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부의 얼굴들 - 3 [여행]

글 입력 2023.06.1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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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가까운 어느 거리에 들어서자 한국 간판들이 하나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김치찌개, 돼지갈비 맛집. 정말 세계 속의 한국이구나. 나는 괜히 반갑고 뿌듯한 마음으로 거리를 훑었다. 낡은 가게 앞에는 꼬치를 굽는 연기가 무람없이 날렸고, 무더운 날씨에 좌판 위에서 축 늘어진 생선들을 파리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망고와 바나나, 오렌지와 두리안을 쌓아놓은 과일가게는 사람들이 자주 들고났다. 낯선 이국의 풍경과 냄새가 물큰 올라왔지만, 그 속에서도 어쩐지 한국어의 농도는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떡볶이, 마라탕, 제주 흑돼지. 이제는 한국의 어느 거리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어느새 반가운 마음은 사라지고 남은 약간의 찝찝함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중간 중간 유난히 세련되고 깔끔한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리를 향해 얼굴을 내민 간판에 큼지막한 한국말이 쓰여 있었다. ‘마사지&스파.’ 분명한 우리의 다음 목적지였다. 대부분의 한국인 관광객이 찾는 필수 코스라고 했다.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공간. 가이드는 자신도 가끔씩 이곳에서 마사지를 받는데 너무 잘해준다며 바람을 잡았다.

 

나를 위해 봉사하는 누군가와 그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는 또 다른 누군가.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제공하며 살고 있구나. 누구도 누군가에 대해 완벽히 우월하지 않고, 누구나 누군가에게 완전히 열등하지 않은 채로 우리는 순환하고 있구나. 문득 누군가에게 몸을 맡긴 채 우월감을 만끽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나는 어쩐지 조금 부끄러워졌고, 서둘러 건물 안으로 몸을 숨겼다.

 

소란한 바깥과 단절된 실내는 아늑했다. 은은한 무드등이 군데군데 빛을 흘려보냈고 있었고, 그 빛들이 만들어낸 둥그스름한 주위를 조용한 음악이 감싸고 흘렀다. 흰색 유니폼을 깔끔하게 차려 입은 현지 직원들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머리가 희끗한 한국인 사장은 밝은 미소로 계산을 마친 후 우리를 안내했다. 그가 손짓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정중하게 두 손을 모은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환한 미소를 따라 긴 복도를 지나니 침대가 놓인 어두운 방이 나왔다. 마치 그들의 환대에 홀려버린 듯, 어둡게 밝혀진 주광색 조명 아래에서 나는 부끄럼 없이 옷을 벗었다.

 

현지인 안마사가 나의 몸 상태를 묻는 (한국어로 된) 친절한 설문지를 내밀었다. 집중적으로 마사지 받기를 원하는 부위가 있나요? 목과 어깨. 아파서 조심해야 하는 부위가 있나요? 허리. 임신 가능성이 있나요? 남자입니다. 헐벗은 나체를 얇은 가운으로 간신히 가려놓은 채 나는 내 몸의 구석구석을 생각하며 설문을 작성했다.

 

“허리 아파요?”

“스트레칭 괜차나요?”

 

설문지를 체크한 안마사는 가운을 벗겨 옷걸이에 걸어놓은 후 나를 조심스레 침대에 눕혔다. 바닥을 보고 누운 나는 얼굴보다 약간 작게 뚫린 구멍에 이목구비를 욱여넣었다. 얼굴이 텅 빈 허공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나는 반드시 꼴불견일 나의 얼굴을 생각하며 조금 웃었다. 잠시 후 안마사가 오일을 묻힌 손으로 내 몸을 조심스레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섬세한 손길을 따라 페퍼민트향이 공간을 향해 미끄럽게 퍼져나갔다. 빛, 냄새, 사람. 공간을 채운 모든 것이 거스르고 싶지 않은 편안함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스톤마사지는 둥그스름하고 매끄럽고 뜨거운 돌멩이를 이용해 몸을 덥히면서 이어졌다. 돌멩이가 남겨놓은 열기에 풀어진 몸 위로 안마사의 손이 압력을 가했다.

 

“익스큐즈 미 썰, 괜차나요?”

 

내 몸의 어떤 부위에 손이 닿기 전 정중하고 친절하게 묻는 언어들. 정겨운 언어와 달리 그녀의 몸은 단단한 흉기로 변해갔다. 나의 언어를 아주 조금만 이해하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기꺼이 드러낸 볼품없는 나체가 비명을 질렀다. 내 몸 속에 숨어있던 온갖 아우성을 불러내는 주술 의식처럼, 그 의식을 집행하는 경건한 사제처럼, 안마사는 오랜 시간 내 몸을 정성스레 매만졌다.

 

“아파요.”

“뜨거워요.”

 

나는 한껏 망가져있던 불쌍한 나의 몸을 연민하면서, 아파서가 아니라 슬퍼서, 바닥으로 난 구멍을 향해 얼굴을 깊이 파묻고 조금 울었다. 과연 고통은 불쾌하지 않았고, 고통이 머물렀던 자리엔 이윽고 평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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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지가 끝난 후 몸에 남은 열기와 상쾌한 통증을 음미하며 천천히 옷을 갈아입었다. 방을 나오자 안마사가 환한 얼굴로 나를 기다리며 서있었다. 미적지근한 조명 아래 묻혀있던, 수줍고 맑게 웃는 얼굴을 드디어 제대로 마주한 나의 마음에 어떤 고마움이 밀려왔다. 나는 서둘러 지갑에서 100페소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팁을 받아든 그녀는 다시 환하게 웃었다. 문 옆에 놓여 차갑게 식어가는 돌에게, 그런 돌을 닮아가는 단단한 손에게, 나는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땡큐 베리 머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존중을 담아 아주 짧은 문장으로 겨우.

 

 

 

컬처리스트 명함.jpg

 

 

[차승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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