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병풍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다 [미술/전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조선, 병풍의 나라 2》 관람 후기
글 입력 2023.05.0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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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병풍은 그 용도와 위치 상 뒤쪽에 자리하며 배경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요즘은 존재감 없거나 쓸모없는 사람을 지칭하는 은어로 사용되기도 하듯 병풍엔 다소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병풍에 대한 이미지를 전환할 수 있는 전시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진행되었다. 《조선, 병풍의 나라 2》전은 조선시대부터 근대기에 이르는 다양한 병풍을 아우름으로써 병풍의 미감과 미술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전시였다.

 

병풍은 사용 및 제작 주체에 따라 민간병풍과 궁중병풍, 제작 시기에 따라 근대병풍으로 구분하여 전시되었다. 확실히 민간병풍과 궁중병풍은 그 형태에 있어 큰 차이를 보였다. 민간병풍은 자유분방하면서도 순수한, 현대적인 감각이 묻어났다면, 궁중병풍은 섬세하고 깔끔한 필선과 함께 용도에 걸맞는 위엄과 품격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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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조문자도8폭병풍〉 중 일부


 

〈화조문자도8폭병풍〉은 유교적 덕목을 의미하는 문자와 화조를 결합한 병풍이다. 간단한 필선과 다채로운 색을 사용하는데, 특히 색채의 사용에 있어 형태의 윤곽선에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색이 번져나가도록 한 것이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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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도8폭병풍〉 중 일부

 

 

〈평생도8폭병풍〉은 관료의 이상적인 삶의 단계를 그린 것으로, 일종의 성공적인 삶에 대한 전형이었으며 당시의 가치관을 알 수 있었다.

 

그림에서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인물들의 얼굴이었다. 얼굴을 보자마자 신라의 불상이 연상되는, 그와 유사한 얼굴을 갖고 있었다. 가볍게 미소를 머금고 있는 표정을 가진 사람들과 당시의 장면을 그대로 담아낸 듯한 화면을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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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진연도10폭병풍〉

 

 

〈임인진연도10폭병풍〉은 51세가 된 고종이 기로소(耆老所)에 입소하는 의식과 이를 기념하기 위한 궁중 연향을 묘사한 그림으로, 궁중 행사를 기록하는 기록화임과 동시에 의례의 전형적인 본보기로서 후대에 참고할 만한 자료로서 존재하기도 한다. 병풍의 형태에 따른 그리드 안에서 가지런히 정돈된 구성은 당시 이상적인 공간 개념이 무엇인지 시사하는 듯하다.


일반 회화 전시였다면 50여점이라는 작품 수가 그리 많게 느껴지진 않았겠지만, 병풍이라는 형식의 특정상, 그리고 가까이서 세세한 부분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내용이 알찬 전시였다. 위에서 언급한 유형의 병풍 외에도 다양한 동식물을 백과사전처럼 담아낸 병풍이나 삼국지나 구운몽, 신선과 관련된 고사 등 서사를 담은 병풍 등 다양한 주제의 병풍이 있어 관람료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전시된 작품들, 병풍 자체도 너무 좋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인상깊었던 점은 공간 구성이었다. 기존의 박물관과 같은 곳에서 병풍을 바라볼 땐 작품을 보호했던 진열장을 유리와 작품의 표면이 멀어 자세히 관찰할 수 없거나 때때로 조명에 반사되는 빛 때문에 작품을 제대로 관찰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선 장황의 일종인 병풍 자체의 특수한 형태를 고려한 듯한 진열장이 사용되어 작품을 아주 가까이서 생생하게 볼 수 있었으며, 조명 또한 작품 관람에 전혀 방해를 주지 않았고 정말 알맞은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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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전시 공간에 가벽을 설치하지 않고 오로지 실내의 벽면 만을 사용하여 병풍을 설치하였는데 공간의 전체적인 통일성과 함께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한눈에 들어온다는 점과 답답하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이렇게 공간을 열어놓을 경우 중앙부가 비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이를 천장에서 프로젝터로 바닥에 병풍을 차용한 미디어아트를 넓게 비춰줌으로써 공간에 지루함을 없애고 생동감을 부여하였다.

 

또한, 전시 준비에 있어 환경을 고려한 공간 기획이 진행되었음을 명시하였다. 환경문제와 함께 기업들의 ESG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문화예술 영역에서도 지속가능한 예술 활동을 위한 탐구가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소위 녹색화(Greening)를 실천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전시 종료 후 폐기되는 가벽을 사용하지 않고 이후의 전시에서도 재사용 가능한 재료들을 전시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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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술관에서 잠깐 근무했을 때에도 전시 주제를 기후위기나 환경에 관해 다룬다고 해도 준비와 진행 과정에 있어 방대한 양의 폐기물과 쓰레기가 배출된다면 그게 얼마나 모순적인 건지 생각하며 개선할 방향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다. 섹션 소개글 옆에 환경을 고려한 미술관의 노력을 별도로 명시해놓은 점은 그만큼 미술관에게도 환경문제가 중요한 사안으로 부상하였음을 알려주는 듯하며 이를 신경썼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아모레퍼시픽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의 인식에 있어 병풍의 미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영역을 자신있게 펼쳤으며 전반적인 공간 구성에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 눈에 보여 굉장히 만족스러웠던 전시였다. 물론 주말에 방문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는 것과, 실제 현장에서 관람자들의 목소리에서 '이렇게 병풍이 아름다운 줄 몰랐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이 들렸던 것을 생각하면 전시의 목적도 충분히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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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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