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어쨌든 용기

글 입력 2023.11.16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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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오랜만에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을 탔다.

 

승강장마다 거대한 인파가 썰물처럼 빠졌다가 토해내기 직전까지 꾸역꾸역 들어찼다. 다들 어디를 바삐 가는 걸까? 몸통의 두 배가 되는 두께의 백팩을 맨 아주머니부터 잔뜩 신난 젊은 남녀, 직장인들로 보이는 중년 남성 무리까지. 전국구 방언이 모여 있는 이곳은 흡사 화개장터 내지는 강남역 10번 출구 앞의 광경이었다.


오랜만의 장거리 행 지하철이었고, 집 현관문을 열고 나온 지 30분도 되지 않아 지쳐 버렸다. 휴대전화를 만질 수도 없는 비좁은 공간을 간신히 비집고 나와 환승 구역을 찾았다. 그리고 타야 할 열차가 도착했는데, 큰일이다. 이미 모든 칸이 만차였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문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으려 팔을 들어 올려 열차 문 위쪽을 잡고는 절박하게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이번 차를 보내면 약속 시간에 늦을 게 확실하다. 내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공간을 물색했고, 다행히 출발 전 가까스로 탑승할 수 있었다. 비교적 여유 있는 칸이라고는 해도 잡을 손잡이와 지탱할 곳 없이 출입문 앞에 바짝 서 있어야 했다.


문이 닫히려는 찰나에 내 앞으로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내 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의 손이었다.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 몇 초 지난 후에서야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었다. 그녀의 한쪽 팔은 기둥으로 된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한쪽 팔은 내 몸과 출입문 사이로 뻗어 있었다.


혹여라도 출입문 앞에 위태롭게 서 있던 내가 칸 밖으로 밀릴까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내 몸에 맞춰 둥글게 만 팔과 손 모양이 말해줬다. 그리곤 출입문이 닫히자마자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양손을 내리곤 태연히게 원래 있던 반걸음 옆 구석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두 정거장 뒤에 내리며 아주머니에게 고개 숙여 짧게 감사를 전하고는 인파에 뒤섞여 나왔다.


그 뒤로 잠깐의 지하철을 이용할 때도, 심지어는 버스를 포함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나보다 몸집이 왜소했던 아주머니가 생각났다. 단단히 힘을 줘 손잡이를 잡고 있던 팔을 떠올리면 일면식도 없던 아주머니에게서 정을 느끼는 것이다. ‘고맙습니다’ 소리 내어 말했다면 그 복작복작한 지하철에서 찰나의 미소라도 떠오르지 않았을까 조그만 후회도 해보았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데에도, 낯선 이에게 선의를 베푸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숨 한번 들이마시고 탁 내뱉는 그 한숨의 용기면 된다. 그간 오지랖 부리는 걸까, 상대가 불편해하진 않을까 싶어 흘려보낸 선의가 얼마나 많았을까. 그 무수한 기회에서 아주머니처럼 용기를 냈다면, 복작거리던 지하철 칸 안에서의 나만큼 따뜻하던 이들이 많아졌을 거라 확신한다.


비를 맞으며 소식을 전하던 기자에게 우산을 씌워주던 아저씨, 걸음이 힘든 할머니를 업어 횡단보도를 건넌 운전자, 폐휴지가 가득 실린 어느 할머니의 리어카를 밀어주던 여학생… 어떨 때는 시리게 느껴지는 이 사회가, 사실은 작은 용기를 내는 사람들의 입김 덕에 새싹을 피워내고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것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어느 꽉 찬 지하철에서도 누군가의 온기로 따뜻하게 데워진 사람이 있으리라. 이번 연말에는 나도 거두절미하고 어쨌든 용기를 내봐야지.

 

 

[김민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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