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네가 보지 않을 영화 [영화]

<먼 훗날 우리> (2018)
글 입력 2023.06.15 12:3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로맨스 영화가 보고 싶다고 했다.

 

어떤 영화를 보고 싶느냐고 묻기에 비포 미드나잇이나 봄날은 간다라고 말했다.

 

비포 선라이즈는 봤는데 나머지는 안 봤다고 하니 너는 그 트릴로지를 모른다고 했다. 유독 한국에서 유행한 영화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말을 돌려 8월의 크리스마스를 얘기했다. 네가 예전에 황동혁 감독의 영화를 돌려 보았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어서다.

 

내게 로맨스 영화는 자주 내림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가끔 생각날 때가 있을 뿐이다. 실행까지 옮겨 가지도 않아서 사람들이 로맨스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면 좀 신기하다.

 

그런 건 결국 날 외롭게 만들지 않나. 지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가상의 사랑이라는 건.

 

 

포스터.png

 

 

그날 밤 본 것은 <먼 훗날 우리>다.

 

보고는 싶은데 나는 요즘 바쁘니 네가 대신 봐 달라고 했던 영화 말이다. 영화를 볼까 잠을 잘까 하다가 이상한 보상심리로 잠 대신 영화를 택했고 예상했던 것처럼 많이 울었다.

 

낯선 천장을 보고 일어나 어금니를 깨물고 사는 삶이 남의 것 같지 않았다. 새로운 공간에서 희망을 찾는 것은 나의 몫이지만 모래 속에서 바늘을 찾는 게 더 쉬울 것 같은 세상은 나를 웃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나의 주변은 나의 마음처럼 비어간다.

 

결핍과 결핍이 만나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던가. 더럽고 징그럽지만 어쨌든 사랑이라고. 나의 사랑은 늘 더럽고 징그러웠다. 대도시에 사는 청춘이지만 사랑은 늘 시궁쥐 같았다. 반짝거리는 마음을 예쁘게 포장하는 대신 외로움이나 씁쓸함 같은 것을 등 뒤로 숨기기 바빴다.

 

나의 사랑은 나의 결핍을 상대에게 투사하는 방식이다. 누군가 사람의 애정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만 알면 기다렸다는 듯 달려가 헌신한다. 내가 그런 사람을 원하기 때문이다. 연민을 가지게 하는 상대에게 거미처럼 달라붙어 구멍을 메꾸고 줄이 다 떨어지면 죽는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 결국 굶어 죽은 사람처럼 외로움을 느낀다는 걸, 그래서 밑 빠진 독 같은 나를 호수에 빠뜨려 영원히 채워 줄 사랑을 원한다는 걸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라면 지금 내 눈 앞의 너처럼 애정을 갈구하지는 않을 테니까.

 

두 가지 유형은 혼재될 수 없고 만약이라는 말은 영영 무채색이다.

 

 

스틸컷.png

 

 

너는 이 영화를 보지 않을 것이다.

 

추천 목록에 있는 영화라는 건 서랍 속의 영수증과 같아서 나중에,를 곱씹게 되니까.

 

그리고 나도 이 영화를 다시 보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를 본 시점을 기억하고 싶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중 I miss you의 의미를 두 가지로 생각할 사람은 내가 될 것이다. 비록 놓친 쪽은 네가 되겠지만 너는 모를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 정말로 혼자가 된 쪽은 나일지도 모른다. 너는 떠나고 싶어했고 나는 돌아가고 싶어했다.

 

쓰다 보니 이해가 된다. 우리는 서로의 맞은편에서 걷고 있었구나. 엇갈리는 순간에 잠깐 옆이 되었던 것 뿐이구나. 돌아본 것은 나고 걸어간 것은 너다.

 

놓친 쪽은 나다.

 
 
[김지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