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에드워드 호퍼의 엇갈린 시선을 따라서 -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

글 입력 2023.07.0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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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와의 첫 만남


 

호퍼의 그림을 처음 본 건 학교 부근에 있던 한 바에서였다. 시끌벅적한 대학가 술집과는 달리 손님 대부분이 혼자 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그런 곳이었다. 책장 넘기는 소리, 칵테일을 믹싱하는 소리와 이름 모른 재즈만 흐르곤 했던 그곳 한편엔 호퍼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림 속에 띄엄띄엄 앉아 있는 사람들,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엇갈린 시선, 칙칙한 밤의 풍경이 함께 있지만 함께 있지 않은 그 바의 사람들과 참 비슷하다 생각했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 에드워드 호퍼에겐 '미국을 대표하는' '도시와 고독을 그린 화가' 등의 수식어가 으레 따라붙는다. 개인적으론 너무 차갑고 고독한 호퍼의 그림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서울에서 진행 중인 에드워드 호퍼 전시가 많은 관심을 받는 걸 보며 많은 이들이 이런 그의 그림을 좋아함을 느꼈다. 아마도 그 그림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지레 짐작해 보며 그의 그림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다. 

 

 

 

더 다채로운 호퍼의 매력을 찾아서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의 저자이자 미술사가인 이연식은 국내 작가 중 최초로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세계를 조명하고 분석한 내용을 책으로 펴내었다. 그는 호퍼의 그림을 총 15가지 주제로 나누어 바라보고, 그의 작품 세계에 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그동안 '미국 대표' '고독과 도시' 등의 키워드로 오랫동안 소비된 에드워드 호퍼의 이면을 보여주고 호퍼의 세계를 더욱 다양한 관점에서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그는 더 다채롭고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감정과 이야기를 담아내는 호퍼의 매력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말하며 '시선' '정거장' '에로티시즘' 등 그동안 호퍼와 쉽게 연결 지어 논의되진 않았던 주제들까지 확장해 그의 세계를 집요하게 탐구한다. 

 

 

 

시선의 힘


 

여러 키워드 중 책 제목에 일부이기도 한 '시선'에 대한 내용이 가장 인상 깊었다. 에드워드 호퍼는 시선을 참 잘 활용하는 화가이다. 이 시선은 그림 속 인물과 인물의 시선이기도 하고, 때로는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이기도 하다. 호퍼는 누군가 자신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그림 속 피사체의 은밀한 순간을 화폭에 담아내 관객을 흠칫 놀라게 만드는가 하면, 그림 속 인물들의 엇갈린 시선을 통해 미묘한 긴장감, 고독함 등의 감정을 담아내기도 한다.

 

특히, 같은 그림 안에 존재해도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있는 인물들의 시선은 그의 그림 전체를 관통하는 고독감을 전달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철길 옆의 호텔> 속 담배를 피우며 창문 밖을 바라보는 남편과 소파에 앉아 책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내의 모습에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 미묘한 심정이 전해진다.

 

그들은 어떻게 그곳에 그런 모습으로 있게 되었을까, 왜 서로를 애틋하거나 따뜻하게 바라보는 대신 애써 회피하듯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까 인물들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게 만든다. 결국, 묘한 긴장감을 주는 인물들의 엇갈린 시선은 이를 바라보는 관객이 작품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게끔 만든다.


 

바라보는 나는 세상을 구성하는 일상의 파편, 거대하고 복잡한 리듬의 작은 부분과 우연히 맞닥뜨렸다. 우리는 서로에게 임의적인 존재이다.

  

호퍼는 관객을 공법으로 만든다. ... 여성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드러나 있다.

 

호퍼의 그림에서는 늘 시선이 엇갈린다. 관객은 그림 속 인간을 보고, 그림 속 인물들은 서로 다른 곳을 본다.

 

05. 시선

 


삭막하고 냉엄한 분위기를 풍긴다는 이유로 멀리했던 호퍼의 작품에 생각보다 더 다채로운 매력이 있음을, 더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음을 이 책을 읽고 깨닫게 되었다.

 

서양화를 전공하고 미술 이론을 연구하는 등 화려한 저자의 이력을 보아서 그런지 이 책은 당연히 친절하고 꼼꼼하게 그의 작품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미술서일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아는 미술서와는 사뭇 다르다. 교양 수업을 들으며 구매한 곰브리치 미술사에 비하면 이 책은 친한 친구와 나누는 대화 정도로 가볍고 격의 없다.

 

에드워드 호퍼라는 인물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나 작품의 배경을 논하는 대신 저자는 마치 전시관에서 처음 호퍼의 그림을 마주한 사람처럼 그림에 대한 감상평을 전한다. 이 포맷이 처음엔 당혹스러웠으나 그만의 매력이 또 있는 것 같다. 스며들 듯 호퍼의 매력을 체감할 수 있었고 10장도 펼쳐보지 못한 곰브리치 미술사에 비하면 훨씬 가볍고 재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마침,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전시가 진행되고 있으니 이참에 저자를 친구 삼아 미술관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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