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음악에 어떤 순간을 담을 수 있다면 - 최인 기타 리사이틀 'From here to everywhere' [공연]

내면에서 시작되어 퍼져가는 작은 울림
글 입력 2023.07.0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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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속에 어떤 풍경을 담을 수 있을까? 어떤 순간을 담을 수 있을까?

 

어느 날 불었던 바람의 소리를 담고, 아름다웠던 일출을 담고, 끊임없이 치던 파도를 담을 수 있을까? 아름답고 반짝였던 어떤 순간의 감상을, 누군가를 향한 무한한 위로의 마음을 담을 수도 있을까. 


‘From here to everywhere…’라는 부제로 열린 클래식기타리스트 최인의 독주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게 어쩐지 잔잔한 위로였다. 연주 내내 새소리 들리는 푸르른 숲속을 거니는 것 같기도 했고, 끊임없이 파도가 치는 어느 바닷가 앞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음악에 어떤 순간을 담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감히 가능한 일이라고, 이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연주회는 1부와 2부, 총 8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 곡의 시작 전에 짤막한 곡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가령 어떤 이유로 이 곡을 작곡하게 되었는지, 이 곡엔 어느 날의 감상을 담고자 했는지와 같은 코멘트들이었다. 그것은 어느 날 숲속을 거닐다 바라본 자그만 민들레의 홀씨이기도 했고, 어떤 외딴 섬에서 발견한 예상치 못한 이국적인 아름다움이기도 했다. 솔직한 언어로 이젠 아름다운 선율로 영원히 존재하게 된 어떤 순간들의 영감을 털어놓는 연주자의 얼굴이 순수한 행복함으로 빛나서, 정말 신선하고 멋지단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전에 오케스트라, 합주 연주는 몇 번 관람한 경험이 있긴 해도 독주회는 처음이었다.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만큼의 완벽한 정적, 그리고 그 텅 빈 공간을 기타 하나로 가득 채우는 연주회의 매력 또한 신선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고 편안한 선율들에 8곡 중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곡 없었다.  한곡 한곡 담백하게 이어져나간 연주회는 러닝타임이 무색하게 시간이 짧다는 감상마저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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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빛났다가 다시 스며들어 잔잔히 흘러가는 우리의 일상과도 닮아있는 선율들, 때문에 언제 들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곡들이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곡은 1부 2번째로 연주되었다 ‘산, 바다 : 클래식 기타 독주’ 곡이었다. 특히나 ‘바다’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데, 완전히 해가 지지도 어두워지지도 않은 코랄빛 하늘 아래에서 끊임없이 치는 파도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산, 바다: 클래식 기타 독주 - 산 -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또 어두운 길도 걷게 되는 등 산행을 하는 기분과 풍경을 묘사한 곡이다. 오르고 내리고 바라보게 되는 풍경 같은 것들을 삶의 오름처럼 생각하여 마침내 정상에서 바라보게 되는 빛을 표현한 곡이다.  바다 - 파도소리는 마치 나이가 많고 지혜로운 어떤 존재가 항상 같은 답을 조용히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곡은 그런 바다와의 대화를 표현한 곡이다. 음악적인 풍경이라는 개념으로 여행을 통해 삶을 통해 느끼는 공간들을 음악적 풍경(Music-scape)이란 틀에서 연작으로 쓰게 된 곡이다.

 

 

 

끊임없이 치는 파도 속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건 없는 걸까. 전부인 것만 같은 순간들도, 단단하고 무거워서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을 것만 같은 것들도 결국엔 다 쓸려가고 흘러가 종국엔 파도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게 우리의 삶인 것은 아닐까. 영원한 건 결국 없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기묘한 안도감을 준다. 커다랗게만 보였던 내 안의 짐들마저 작고 작아지게 하니까. 바다에 던진 어느 날의 슬픔도 반짝임도 모두 쓸려가고, 종국에 남는 건 영원히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는 파도뿐일 것이다. 

 

 

: 클래식기타와 바이올린 이중주 (초연) - 숲 속에 있을 때마다 나는 나무들이 너무 좋다. 작은 나무도 아주 큰 나무도… 특히 잣나무나 소나무 계통의 숲 속에 있을 땐 그 솔잎들 사이로 반짝이는 빛, 향기, 바람들을 좋아한다. 그런 숲 속의 풍경… 자신의 자리에서 아름답게 서 계신 분들이 많다면 푸른 숲 같지 않을까? 해서 쓰게 된 곡이다. 2022년 클래식기타 독주로 초연되었고, 이번 무대에서 클래식 기타와 바이올린의 이중주로 편곡되어 초연된다.

 

 

 

1부 첫곡으로 시작되었던 ‘숲’도 어쩐지 내 안에 커다란 울림을 남겼다. 햇살 가득한 숲속을 걸으며, 마치 가슴 벅차고 설레는 여정을 시작하는 듯한 감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섬세한 바이올린과의 합주도 좋았다. 



From here to everywhere: 클래식기타와 바이올린 이중주 (초연) - 우리는 내적인 가치보다 외적인 가치들을 결국 무시할 수 없다는 사회적 기준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것 같다. 끊임없이 경쟁하며… 행복의 기준은 타인의 시선에서 이루어지고 서로 밀리지 않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돈과 명예로 우리를 둘러싸려 한다. 그런 외적인 소음이 아닌 내적인 고요와 평화 작은 사랑의 마음들이 울려 퍼지기를 바라며 쓰게 된 곡이다.


 


마지막 곡이자 독주회의 전체를 관통하는 곡 ‘From here to everywhe’의 잔잔한 멜로디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잔잔한 바람 소리가 느껴진다. 맑게 개인 어느 날 활짝 웃었던 순간도 떠오른다. 어느 곳에도 있었던 어떤 행복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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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풍경을 바라봐도 더 많은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있다. 무수히 스쳐지나가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반짝임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바쁘게 살다 보면 가끔 우린 우리가 얼마나 많은걸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를 잊는다. 우리가 찾는 모든 답들은 결국 우리의 안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하루는, 삶은 그 자체로 반짝였음을. 


내 안의 목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면, 우린 우리 안에 들어찬 어느 날의 바람 소리도, 따스했던 햇살도, 아름다웠던 민들레 한 송이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안의 작은 평화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내 세상이자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번 독주회는 바쁘게 사느라 어쩌면 잊고 있었을 내 안의 어떤 반짝임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잔잔함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지금 이 순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쩐지 낭만적이고 잔잔한 기타 연주 특유의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정식 앨범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플레이리스트에 담아 자주 듣고 싶다는 작은 바람과 함께 글을 마친다.

 

 

[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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