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호퍼의 도시에서 발견한 나, 도서 '나의 뉴욕 수업'

글 입력 2023.05.08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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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에드워드 호퍼 전시를 보고 온 바 있다. 그의 작품을 직접 대면해서 보는 것이 개인적으로 처음이어서, 전시 개막 첫 주에 바로 다녀왔다. 비록 사람이 정말 많아서 시간 예약을 하고 갔음에도 작품 반 사람 반 구경을 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만족스러운 전시였다. 이번 에드워드 호퍼 전에 대해 대표작들이 많지 않고 전체적인 주제의식이 좀 빠져있다는 것 같다는 주변의 평이 있기도 했지만, 그의 작품을 처음 보면서 내가 느낀 바들이 있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미국에 가서 호퍼의 작품들을 더 다양하게 보고 싶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그가 사랑한 뉴욕은 대체 어떤 도시인 걸까. 유럽 쪽으론 다녀봤어도 북미 쪽으로는 한 번도 발걸음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나에게는 더욱 궁금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비록 약탈의 역사를 포함하기는 하더라도 유구한 역사가 있는 유럽 쪽의 문화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미국에 꼭 가보고 싶다거나 미국 내 어딘가를 구체적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미국적인 것을 담아내는 에드워드 호퍼의 시각 그리고 그가 캔버스 위에 그려낸 미국의 풍경은 새삼 그곳에 가서 내 눈으로도 직접 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출간된 도서 '나의 뉴욕 수업'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부제로 자리한 '호퍼의 도시에서 나를 발견하다'라는 문구가 내 뇌리에 깊게 박혀버린 것이었다. 저자 곽아람은 뉴욕에서 어떤 경험을 한 것일까. 그가 뉴욕을 호퍼의 도시라고 표현한 것은 어떤 이유일까. 호퍼의 도시라고 스스로 명명한 뉴욕은 저자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궁금해졌다. 그래서 책을 내 손에 쥐자마자 바로 읽어볼 수밖에 없었다.


 



< 책 소개 >


단기 이민에 가까웠던 뉴욕에서의 시간 동안 지은이 곽아람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접하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 예술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지나치게 빠르게 몰아치는 도시의 파도에 떠밀리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그림들, 미술관과 거리에서 마주치는 예술작품들이 제 품을 내어주며 위로해주었다. "괴테처럼 살겠다 결심하고 뉴욕으로 떠나 호퍼처럼 산 이야기"라고 자신의 책을 정의하는 지은이는 [나의 뉴욕 수업]에서 뉴욕에 머물며 들었던 미술 수업, 생생한 아트 비즈니스의 세계, 그리고 스스로도 몰랐던 '프로 놀러'의 기질까지, 다양한 경험과 사유를 에드워드 호퍼, 로버트 인디애나, 알렉스 카츠, 조지아 오키프 등 대도시의 흔적을 담아낸 작품들과 함께 풀어낸다. 


[나의 뉴욕 수업]은 2018년에 처음 선을 보인 [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의 개정판으로, 세월이 흐를수록 지은이의 뉴욕 생활에 드리웠던 에드워드 호퍼의 영향이 더욱 뚜렷해졌기 때문에 그의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추가해 다듬어 새로이 펴낸 것이다.

 




우선 가장 먼저, 저자 곽아람이 어떻게 뉴욕을 가게 되었는지를 나는 알고자 했다. 퇴사하고 유학을 간 것인가? 어떤 명목으로 갔을까? 보니까 신문기자로 직장생활을 꾸준히 해왔던 그는 직장을 통해 해외연수를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 아, 책의 내용으로 본격적으로 진입하기에도 앞서 이 대목에서부터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자기계발휴직이 제도상 존재하지만 사실상 사용이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는 회사에, 그것도 해외연수라는 제도는 없는 회사에 속해 있는 입장에선 이런 형태로 해외에 장기체류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개인적인 감상과는 또 별개로, 직장생활 14년차에 그런 기회를 얻었다는 저자 곽아람이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을 잠시 멈춰두고 실제로 도미할 결심을 하기까지도 막상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심지어 이전에 해외에서 생활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저자로서는 더욱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삼십대 후반이라는 적지만은 않은 나이에 한국에서의 시계를 멈춰두고 해외에서 1년을 보낸다는 것은 귀국 이후 삶의 방향성까지 고려하면서 내려야 할 결심이기 때문에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이미 박사수료까지 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가 방문연구원으로 뉴욕대를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경력이 될 것이 분명했다. 심지어 미술사를 계속 공부해온 그였기에, 현대미술의 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뉴욕으로 가는 것은 큰 결심이 수반되는 결정이긴 했어도 득이 될 것이 자명했다. 아마 저자 곽아람 역시도 그렇게 느꼈지 않을까. 그가 2018년에 냈던 '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을 개정하여 '나의 뉴욕 수업'을 낸 것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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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가지 못했어도 뉴욕에 대한 얘기들은 아주 다양하게 들을 수 있다. 워낙에 큰 메트로폴리스인데다가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뉴욕에 대해 들었던 얘기들 중에 여러 방면으로 공통되게 들었던 것은, 뉴욕 사람들이 굉장히 쌀쌀맞고 차갑다는 것이었다. 대도시고, 토박이보다는 뜨내기들이 더 많은 곳이니까 더더욱 그런 게 아닐까? 이런 이야기들이 고정관념이나 편견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의 뉴욕 수업'에서 저자 곽아람이 경험한 뉴욕을 간접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편견이 아니라 참인 명제처럼 느껴졌다.


사실 외국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항상 생각만큼 아름다운 일인 것은 아니다. 분명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여러 자극에 노출되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은 맞지만,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생활하면서 오롯이 홀로 모든 것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방인인 나에게 쏟아지는 날카로운 시선과 말들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고달픈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방인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그 모든 상황들은, 모국에서만 살 때엔 절대 느낄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자국에 있던 동안에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실수를 하지는 않았는가 돌이켜보게 만들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저자 곽아람은 흔들리지 않고 뉴욕에서 자리잡아간다. 자리잡아간다고 하면 저자는 과한 표현이라고 생각할까? 하지만 책장을 넘겨가면서 점점 뉴욕에 적응하고 가볍게나마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저자의 모습이 덧그려졌다. 37세에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 후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역작을 남긴 괴테를 떠올리면서, 배우고 교육받겠다는 의지로 뉴욕을 향했던 곽아람의 결심이 어떻게 뉴욕에서의 일상 속에서 구체화되고 실현되어갔는지를 살펴보는 일련의 과정은 나에게 참 벅찬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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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현지에서 보내던 삶의 단편들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저자 곽아람이 선택한 것은 글과 그림이다.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글이지만, 이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그림까지도 함께 곁들여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인상깊었다. 아무래도 미술사로 박사까지 공부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적재적소에 필요한 작품들을 잘 소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뉴욕에서 보고 느낀 여러 작품들도 그에게 분명 영향을 미쳤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저자 곽아람은 자신이 에드워드 호퍼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글로써 그리고 책 속 작품 삽화로써 꾸준히 나타내고 있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뉴욕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에드워드 호퍼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사이에서 담아냈다. 뉴요커들의 얼굴을 가장 잘 담아낸 화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그런 뉴욕의 여러 얼굴들을 담아낸 호퍼에게 저자 곽아람이 더욱 끌리게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일 지도 모른다.


화려한 도시, 다양한 뉴요커들 그리고 멋진 상황들 사이로, 사실은 고독을 느끼고 있는 외딴 섬 같은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호퍼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갖는 그 간극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차렸고 이를 잘 담아냈던 화가다. 그가 자신의 아내였던 조세핀의 작품 활동을 시기하여 막았다는 점 그리고 조세핀에게 가정폭력도 서슴없이 저질렀다는 점에 대해서는 지극히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호퍼의 어두운 면은 지극히 비판의 대상이 됨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의 예술혼을 발휘하여 남긴 역작들 속에는 지금까지도 적용되는 현대인들의 자화상 같은 삶의 단면들이 남아있기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호퍼의 작품에 끌리고 만다.


뉴욕이 아니라 서울에서였더라도 호퍼의 작품이 연상되는 순간들이 있었겠지만, 저자 곽아람이 뉴욕에서 보냈던 그 순간들을 기록한 글과 호퍼의 작품을 연이어 살펴보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경험이었다. 에드워드 호퍼와 저자 곽아람이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이 시간을 넘어 관통하는 무언가를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독자인 나도 함께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 느끼는 이 희열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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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곽아람이 오직 에드워드 호퍼에 대해서만 다루며 자신의 에세이를 써나간 것은 아니다. 뉴욕에서 활동한 화가도 많을 뿐더러 그에게 영감을 준 예술가들도 많기에, 저자는 에드워드 호퍼 외에도 다양한 예술가들을 다뤘다. 당장 뉴욕하면 생각할 수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팝아트 화가 로버트 인디애나, 발레를 모티브로 많이 삼았던 에드가 드가, 독일 출신이지만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알브레히트 뒤러,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플로린 스테트하이머 등 저자 곽아람의 삶의 편린들에 직결되는 화가들은 아주 많았다.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정말 의외였던 것은, 조지아 오키프였다. '브루클린의 조지아 오키프'라고 된 소제목을 보고, 저자가 오키프의 꽃 작품 중 하나를 다루려나보다 하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곽아람이 '나의 뉴욕 수업'을 통해 소개한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은 뉴욕의 밤거리를 담은 <달이 있는 뉴욕 거리>였다. 그에게 이런 작품이 있었던가. 조지아 오키프하면 연상되는 꽃 작품 그리고 스티글리츠가 남긴 오키프의 사진들만 떠올렸던 나에게, 오키프의 뉴욕 풍경화는 굉장히 색다르게 와닿았다. 브루클린에서 이 작품을 보았던 저자 곽아람의 마음은 어땠을까. 비록 오키프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에게 자신도 모르게 끌리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작가는 바로 차일드 하삼이다. 하삼의 <비 오는 거리>가 D.C.의 백악관에 걸려있는 작품이다. 저자는 이 작품을, Great America의 정신을 담은 작품이라고 받아들이는 듯했다. 실제로 차일드 하삼의 작품이 백악관에 오래도록 걸려있었으니 분명 그런 의미가 클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과연 위대한 국가인가. 미국이 강력한 역할을 수행해온 국가인 것도 맞고, 인류의 역사에 큰 역할들을 해온 국가였던 것도 많지만 미국도 유토피아는 아니지 않은가. 미국에서 1년을 살면서 미국의 민낯을 직접 보았을 저자에게는, 차일드 하삼이 그렸던 그 위대한 미국에 대한 개념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던 듯하다. 나중에 미국을 가게 된다면, 그 때 나도 하삼의 작품을 떠올리면서 과연 Great America인가 질문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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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곽아람이 보낸 뉴욕에서의 1년이란 시간은, 이제 그의 손끝을 통해 우리가 호퍼를 비롯한 예술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나의 뉴욕 수업'은 우리나라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역사를 가진 국가, 심지어 예술만 놓고 비교하더라도 유럽에 결코 비할 바가 못되는 미국이란 국가에서, 가장 미국적인 것을 잘 드러내면서 현대인의 심금을 울리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를 어떻게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인지를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호퍼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화가들도 뉴욕에 영감을 받은 아름다운 작품들을 남겼기에, 이를 통해 곽아람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더욱 응축적으로 독자들에게 와닿을 수 있었다.


언젠가 뉴욕에 가게 된다면, 그 전에 다시금 곽아람의 '나의 뉴욕 수업'을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호퍼의 도시에서, 아니,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가장 미국적인 도시 뉴욕에서 내가 무엇을 더 보고 어떤 것들을 더 느끼고 올 수 있을지를 스스로 생각해보고 갈 것이다. 과연 나는 뉴욕에서 어떤 나를 만나고 오게 될까.


 



나의 뉴욕 수업

호퍼의 도시에서 나를 발견하다


지은이: 곽아람

분야: 에세이


출판사: 아트북스

페이지: 312쪽


정가: 18,000원

ISBN: 978-89-6196-433-3 (03810)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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