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숙성되지 않아도 향기롭고 달콤한 삼단 케이크 - 도서 '블랙케이크'

글 입력 2024.01.0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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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케이크는 진과 럼주를 담근 과일을 섞어 만든 케이크로, 크리스마스, 부활절, 결혼식에서 사용하는 카리브해 전통의 케이크다. 하지만 이 케이크를 정말 '카리브해 전통 음식'이라 할 수 있을까? 영국식 럼 케이크에 주재료로 들어가는 사탕수수 설탕은 아프리카에서 오고, 카리브해에서는 건포도와 커런트를 넣는다. 설탕과 럼주는 자메이카산, 포트와인은 포르투갈산, 커런트와 건포도는 유럽산, 대추는 튀니지 산이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음식의 전통성은 존재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앞서 나열한 재료들에 실려 오는 사회문화적 영향력과 케이크를 만들어내는 지리적 위치와 문화, 사회경제적 환경이 '블랙 케이크'를 구워낸다. 하지만 모든 집의 막걸리가 똑같이 막걸리라 불리지만 다른 맛인 것처럼, 블랙케이크도 그 맛은 제각각일 것이다.

 

오늘 리뷰할 <블랙 케이크>는 한 일가를 키워낸 수많은 역사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소설에 대한 리뷰에 들어가기 전, 이 이야기를 꿰뚫는 '다민족성과 정체성'에 대한 코드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 보고 싶다. 최근 '이주하는 인류'와 같이 최근 세계적으로 이러한 주제로 많은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것을 느낀다. 분명히 기술과 사고는 영토의 범위를 벗어났지만, 단일민족국가인 한국에서 '다민족성'의 코드는 잘 와닿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블랙 케이크>는 한국의 독자에게도 호소력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강조점이 최근 미국에서 주요한 이슈로 떠오르는 것들에 찍혀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삶의 역동성에 관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분명히 다른 지향점으로 치닫는 소설 <원청>과 비교하고 싶다.

 

<블랙 케이크>와 달리 <원청>은 중국이라는 하나의 민족적 배경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미국의 트랜디한 주제를 다룬 작가와 오랜 시간 명성을 쌓아온 중국 작가의 배경적 차이처럼, 이 두 소설의 차이점은 명료하다. <블랙 케이크>가 결국에는 '블랙 케이크' 라는 어떤 문화적 정체성을 고수하는 데 비해, <원청>은 좀 더 몇 걸음 뒤에서 하나의 역사적 순간에 지나간 민중의 삶을 다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소설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우선 몇 세대에 걸쳐 뻗어가는 사람의 인생을 좀 더 호의적인 시선에서 바라본다는 점에 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시대적 배경과 사건 사고들에 의해 끝없이 변형된다. 하지만 작가들은 삶의 변형 속에서도 삶을 이끌어가는 것을 인간과 인간의 관계와 연대에 두고 있다. 이러한 소설에서 묘사되는 인간의 삶이 비참할지라도 완전한 비극으로 남지 않는 이유다.

 

<원청>에서 주인공 린샹푸가 젖동냥을 키우면서 키운 딸의 이름을 린바이자라고 불렀는데, 이는 천개의 집에서 젖을 먹은 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의 인간이 삶을 이어간다는 것, 나아가서 하나의 일가가 살아간다는 것은 천개의 집, 천개의 환경에서 영향을 받은 것과 같다.

 

<원청>에서는 린바이자가, <블랙 케이크>에서는 블랙케이크가 그러한 상징물로 자리잡는다. 앞서 기술했듯이 여기서 좀 더 디테일을 추가하자면, 블랙케이크는 좀더 한 일가에 초점을 맞춘다. 집집마다 내려오는 케이크 레시피처럼, 정확한 계량수치는 없지만 할머니가 엄마에게, 엄마가 아이에게 알려준 것처럼 그 일가의 블랙 케이크는 세대를 거쳐 전수된다. 이것을 잘 이해한 어머니는 사이가 어색해져버린 남매들에게 블랙케이크를 먹으며 자신의 유언장을 듣도록 한다.

 

다시 돌아와서, 전반적으로 <블랙 케이크>는 블랙케이크에 때려박은 수많은 향신료와 과일들의 향처럼 부드럽게 섞여 전개된다. 소설은 엘레노어 베넷이 자신의 변호사에게 죽기전 8시간 오디오 녹음을 남기면서 시작된다. 그녀에게는 연구자로서 성공한 아들 바이런과 대학 중퇴 후 잘 적응하지 못한 딸 베니가 있다.

 

바이런은 보수적인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에 따라 모범적인 아들로서 그 옆을 지킨 반면, 베니는 인종차별로 대학 생활에 실패한 이후로 금전적인 문제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커밍아웃을 함으로써 가족들과 반목을 하게 된다. 바이런은 몇년째 가족과 만나지 않다가 아버지의 결혼식장에도 얼굴을 드러내지 못한 베니를 원망하고 있다.

 

어머니의 메시지는 그들에게 축하할 날에 언제나 남매가 블랙케이크를 먹어야 함을 상기시키고, 바이런과 베니는 블랙케이크에 대한 추억을 되살린다. 바이런은 어머니가 지진으로 집이 무너질 때도 '언젠가 특별한 날에 먹을' 블랙 케이크를 위해 숙성된 과일통을 가지러 집에 들어가던 모습이, 베니에게는 어머니와 함께 케이크를 만들던 기억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요리를 배우고 싶어했던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베니는 어머니에게 최근 블랙케이크를 만드는 것을 찍어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어머니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한다. 그들에게 '언니이자 누나'가 있다는 것이다. 이 시점부터 소설은 아주 오랜 시간부터 돌아가게 된다. 어머니가 진짜 이름 '커비', 아버지가 진짜 이름 '기브스'를 쓰던 카리브해 시절부터, 런던에서 만난 '엘레노어'의 이야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전부터 돌린 어머니의 진짜 이야기는 왜 베니의 이름이 '베네데타'인지, 엄마의 이름이 왜 '엘레노어' 인지, 왜 아버지는 어머니를 커비라고 말실수를 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극적인 계기로 만난 그들의 '언니이자 누나'가 블랙 케이크에 대한 이야기로 유명세를 타기시작한 음식 에세이 작가라는 사실까지 말이다.

 

소설은 내용의 주제와 인물의 관점에 따라 제목을 짓고, 필요할 때 마다 이야기를 끼워넣는 식으로 전개한다. 그래서 어머니의 관점에서 과거 이야기를 하다가, 바이런과 베니의 이야기가 나올 뿐만 아니라, 아예 다른 시점의 다른 인물의 이야기가 삽입되기도 한다. 그래서 소설은 다소 혼잡스럽다. 다루고 있는 캐릭터와 타임라인의 이동이 많을뿐만 아니라 결말에서 모을 증거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치밀하고 인내심있는 전개에 의해 '엘레노어 베넷'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는 깔끔한 끝을 맺었지만, 사실 다른 인물들의 묘사들은 아쉬운 부분이 많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남매 캐릭터들이다. 성공적인 커리어와 별개로 미성숙한 의사소통 능력을 가진 바이런, 수많은 연애 실패와 충동적인 선택으로 어려운 삶을 산 베니의 이야기는 엘레노어 베넷의 이야기와 완벽히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빨리 퇴장했다고는 하지만 엘레노어의 남편인 버트의 이야기도 충분히 묘사되지 않아 그가 어떤 생각으로 삶을 살았는가에 대해서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각 인물들이 한 선택들도 다소 당위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이런 극적인 장면에서 서술자의 시점을 다르게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학교를 그만두고 요리를 배우고 싶어 했던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베니는 어머니에게 최근 블랙케이크를 만드는 것을 찍어 보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독자들은 글의 완결성과 매끄러운 번역의 파도를 타고 가족들의 오랜 비밀과 몇 십 년과 여러 영토를 여행할 수 있지만, 각 캐릭터와 의도한 어떤 주제에는 오래 머무르지는 않는다. 애당초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이 너무나 많다. 가정폭력, 중매결혼, 직작 내 강간, 흑인탄압, 파도, 문화적 디아스포라, 환경 문제, 인종 차별, 인종 간 결혼 등 '블랙케이크'라는 주제 아래에 붙어있지만 충분히 숙성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책을 아주 흥미로운 책으로 기억하려 한다. 각 과일들이 충분히 숙성되지 않았으면 어떤가? 여전히 케이크는 달콤하고, 향은 조화로웠다. 책이 가지고 있는 혼란스러움은 작가의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다는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정도였고, 읽기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애당초 한 사람에 대해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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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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