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상처에도 날갯짓을 멈추지 않고 [영화]

글 입력 2023.07.1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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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를 떠올리면 내 기분이 롤러코스터처럼 오락가락했던 것이 기억난다.

 

어느 순간에는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했다가, 또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작은 일로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했다. 종종 친구들에게는 모진 말로 상처를 주기도 했다. 어리고 서투른 시절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감정이 아직 굳지 않은 찰흙 같아서 조물조물 만지다 보면 금세 모양이 바뀌곤 했다. 중학생의 나를 보는 것 같은 영화, <벌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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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중학교 2학년 은희의 삶은 참 어렵다. 공부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고, 오빠는 자신을 때린다. 은희의 숨통을 틔워주는 건 동갑내기 남자친구 지완이지만 그마저도 말없이 잠수 이별을 해버린다.


은희는 남자친구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에 울적해지지만, 그 아이가 다시 돌아오자 금방 행복해진다. 오빠한테 복수하기 위해 콱 죽어버릴까 싶다가도, 실제로 아파서 입원하니 같은 병실 아주머니들의 애정 어린 관심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삶은 그렇게 오락가락한 것이다. 희극이나 비극과 같이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말한다. “나는 영화에서 여중생을 관습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기존 영화가 여자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을 너무 해맑고 예쁘게 그린다. 나뭇잎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고(웃음). 나의 중학생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렇게 까르르하기도 했지만 건조하고 시니컬한 면도 있었다.”(김보라 감독 kmdb 인터뷰’)

 

특히 청소년의 삶에서는 이러한 기쁨과 우울의 교차가 더욱 선명하다. 아물지 않은 상처들은 마음 곳곳을 아프게 하지만, 자신의 곁에 마음이 통하는 한 사람만 있다면 금세 웃음이 새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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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애인, 가족과 후배 관계. 많은 것들이 은희에게 오락가락한 행복과 불행을 강요하지만, 은희의 곁을 잔잔히 지켜주는 사람도 있다. 한문 학원 선생님인 영지 선생님이다.

   

영지 선생님은 과묵한 편이다. 다툼 이후 어색하게 재회한 은희와 지숙을 가만 바라보다 “노래 불러줄까?” 하고 노래를 부른다. 무릇 다른 어른들이라면 했을 법한, ‘누가 잘못했고, 누가 잘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라는 충고는 없다.

 

은희는 금세 영지를 따르게 된다. 투박하고 무거운 감정들이 짓누를 때 영지 선생님을 찾아가 따듯한 차를 나누어 마신다.


자신을 사랑하지만, 오빠가 자신을 때린다고 말해도 은희를 보호해 주지 않는 부모님들. 은희를 존중하기는커녕 양아치 취급하는 선생님. 아마 은희에게 유일한 어른은 영지 선생님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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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견하는 일이 적었기 때문일까, 가끔 영지가 은희에게 건네는 조언은 남들과는 다른 무게를 지닌다.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절대로 가만히 있지 마.” 은희를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은 영지의 목소리를 통해 은희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전달된다.


나를 통째로 집어삼킬 듯한 슬픔에도 좌절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슬픔과 슬픔 사이에는 분명한 행복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가끔은 은희에게의 영지 같은 존재를 만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는 것이 삶이다. 작중 등장한 영지의 다음 대사처럼 말이다.

   

**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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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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