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여름을 맞아,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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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안녕,
6월이 되어 또 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 사람들이 기뻐하는 얼굴이 보고 싶었거든. 그리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어. 올해만 벌써 마흔 통에 달하는 편지를 썼지만, 네게는 글 한 바닥도 할애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어.
바빴지.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것을 끊임없이 보고 생각하느라. 나를 더 넓히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글쎄 오랫동안 앓아온 병이 나에 대한 침잠을 불러온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억지로라도 골몰을 피하고 싶었어. 세상이 점점 더 작아졌고 시야가 좁아졌으니까. 그렇게 기록도 멈췄고, 일기도 멈췄어. 너를 돌아보지 않았지. 그냥 널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몰라. 오랫동안 네가 미웠으니까.
나만 손 놓으면 다 끝나는 그런 관계가 있잖아. 네게는 입시가 그랬던 거 같아. 입시 실패는 오랫동안 너를 괴롭혔지. 울면서 매달렸지. 언젠간 될 거라고, 둘 다 서로를 잡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어. 너만 놓으면 되는 일이었어. 오랫동안 그냥 그런 관계였던 거야. 그 손을 놓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그치? 2023년은 홀로 맞는 해였어. 외롭고 지친 나. 아무것도 아니고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위치에 서서 동이 터오는 걸 보는 너와 ‘나’, 이게 전부인 우리들.
새해를 맞아 새로운 것들을 시작했어. 일주일에 한 편 이상 글을 썼고, 새로운 취미를 시작해 보려고 실과 바늘을 사고, 일을 시작하고, 사람을 만났지. 고작 이것 뿐인 너에게서 눈 돌리려 뭐든지 하려 했던 거 같아.
과다와 부족 사이를 오가며 허덕였어. 삶의 여백을 꾸역꾸역 채워가면서 또 달릴 준비를 했어. 제대로 쉬는 것도 뭔가를 한 것도 아닌 상태로 일 년을 허비하고서. 그에 대한 미안함으로 달렸어. 그러다 보니 지치더라. 주저앉아 돌아보니 외롭고 힘들었어. 그걸 인정하는 게 너무 오래 걸렸어. 나조차 너와 함께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지.
예전에 썼던 글을 기억해? 내리쬐는 여름 햇살 아래서 답답함과 불안함을 삼키며 느꼈던 것들을 적은 글. 살아있는 것들이 내뿜는 열기에 짓눌리는 기분을 담아 썼던 어떤 이야기. 예술가는 한 가지 주제를 영원히 반복한다고 그랬던가? 예술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예술은 삶을 닮았으니 어쩌면 삶을 살아가는 우리도 예술가라 볼 수 있는 건 아닐까.
그처럼 우리도 계속 같은 이야기와 계절에 천착했지.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 모든 것들이 열기를 뿜어내며 한없이 앞으로 뻗어나가는데 나만이 여기 그대로 있는 것 같았어. 여름은 그래서 고단했지. 다시 돌고 돌아 우리는 또 여름을 맞았네. 여름은 누구도 끌어안을 수가 없는데 어디서도 온기가 느껴져 더 사무치게 외로운 계절이라는 걸. 그때는 떠올리지 못했지. 그저 외로웠어. 우리 그동안 참 외로웠다, 그치.
외롭다는 걸 알고나니 더 외로웠어. 내가 멈춰있는 사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변하거나 변하지 않았고 우리는 시간이 우리를 관통하고 있다는 걸 실감했지. 숨이 벅차게 달리고 달려서 여기네. 벌써 반 년이나 흘렀어. 안녕을 묻고 있지만 사실 알고 있지. 너도 나도 안녕하지 못하다는 걸. 이제야 아무도 물어주지 않고 우리 서로에게조차 묻지 않는 안부인사를 건네봐.
우리 이제 홀로 있지는 말자. 무리하지도 말자. 그 얘기가 하고 싶었어. 외로움과 더위에 내몰려 혼자 울다 잠드는 밤은 그만 보내자. 이때 아니면 못 할 거라는 건 진실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괴담이기도 하잖아. 여기가 시작점이지만 종착지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지 말자. 해내지 못하면 어때. 그런 일로 세상도 삶도 망하지 않는다는 걸 이제 알잖아. 서로를 보듬자.
시인 이상이 여동생에게 해준 말이지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너를 위한 글이니 이 편지에서만큼은 오용하고 남용해 보며. “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제라도 네 편이라는 걸 잊지 마.” (이상, <여동생 김옥희에게>(1936))
안녕, 또 편지할게.
[박하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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