를 적는 시간을 가진다.


어릴 적 가장 큰 질문은 ‘왜’였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학교에 가야 하는지 궁극적으론 왜 살아야 하는지를 궁금해했다. 질문은 나이가 들면서 점차 변형되어 이제는 ‘어떻게’를 고민한다. 1년을 어떻게 보낼 건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다른 사람들도 이맘때면 왜 한해가 지나갔는지 보다 새해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할 것이다.


1년은 525,600분의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제 1년이 지나갔나 돌이킬 땐 참 짧아 보이지만 분으로 환산하면 참 긴 시간이다.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도 있고, 투쟁에서 이길 수도 있고, 연인과 싸우고 헤어질 수도 있고,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낼 수도 있고, 이루던 목표를 잃어버리거나 잃어버렸던 꿈을 되찾을 수도 있는 시간이다.


뮤지컬 ‘렌트’는 우리의 시간과 똑같이 주어진 뉴욕 사람들의 525,600분을 짧고 길게 보여준다. 새로운 해의 첫 달에 그들의 이야기를 엿보는 건 상당한 의미로 다가왔다.

 

 

[2023뮤지컬렌트] Christmas Bells.jpg

 


렌트는 특이하게도 가장 먼저 자기를 소개하는, 이른바 누가 보아도 주인공처럼 느껴지는 마크가 주변 인물인 로저, 미미, 모린, 조앤, 엔젤, 콜린스, 베니를 관찰하며 진행된다. 뛰어난 영화를 찍고 싶어하는 마크는 주변 인물을 촬영하면서 정작 그의 삶은 카메라 뒤에 숨긴다는 비난을 받는다. 늘 다른 사람에게서 한 걸음 떨어져 제삼자처럼 지켜보는 그는 사실 인생에 마음껏 부딪히기가 두렵다.


그런 마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1991년 크리스마스이브는 그야말로 기적 같은 날이었다.

 

크리스마스 종이 이곳만 제외하고 울리는 이스트 빌리지. 마약과 가난과 에이즈가 당연시되는 공간. 마크와 로저는 집세를 독촉당해 어찌 보면 절망적인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낼 뻔한다. 그러나 콜린이 다쳐 엔젤을 만나고 로저의 공간에 미미가 찾아오고 모린의 공연 무대가 망가져 조앤과 마크가 만나며 상황이 변한다. 콜린과 엔젤, 로저와 미미는 사랑에 빠지고 마크는 전 여자친구의 현 여자친구와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친구가 된다. 재개발을 반대하는 모린의 공연이자 시위가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기쁨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새해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영원히 끈끈할 것만 같던 연인들의 관계가 조금씩 분열되고 봄이 오면서 찰나 같던 행복이 사라진다.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리라 다짐한 마크는 시위 영상이 화제가 되며 TV 프로듀서에게 작품 의뢰를 받고 원하는 것과 다른 작업을 시작한다.

 

서로 뿔뿔이 흩어진 사이 모두를 ‘사랑’이란 이름으로 뭉쳐 놓았던 엔젤이 에이즈로 죽는다. 미미도 엔젤처럼 죽을까 두려워진 마크는 미미를 피한다. 기타도 팔아서 다른 마을로 떠나버린다. 한편 조앤과 모린은 각자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거리를 두게 된다.


그렇게 1년, 다시 돌아온 크리스마스. 자기 작품을 위해 회사를 그만둔 마크와 다시 인생에 남을 음악을 쓰기 위해 기타를 산 로저, 천사처럼 돈다발을 들고 온 콜린이 집에 모인다. 조앤과 모린은 길에 쓰러진 미미를 데려온다. 곧 죽을 듯이 열이 나는 미미 앞에서 로저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네가 나의 음악이었음을 시인하면서 떠나는 인연에 대한 두려움보다 사랑을 먼저 표현한다. 눈을 뜬 미미는 엔젤이 자신을 지켜주었다며, 엔젤이 내내 말하던 사랑을 읊는다.


렌트는 다른 뮤지컬에 비해 극단적인 갈등 상황도 갈등을 이겨내거나 이겨내지 못해 좌절하는 영웅적인 주인공도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다. 사소로운 사건으로 친구나 연인과 멀어지고 꿈과 돈 사이에서 갈등한다. 행복했던 시절이 길고 찬란하게 느껴지지만 결국엔 지나가고 다신 오지 않을 것처럼 그립다가도 또 새로운 행복이 찾아온다.


그렇게 흘러가는 1년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렌트에선 마약중독자, 에이즈 환자, 양성애자와 동성애자, 여장남자 등 수많은 소수자의 삶을 보여준다. 주인공처럼 보이는 것은 평범한 이성애자 남성으로 추측되는 마크지만 진짜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이러한 소수자다.


 

동성연애 양성연애 이성연애 삼각관계 경계 없는 모든 관계를 위해

레드와인 아이슈타인 번스타인 파격적 변신 실험 정신 자기 혁신 예술을 위해서

성적인 이성적인 비이성적인 엑스터시 형식 파괴

더 섹스피스톨즈 펑크락 가식과 위선을 짓밟기 위해

 


라비보엠이란 넘버를 보면 렌트가 지향하는 바가 좀 더 확실하게 보인다. 모든 관계, 모든 예술, 모든 진실, 모든 자유를 위한다. 렌트에선 삶과 동떨어졌지만 웅장하고 고결하고 비극적인 이야기 대신 삶과 밀접하기에 쪼잔하고 평범한 이야기를 설명한다. 그래서 더 깊게 와닿는다. 공연을 보는 게 아니라 그들의 일원이 된다. 91년의 크리스마스와 다른 상황을 맞이하게 된 92년의 1년이 안타깝다.

 

 

[2023뮤지컬렌트] La Vie Boheme.jpg

 

 

또, 그렇기에 엔젤이 하는 말이 가슴 깊게 받아들여진다. 

 

사랑은 살 수 없지만 빌릴 수는 있다. 우리 모두 사랑을 빌려주고 빌려 받는다. 갚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 초반 집세를 내지 않겠다며 ‘세상 모든 것은 빌려 쓰는 것’이라는 마크와 로저 목소리와 일맥상통한다. 비록 작년도 올해도 내년도 집세를 내지 않겠다는 그들의 마음가짐이 걱정되긴 하지만.


렌트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구는 ‘Not day but today’다. 오늘 이 순간을 즐기라는 뜻이다. 때론 로저처럼 과거의 기억 때문에 모두와 단절하고 싶을 때도 있고 때론 마크처럼 인생이란 레이스에서 한 발 멀어져 관찰만 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런 모든 순간에 시간은 흘러간다. 엔젤처럼 미미처럼 나를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않으면 기적 같은 크리스마스 이브는 결코 오지 않는다.


연초, 어떤 해를 맞이해야 할지 고민되는 시기에 ‘렌트’는 하나의 답을 준다. 현재에 충실하고 사랑을 주고받는 525,600분을 보내라고. 뻔하지만 뻔하지 않게. 마크에게 91년이 기적 같은 크리스마스였다면, 렌트를 보고 온 14년 지금도 그때만큼 기적 같은 새해를 맞이해본다.

 

 

 

전문 김혜원.jpg

 

 

[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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