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의 사랑은 두려움을 지울 수 있을까?

글 입력 2023.11.2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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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의 발명 이래 인류는 기계 속에 특정 성 관념이 내재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해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외면해 왔다. 보편적인 성 관념에 기초하여 기계를 대한다는 것은 보통의 사고 범주 바깥에나 존재할 법한 유별난 발상처럼 여겨졌으며, 설령 기계에게 정말로 성별이 존재한다고 한들 그것은 인류가 편안한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하등 상관이 없는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공장 내에서 온종일 바삐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가, 새하얀 연기를 쉴 새 없이 내뿜으며 소란스레 움직여대는 증기기관이, 극장 뒤편에서 덩그러니 빛줄기를 쏘아대는 영사기가, 남성인들 여성인들 그게 대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인류가 기계 속에 성별과 같은 인간적 속성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대우를 달리하게 된 것은 기계가 자의식을 가지기 시작하고 나서부터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면 기계가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 이후라고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기계에게 정말로 자의식이 존재하는지의 여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기계는 인간의 단순한 작업이나 노동을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한 인간 개체가 수행할 수 있는 특정한 역할 자체를 대신하는 수준으로 성장하며 인류의 삶에 아주 깊숙이 침투해 버렸다. 우리는 더 이상 낭랑한 목소리로 취사가 완료되었다고 알리는 전기밥솥을, 우리의 음성 명령에 따라 TV 채널 등을 신속히 변경하는 인공지능 스피커를, 누군가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고 상냥한 어투로 안내하는 스마트폰을, 컨베이어 벨트, 증기기관, 영사기 따위와 마찬가지로 마냥 무미건조하게 대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그들은 대개 그 역할이나 분위기에 걸맞은 것으로 여겨질 법한 남성 혹은 여성과 유사한 형태의 음성 기능을 탑재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 제품들은 거기서 더 나아가 특정 성별을 연상케 하는 외형을 갖추고 있는 경우도 더러 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설령 기계에게 자의식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이식하는 것이 이제 인류의 편의를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필수불가결한 행위처럼 자리잡았다고 할지언정 그것에게 반드시 인간과 유사한 형태의 성질을 부여해야만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에게 특정 성별을 떠올리지 않게끔 하면서도 자의식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내재된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이 부족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구태여 인간의 성질을 모방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더욱 높은 수준의 기술과 인력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는 계속해서 기계 속 자의식에 인간적 성질을 부여하려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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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기계가 자의식을 가지는 현상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근원적인 두려움 때문이라고 상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각종 창작물 속에서 자의식을 지니고 있는 기계들은 대개 인류의 뜻에 반기를 들며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인류를 완전히 멸하려 하는 등 우리의 통제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디스토피아적 공포의 존재로 그려지곤 한다.

 

물론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 등의 작품 속에서 묘사되고 있는 극한의 디스토피아는 다소 터무니없는 수준의 비약적 망상으로 치부되는 것도 커다란 무리는 아니겠으나, 그러한 작품들 역시 결국에는 기계의 자의식을 향한 인류의 근원적 두려움을 바탕으로 하는 심리적 공포를 영리하게 이용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기계가 지닐 수 있는 제3의 자유 의지를 향한 인류의 불안감을 마냥 가벼이 생각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 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컴퓨터 'HAL 9000'은 자신의 의지를 바탕으로 인류의 뜻을 거스르는 기계적 장치의 시초 격인 캐릭터로서, 기계의 자의식을 향한 인류의 공포적 발상이 오히려 인공지능의 실질적 태동보다도 앞서 등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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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e: Open the pod bay door, HAL.

(내가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 HAL.

 

HAL 9000: I'm sorry, Dave. I'm afraid I can't do that.

미안합니다, 데이브. 유감이지만 그럴 수는 없겠군요.

 

- 스탠리 큐브릭,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中

 

 

'HAL 9000'은 기본적으로 남성과 유사한 형태의 음성 기능을 탑재하고 있으나, 마치 모든 감정적 요소가 배제되어 있는 듯한 특유의 무미건조한 억양은 청자들로 하여금 그의 목소리가 전혀 인간의 것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깨닫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속 'HAL 9000'의 등장 장면이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 더욱 무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유로 작용하기도 한다.

 

지금껏 자신들의 종을 제외하고서는 자신들과 필적할 정도의, 혹은 그를 넘어서는 수준의 사고 체계를 지닌 존재와 마주해 본 적이 없었던 인류가 당장이라도 자신들에게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지능적 존재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근원적 두려움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보편적 차원의 공포와는 궤를 달리하는 거대한 수준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그들에게는 넓은 아량이나 자비를 호소할 만한 일말의 감정적 사고조차 전혀 기대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류의 무력감을 가장 부추기는 것은 언젠가 기계들이 독립적인 자의식을 바탕으로 인류의 뜻에 거스르려 하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들을 만듦으로써 지금과 같은 재앙을 초래한 것은 결국 우리 자신들이라는 뒤늦은 후회와 죄책감에 휩싸이고 말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무력감에 대한 공포는 필연적으로 인류가 기계에게 자의식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부여하는 행위를 당장 중단하도록 만들거나, 기계에게 자의식을 부여하는 대신 그것이 우리를 적대하지 않으리라는 심리적 안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인간과 유사한 형태를 띠게끔 만드는 방향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인류가 택한 것은 후자였다. 기계의 발전을 꾀하는 과정으로부터 자의식의 형태를 완전히 배제하기에는 그것이 제공해 줄 수 있는 편의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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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자의식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탑재하고 있는 일상적 기계 제품은 대부분 인간과 유사한 형태의 높낮이 있는 억양과 함께 인간을 해하리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한 인상의 외형을 갖추게 되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것이 실제로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류에게 반기를 들겠다는 생각을 품을 수 있을 정도로 발전된 체계를 지니고 있는지의 여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전기밥솥이 자체적인 사고 과정을 거쳐 인류의 뜻을 배반하고 기계들의 반란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활기찬 음성이 아니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속 'HAL 9000'과 같이 억양 따위 존재하지 않는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와 같은 안내 메시지를 냉담하게 내뱉는다면, 이에 일말의 꺼림칙함조차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인간의 수는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일상 속에서 쉬이 접할 수 있는 기계 제품들은 모두 기계가 가질 수 있는 제3의 자의식과 관련하여 인간 개체 속에 내재되어 있는 근원적 두려움을 지워내기 위한 생리적 시도의 결과물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977년부터 시작된 <스타워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로봇 'C-3PO'는 기계의 자의식에 인간성을 부여하는 일이 그들을 향한 인류의 두려움을 지우는 데 있어 굉장히 효과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극중 'C-3PO'는 시종일관 모든 일에 호들갑을 떨며 불행에 휩싸인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등 기계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적인 면모를 한껏 뽐내는데, 이에 관객들은 'C-3PO'의 모습에서 'HAL 9000'을 처음 마주했을 때와 같은 경계심이나 두려움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우스꽝스러운 언행에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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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PO: We seem to be made to suffer!

우리는 꼭 고통받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아!

 

- 조지 루카스,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 中

 

 

기계의 자의식을 향한 우리의 본능적 경계심을 완화시키는 일이 그것을 이용한 편의의 비약적인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직접 목도한 인류는 단순히 인간적인 성질을 일부 지니고 있는 기계들을 개발하는 단계를 지나, 독립적인 존재로서 한 인간 개체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기계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획 및 개발 단계에서부터 능동적 인간성의 구현이 상정된 존재들인 만큼 인간의 상징적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젠더적 성질의 부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이는 특정 성별에 대한 사회의 고정적 관념에 기반한 경비 로봇, 돌봄 로봇, 섹스 로봇 등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결과는 역시 성공적이었다. 인류는 그들에게 전적인 신뢰를 보내며 자신들의 업무를 일임하거나, 그들에게 애착과 유사한 형태의 감정을 가지는 등 여러모로 친근감 어린 태도를 드러냈으며, 심지어 일부는 그들과 정서적 사랑에 빠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기계의 자의식을 향한 우리의 두려움이 본능적 수준의 경계심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그야말로 장족의 변화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듯하다.

 

다만 우리가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인간과 유사한 형태의 음성 및 외형과 같은 인간적 프레임을 이용해 그들의 기계적 성질을 완전히 덮어버렸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항상 유념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돌봄 로봇이나 섹스 로봇과 같이 인간과의 정서적 유대가 중요시되는 제품들의 경우, 그것이 인간과 유사한 면모를 지니고 있을수록 더욱 좋은 제품으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그들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정말로 그들을 향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오로지 가시적인 수준의 영역에서 드러나고 있는 그들의 인간적 성질을 향하고 있는 것인지는 비교적 자명해 보인다.

 

2007년에 발매된 에픽하이의 노래 'Broken Toys'는 우리가 인간과의 유사성을 기준 삼아 로봇의 우수성을 평가하고, 그들과의 교감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인간들의 세계를 관찰하는 인공지능 로봇의 시점으로 진행되고 있는 해당 노래 속에서 인간들은 자신들과 유사한 능력을 지닌 특정 로봇을 향해 경탄의 눈길을 보내거나, 로봇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 면모에 정서적으로 크게 동화되는 듯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가사의 내용으로부터 딱히 커다란 이질감을 느끼지 못한다.

 

 

 

 

날 만든 그는 내가 완벽하다고 말했죠

숨도 쉬고 꿈도 꾸고 소망했죠

행복하다는 게 무엇인지 몰라도

피아노를 칠 때 시를 쓸 때 너무 좋았죠

세상은 놀랐죠 진짜 사람 같다고

내가 만든 모든 게 아름답다고

 

- 에픽하이, 'Broken Toys' 中

 

 

우리가 기계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가 그들이 모방하고 있는 인간과의 유사성 혹은 우리가 다른 인간 개체에게서 기대하는 특정 역할이나 미적 가치에 대한 대체성에 있다면, 과연 인류가 그들에게 의도적으로 부여한 인간성이라는 장막이 걷힌 뒤에도 그 사랑이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찰은 다소 회의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굳이 인간과 유사한 성질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제3의 정체성을 애써 외면하려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떠올려 보면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기계에게 부여한 인간적 성질은 그들의 자의식을 향한 인류의 본능적 두려움을 가리기 위한 도구적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기계의 섹슈얼리티나 젠더 따위 외부에서 주입된 인위적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오늘도 모든 진실을 서정적 동화의 뒤편으로 밀어 넣은 채 그들과 눈먼 사랑에 빠지려 한다. 우리의 사랑이 두려움을 지울 수 있다고 굳건히 믿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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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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