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나, 무라" - 떠돔 3부작 [연극]

* 아나 : 자, 여기라는 뜻의 경상도 방언
글 입력 2024.01.0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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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아침잠이 줄었다, 일찍 눈이 떠지곤 해, 아직 하늘엔 어스름. 연말을 하루 앞둔 오늘, 23년 막바지엔 또 눈이 왔다. 새벽 거미에 하염 내리는 눈을 보았다. 소리 없이 나리는 눈. 이즈음의 세계는 지나칠 듯 고요하고, 하늘은 어둡고, 눈은 내리고, 펑펑 우렁차게 내리고,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이렇게 세상 가득 내리는데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는 것을 오랜만에 알아보았다.


동생과 점심을 먹으러 강남에 나왔다가 호되게 당했다. 거리는 온통 질척이는 눈으로 가득 차 있었고, 한 발 재겨 디딜 곳도 없더라. 어딜 밟아도 신발이요 바짓단이요 온통 검게 짓무른 눈 물이 치덕였다. 미끄럼은 또 어떻고, 한발 한발 모조리 세심한 걸음을 내딛는 건 피로했다. 아, 오늘 연극 있는데, 고된 하루를 직감했다.


혜화엔 16시 즈음 느지막이 넘어온다. 눈은 그쳤으나, 거리는 더욱 진창이 되어 있었다. 자동차의 행적을 고스란히 보존하는 눈, 그 수레바퀴 자국의 주변으로 눈이 밀리고 뭉쳐 솟고라져 있었다. 발을 조금 더 높이 높이 들어, 골 사이사이로 옮겨대며 어렵게 간다. 오늘의 극장은 '아트원시어터', 구면이다. 이렇게 속 시끄러운데 티켓부스는 사람으로 바글바글하다. 나라면 집에 가만있었을 것 같은데, 저 사람들의 연극에 대한 진심을 딱 그 피로감만큼만 더 실감하게 된다.


오늘 연극은 '떠돔 3부작'이라는 이름으로 초대신청이 왔다. '떠돔 3부작이라, 한 타임에 3개 연극을 연달아 진행한다는 건가, 그건 너무 피곤할 텐데, 어쩌면 2시간 안에 극을 마무리 짓기 위해 옴니버스 식으로 어레인지 했을지도 모르지.' 극장에 거의 다 왔을 때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즉 연극 정보를 미리 확인 안 했다는 말이다. 티켓 부스에 서서 이하의 일정표를 확인한다. 아뿔싸, 타임 별 스케쥴이 각 다르고 내가 초대받은 17시 일정은 하필 '찰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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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문화초대로 연극 '찰칵'을 관극한 기억이 있다. 우리 아트인사이트와 극단 '즉각반응'의 관계가 퍽 좋은 것 같아, 나만 해도 '새들의 무덤', '슈미', '찰칵', 벌써 3개나 초대받아 관극했으니 말이다. 모든 연출작들을 매우 인상 깊게 관극하였기에 극단 '즉각반응'의 이름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오늘은 셋 중 '찰칵'만 아니면 되는데, 하필 찰칵이라니. 티켓부스에서 최대한 불쌍하고 겸손한 제스쳐로 물어보았다. 17시 예약인데, 혹시 20시 거로 보면 안 될까요. 세상 풍부한 표정을 지니신 담당자께서 흔쾌히 수락하셨다. 한국어로 말씀하셨지만, '슈어~ 와이 낫~ 웰컴' 이렇게 느껴졌다. 하이틴 드라마의 교실에서 튀어나온 듯한, 소프라노 톤과 제스쳐.


3시간이 그대로 떴다. 연말에 걸친 일정이 많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알라딘에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들에게 선물할 책과 친구들에게 선물할 책을 구매하고, 내가 볼만한 책도 조금 뒤적거리다간 카페로 자리를 옮겨 책에다 편지를 썼다. 오프라인 피드백을 위해 우리 분담 에디터들의 글도 조금 살펴보고는, 어둠이 완전히 떨어진 20시 즈음, 눈길을 되짚어 극장으로 간다. 오늘의 연극, '무라'이다.

 

이하, 리뷰에 사투리 및 비문이 많습니다.

 

 

"무라", 내겐 아주 익숙한 말이다. 경상도 사투리거든. 경상 방언은 참 무뚝뚝해, 아니 무뚝뚝함이라 말해주기에 모자람이 많다. 정내미가 없어 아주 그냥, '생각만 하믄 허파가 히뜩 디비진다카이.' 이유인즉 생략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덕아, 지금 밥 먹을래?" 이 상냥할 법한 대담이 내 고향에서는 "… 밥 무라"와 같이 세상 인색하게 앞뒤 다 잘린 채로 표현된다는 말이지. 모계 쪽은 경북 북부, 영주·예천 일대인지라 강원도 사투리가 감미료처럼 섞인 것이 구수하니 말맛이 좋은데, 이놈의 대구 토박이들 사투리는 참으로 정내미가 없다. 뭐만 하면 다 명령조야, "무라", "치아라", '퍼뜩 인나라", "타라", "뭐하노", "이리 가온나", " … " 그래서인지 우리 고장에는 줄임표가 많아. 침묵이 많아. 그건 이 언어 양식 자체가 가지는 한계점이 아니었을까, 서울 생활이 길어진 어느 때쯤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연극 '무라', 경상도 부자 父子의 전형적인 일대기이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자가 화해해가는 전형적인 서사, 그만큼 흔한 일이라는 말이야, 그곳에서는. 당장 나만 해도 그렇고, 내 친구놈들도 다 매한가지. 거기서 자기 아바이랑 처음부터 정답고 갈등 없이 사이 좋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벌써부터 익숙한 기억, 무대는 단출하다. 아무런 소품이 없어 꽤 넉넉한 공간에 밥상 하나 딱 있었다. 그 밥상은 극의 시작으로부터 "아나*, 무라" 하고 내 기억 속으로부터 말을 건네고 있었다.


 * 아나 : 자, 여기라는 뜻의 경상도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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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수동'은 간만에 아버지를 찾아 고향으로 내려온다. 딱히 반가움은 없다, 반쯤은 의무감, 반의 반쯤은 내심 걱정, 마지막 반의 반쯤만 그리움. 거리에서 노숙하고 있는 아버지 '동수'를 찾아 집으로 데려온다. 에-, 항렬자나 돌림자야 그렇다 쳐도, 아버지 이름이랑 아들 이름이랑 똑 닮은 게, 거꾸로 뒤집으니 똑같네. 그리고, 우리 아부지 이름이랑도 똑 닮았네. 서씨 성에 동녘 동 자, 복 복 자 쓰시는 우리 아부지. 무대에서 "스동수 씨, 스동수 씨" 할 때마다 움찔움찔했다.


간만에 만난 두 사람은 싸운다. "와- 거 길바닥에 쓰러져가 노숙자 맹키로 자고 있는데예", "됐다. 치아라." 아들내미 나이도 깨나 먹은 것 같은데, 둘 행색이 초췌하기 짝이 없다. 아버지란 작자는 술만 먹으면 거리 아무께나 누워서 자기를 안 하나, 아들내미도 사정이 썩 다르지 않은 것이 연기를 하는가 본데, 어째 썩 변변찮은 것이 이번 오디션에서는 떨어졌나 보다. 초라했다.


아, 너무도 익숙한 광경. 아들은 틱틱대고 아버지는 씩씩댄다. 삶이 팍팍할수록 말은 더 빨리 날카로워지지, 그리고 서로를 아프게 찌른다. 간만에 내려온 아들은 자꾸 싫은 소리를 해댄다. 물론 그 기원이야 아버지에게 있겠지만, 사람 사는 게 꼭 누가 먼저 잘못한 사람 가려내서 인정시키는 식으로, 똑- 선생이 어린애들 화해시키는 거 만치로, 칼처럼 나눠서 잘잘못 따질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그 기원이 자기 자신에게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도, 받아들이는 것도, 이 땅의 아버지 된 존재들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던지를 이젠 알지.


수동의 삶엔 아버지가 없었던 것 같다. 태어나고 한동안은 아예, 커 나갈 때는 대부분. 군대에 면회도 한 번 안 와봤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하는 거로 보아 그게 인상에 깊게 남았나 보다. 실은, 그건 어느 한 꼭지에 불과하지. 아버지는 늘 없었지만, 면회의 일화가 가장 상징적이라서 그 이야기를 꺼내어대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안다. 그건 내 이야기기도 하니까. 그리고 항상 대화는 겉만을 맴돌지, "니만 면회 아무도 안 왔나, 나도 면회 아무도 안 왔다", "그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아부지", "마 시끄럽다." 아버지는 화가 나서 외친다. "원래 부모 자식 간은 무 無라. 아무것도 없는 기라!" 이런 거짓말쟁이들. 없긴 뭘 없어, 부모에 자식만큼 가까이 애달프고 닿고 싶은 게 어디 있다고. 차마 낼 용기가 없어 차라리 기꺼이 거짓말쟁이가 되려는 당신들. 내가 이 아저씨들 시뻘건 거짓말을 훤히 안다.


동수 씨는 술독에 빠져 사느라, 몸이 완전히 망가진 것 같다. 잘 때만 되면 왼쪽 아랫배를 쿡-쿡 두드리는데, 그게 꼭 우리 아버지 같기도 하다. 우리 아버지는 오른쪽 가슴을 자꾸 두들기는데, 그래도 담배를 못 끊는 걸 보면, 저게 내 미래인가 싶기도 하다. 아마 얼마 남지 않았을 시간, 아들과 아버지, 수동과 동수는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여행의 끝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겠지? 서로 이해함으로써 조금 더 닿게 되리라는 것. 이건 공식이자 필연인 것 같아. 나도 그랬거든.

 

**


이전 세대 사내들, 산업화니 민주화니 머시기니 하여튼 격동하던 시대의 급류에 휩쓸리듯 전전하신 우리 소시민 아버지들. 청하고 또 청하여 끝내 못 이기는 척, 그 이야기를 듣노라면 하나둘 알아가는 게 있어. 아버지 당신이 또한 끼인 세대이구나. 할아버지 대로부터는 엄격한 가부장을, 시대로부터는 급박한 현실을 겪으며 그저 앞으로만 살아낸 그 삶에, 온유함이라든지 다정함이라든지, 하여튼 지금 시대의 사람이 더부는 데 필요한 많은 것들이 없었다. 그대들도 함양받지 못했다, 그냥 살아온 거지. "니만 면회 안 왔나, 나도 아무도 면회 안 왔다." "우리 아부지, 그니까 너거 할아부지는 안 있나, 내 어릴 때 사흘 밤낮을 배가 아파가 골골거리니까는, 고마 푸대자루에 나를 넣어가 땅에다 묻어삤다 아이가. 이대로 죽겠다- 싶어서 살려 주이소, 살려 주이소 고함을 막- 치니까는 누가 쓰-윽 꺼내주데, 그게 울 어무이였다. 그때는 일 못하는 자식은 쓸모가 없었다. 소, 돼지였다 안 카나."


그래, 이제는 이해하여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해, 그게 왜 그다지 어려운 것이던지. 그저 손쉬운 이해를 바란 적도 없어, 아무리 치열하게 그것을 듣고 받아들이려 가슴 뜨겁게, 우격다짐으로 밀어 넣어도 퉁-하고 가슴으로부터 튕겨 나온 것들이 많다. 그 치열함 만큼만 나는 몰이해를 이해한다. 그러나 아버지, 이전 세대 사내들, 당신들은 참 미운 사람들이야. 도대체가 사랑스럽지는 못할 사내들이야. 쉽게 이해하지도 못할 사람들이고, 굳이 어렵게 받아들이기에는 도대체가 그럴 이유가 없는, 사랑스럽지 않은 사내들이야. 그대들이 그렇게 모질어진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나, 그런 그대들을 쉬이 사랑할 수 없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극의 언젠가부터 나는 속으로 이런 대화를 한다. '아부지, 나는 당신이 참- 밉소. 도대체가 성격 급하고 괴팍하고 고집 세고 좀스럽고… 하여간 존경심은 아니 드외다. 이제 좀 이해는 됩니다마는, 에잉-, 그래도 기분 나쁜 건 기분 나쁜 거요, 아부지. 어찌 됐든 간에 내가 당신 얘기만 듣고 '아이고- 우리 아부지, 고생하셨네, 편히 하대하옵시고 아무케나 하시씨요' 하고 속 깊이 받아들이기도 여간 불가한 일이 아니외까. 그리고, 나야 아부지가 아부지니까는 받아들이려고 애라도 쓰는 거지, 딴 데 가서 그리 말하면 몰매 맞소 아부지.'


울 아부지는 포크레인 사업하다가 사기도 맞고, 붕어빵 굽다가 깡패한테 팽개질도 맞고, 막노동하다가 다리도 부러지고, 공판장에서 참외 험다리*를 떼 와서 대전 휴게소 구석탱이에서 몰래 막 담아 장사, 즉 떨이를 하다가 단속도 당하고 하여간 휘황찬란도 하셨어. '아부지, 가만 듣고 있자니 좀 짠-하요. 어디가 하소연하련 들 들어줄 사람도 없고, 속은 답답하니 썩어 문드러지고, 내 그 기막힌 것들을 다는 모릅니다. 근데, 그래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하여튼 아부지 힘들었던 건 아부지 탓이 아니지마는, 외로운 건 아부지가 자처한 것이외다. 그것도 다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의 일이라는 걸, 이해하시겠소. 못하면 본인만 괴롭지.


 * 험다리 : 흠집 있는 과일이나 물건 따위를 이르는 말


아부지 내 안 있소, 정말 원망 많이 했수다. 억수로 많이 했소. 진짜로 우리 가족들한테 못되게 안 했소. 욕하고 고함지르고, 여기다 다 터놓고 말하기도 좀스럽수다. 그래도 나는 가만 듣고서는 이렇게 적어봅니다. 내 아니면 누가 그 인생 기억하겠소. 우리 부자 간의 갈등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나도 이제는 좀 지겹소. 지겹고 지겨워서, 그냥 신경 안 쓸래요. 대신 나중에 내 애한테는 그렇게 안 할라요. 두고 보시씨요.' 이리 으름장은 두었으나, 장차 나 또한 하나의 끼인 세대가 되겠지. 다음의 세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아마 나는 모르는 채로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그때 가서야 아버지를 완전히 이해할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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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 저차 그리하여, 마지막 장면. 수동과 동수는 긴 여행을 마치고 목욕탕을 간다. 배우들이 전라를 해서 좀 놀랐다. 목욕탕은 처음이라는 수줍은 아들의 말, 그리고 서로 등을 밀어주는 참으로 전형적인 장면. 옛날 기억이 나서 참,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같이 밥을 먹는다. "수동아, 밥 마-이 무라." 것 보라니까, '무라'가 어디 그 '무 無'였던가를. 이, 이 거짓말쟁이들.

 

그리고 동수는 그 말을 끝으로 고꾸라진다. 죽음으로써 수동은 동수를 완전히 받아들인다, 눈물로, 그리움과 후회로. 이 또한,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의 일, 우리 아버지도 할아버지께 그리 하셨지. 참 미운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나네, 오른 가슴을 팍- 팍 쳐대시는...

 

근데 나도 아마 저 아들이랑은 그리 다르지 못할까 싶소. 그래도, 오늘 따로 전화는 안 할라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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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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