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가의 수첩: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을 따라 [미술/전시]

글 입력 2023.07.0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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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7월 여름날, 에드워드 호퍼 전시 <예술가의 수첩>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시립미술관에 갔다. 사실 에드워드 호퍼를 처음 마주하게 된 건 작년 겨울,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있을 때였다.

 

나는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정말 많은 미술관을 방문했다. 뉴욕 여행 중 우연히 가게 된 휘트니 미술관에서 처음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미술관을 가득 채운 그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호퍼라는 인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휘트니 미술관에서 본 호퍼의 그림은 완성본이었다면, 이번 시립미술관 전시 작품은 초안에 가까웠다. 시립미술관 전시는 호퍼의 스케치가 주를 이뤄 화려한 완성작보다는 이면의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다소 거친 스케치를 보면서 감상자는 예술가의 고뇌를 발견하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 에드워드 호퍼라는 인물을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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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놓인 드로잉 에세이, 4B 연필을 손에 쥔 게 오랜만이라 어색했지만 한편으로는 설레기 시작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처음 미술 수업을 듣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예술가의 수첩> 프로그램의 목표는 호퍼의 시선을 따라 우리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다. 호퍼와 같은 예술가가 된 것처럼 기억이라는 낡은 서랍에서 특별한 삶의 경험과 순간들을 다시 한번 꺼내어보는 것이다. 흩어지는 삶의 조각들을 맞춰나가는 일, 감정을 글과 그림을 통해 풀어내는 일, 다시금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일, 이 모든 것들이 일상의 기록이 주는 의미이다.

 

에드워드 호퍼는 뉴욕주 나이엑(Nyack)이라는 곳에서 나고 자랐다.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넓은 호수가 펼쳐지는 그곳이 호퍼의 터전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예술가이자 여행가라고 칭할 만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여행하는 길 위에서 자신이 마주한 풍경들을 그는 수첩에 빼곡히 기록했다. 그의 수첩에는 그림뿐만 아니라 여행지에서 느꼈던 인상, 사용한 재료, 캔버스의 크기 등 여러 것들이 담겨있다. 훗날 아내인 조세핀 호퍼가 호퍼의 수첩과 그림들을 휘트니 미술관에 기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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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는 창문을 통해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는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산업화 시대를 살았던 호퍼는 변해가는 도시의 풍경을 빠르게 포착했다. 그에게 있어 창문인간(문명)과 자연(있는 그대로의 실체)를 연결하는 매개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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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들의 표정이 다소 어둡다는 점이다.

 

호퍼가 자연에 둘러싸인 나이엑에서 태어나 자랐던 것을 고려하면 삭막하게 변해버린 도시가 그에게는 다소 씁쓸하게 다가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행자의 스쳐가는 시선으로 바라본 뉴욕은 환상의 도시겠지만, 작품 속 인물들에게 뉴욕은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그런 점에서 창문은 인물들을 현실에 가두고 고립되게 만드는 무언가, 현실과 이상 그 사이의 경계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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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는 호퍼가 만약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현대적인 건물과 전통적인 옛것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좋아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처음 기획되었다고 한다. 만약 호퍼가 시립미술관을 오게 된다면 가장 먼저 창문에 눈길이 갈 것이다.

 

호퍼의 작품들이 말해주듯이 그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가 기차를 타고 여행하면서 창문을 통해 바라본 풍경들이 수평으로 이어져있다고 생각하면, 종이를 이어붙여 그릴 만큼 수평적 구도를 고집한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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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나도 호퍼의 시선을 따라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과 그것이 표현해 내는 바깥세상은 새로운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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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틀은 하나의 프레임이 되어 바깥 풍경이 마치 캔버스 속 그림처럼 하나의 회화 작품으로 다가왔다.

 

창문 밖 풍경이 발산하는 에너지라면 창문 속 풍경은 응축되어 들어오는 하나의 작품이다. 인간은 과거의 한순간으로 평생을 살아간다고 하는데 이날 내가 창문을 통해 바라본 응축된 작품이 그날 하루의 인상을 완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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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은 다른 예술가들과는 사뭇 달랐다고 한다. 고층 건물의 정면 혹은 외부 이미지를 포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호퍼는 건물 옥상에서 바라본 이미지를 많이 그렸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특권으로 나는 시립미술관 옥상을 올라가 볼 수 있었다. 올라서자마자 덕수궁 석조전 이를 둘러싼 현대의 고층 건물들, 그리고 그 뒤를 감싸 안은 산이 눈에 들어왔다. 호퍼는 이 풍경을 두고 과연 어떤 인상을 수첩에 담아냈을까.

 

익숙한 것을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작은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호퍼의 눈으로 도시를 바라본 것처럼 서울을 처음 여행하는 외국인의 시선으로, 작지만 그렇게 시선을 달리해보면 평범했던 우리의 일상도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각자가 본인 수첩의 주인공이라면 우리는 또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을 것인가. 상상만 해도 흥미로운 여정이다.

 

 

[박진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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