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겨울 동화책을 펼치자, 파스텔의 별들이 쏟아지는 거야

글 입력 2023.11.28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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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가장 조용하던 어느 겨울날, 가장 따뜻한 빛을 받고 태어난 한 눈송이가 있었어. 눈송이를 품었을 때 여린 눈사람의 꿈엔 크고 발그레한 하얗고 예쁜 복숭아가 눈앞에 있었대. 이름은 '줄 수'에 '빛날 빈'으로 눈사람들은 눈송이가 사람들에게 따뜻한 빛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랐지. 그렇게 어린 눈송이는 따뜻한 눈사람들과 같이 어린 세상을 좋은 기억들로 그려나갔어. 따뜻한 눈사람들은 눈송이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주머니에 가득 넣어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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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송이는 집에 와 그 기억들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크게 붙이기 시작했어. 그 기억들 속에는 사람에 대한 추억이 많았어. 더 깊숙하게는 눈사람 가족에 대한 추억이 많았지. 무서워 보이지만 정 많은 눈사람은 눈송이를 데리고 세상의 아름다운 곳들을 데리고 다니며, 눈송이에게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주었어. 눈송이 가족의 어릴 적 차 안에선 늘 동요가 흘러나왔어. 어느덧 큰 눈덩이가 된 지금도 그 동요의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찾고 싶어 한 구절을 매번 흥얼대더래.

 

하여튼 대관령의 펑펑 쌓인 눈 위에 뛰어들었던 기억도, 왕피천 계곡에서 보트를 밀어주는 정 많은 눈사람의 모습도, 보성의 녹차밭에서 마음껏 달렸던 기억도 자주 가던 놀이공원도 황홀했던 일본의 하우스텐보스 퍼레이드도 세상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너무 많았어. 하루는 바닷가에서 함께 작은 게들과 따개비를 잡으면서 집에 가져가고 싶어 하는 어린 눈송이에게, 정 많은 눈사람과 여린 눈사람은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주며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 주었지. 어린 눈송이는 정이 많은 눈사람에게 세상의 크기와 모든 가치의 아름다움에 대해 배웠어.

 

또 정 많은 눈사람의 짝꿍 여린 눈사람이 있었지. 여린 눈사람은 꽃과 식물, 그림을 그리는 것과 여러 인형을 만드는 것들 좋아했어. 집에는 달콤한 꽃향기가 늘 가득했지. 눈송이의 방에는 인형이 30개가 넘게 있었고 소설책들과 동화책 만화책과 장난감이 많았어. 종종 여린 눈사람은 앉아서 어린 눈송이에게 작고 귀여운 그림들을 그려주곤 했지. 어느 날, 잠깐 외출을 할 때면 여린 눈사람은 늘 간식과 함께 귀여운 그림과 쪽지를 함께 두고 갔어. 눈송이는 매번 그 쪽지와 그림들을 보며 다정함을 배워갔지. 눈사람은 항상 눈송이 옆에서 미소를 잃지 않았지, 늘 다정하게 말했어.

 

그렇게 어린 눈송이는 여린 눈사람을 보며 '나도 저렇게 맑고 다정한 눈사람이 돼야겠다' 생각했어. 눈송이가 학교에 다녔을 때, 여린 눈사람은 늘 간식을 챙겨주었어. 친구들 것까지 함께. 정성이 들어간 간식을 매번 챙겨주었지. 한 여름날, 여린 눈사람은 공책 속 잘 코팅 된 네잎클로버들을 어린 눈송이에게 주며 말했어. "눈송이가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하나씩 주렴" 덕분에 눈송이는 같이 나누는 것에 대한 기쁨과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은 누군지 생각해 보고 소중함을 깨달았어.

 

눈송이의 작은 외삼촌은 늘 다정하게 예쁜 말로 눈송이를 바라보며, 아껴주었고 눈송이의 큰 외삼촌은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눈송이를 위해 깜짝 이벤트를 해주었어. 어린 눈송이는 크리스마스 날 자고 있었고, 여린 눈사람은 눈송이에게 문밖에 산타가 와있었다는 말을 했지. 그 소리를 듣고 놀란 눈송이는 여린 눈사람과 함께 문을 열었고, 진짜 꿈에 그리던 산타 할아버지가 서계셨던 거야. 산타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과 함께 선물을 주셨고 눈송이는 그날이 최고의 크리스마스가 되었지.

 

시간이 지나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어. 산타 할아버지인가 싶었던 눈송이는 눈을 감고 귀를 열었지. 하지만 산타 할아버지가 아닌 정 많은 눈사람과 여린 눈사람이 속닥거리고 웃으면서 눈송이의 팔에 선물을 끼워 넣고 있었어. 그때 깨달았지, 산타는 비록 없지만 몰래 사랑의 발자국을 매번 남기고 간 게 부모님이어서 산타보다 더 행복했대. 늘 눈송이의 곁에 있을 산타니까. 일어나 눈송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행복하게 종이 포장지와 끈으로 묶인 포장지를 뜯었고 그 안에는 예쁘게 생긴 토끼 인형이 들어있었어.

 

 

 

그때부터 눈송이는 네잎클로버와 토끼를 좋아해.


 

그러던 어느 날, 사람에 대해 사랑으로 가득 차 있던 눈송이의 생각에는 변화가 생겨.

 

어린 눈송이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오지. 미술 학원에 다니던 눈송이는 계단에 떨어진 오백 원을 주워, 누구의 것인지 돌려주러 선생님께 갔지. 하지만 어린 눈송이는 오해를 받았어. 선생님은 여린 눈사람에게 전화를 했고, 어린 눈송이는 억울했지. 훔치려던 게 아니라 주운 걸 돌려주러 간 건데, 선생님은 어린 눈송이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여린 눈사람과 어린 눈송이는 처음 있는 일에 놀라 같이 울었던 기억이 있어. 눈송이는 그 기억을 떼고 싶었어. 하지만 그 기억에는 속상함과 슬픔의 자국이 깊어 오랜 시간 지워지지 않았지.

 

그리고 눈송이는 학교에 적응하며 친구들과 재밌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 친구관계에 예민하고 세상에 친구가 다인 줄 아는 그런 시절 있잖아. 눈송이도 똑같았어. 친구랑 함께 보낼 때가 가장 행복했고, 친구관계에 예민할 시기였지. 하나가 기억나더래. 초등생이었던 어느 날, 친구 생일날이었는데 여린 눈사람은 매번 친구 생일날 예쁜 포장지에 선물을 담아 눈송이에게 줬지. 그 선물을 친구에게 줬는데 나중에 뒤에서 들려온 소리는 눈송이에게 너무 상처가 담긴 말이었어. 그 친구는 꾸준히 눈송이에게 상처를 줬어. 중등생 땐 이야기를 조작해 눈송이는 안면도 일면식도 없는 친구를 비난한 상황이 되어있었고, 오해를 한 친구는 눈송이에 악감정이 생겨 꾸준하게 뒷이야기를 했지. 하지만 그 상황에서 그런 적 없다고 오해라고 설명해야 했었지만, 그 이야기를 퍼트린 친구를 그때까지도 친구로 생각해서 눈송이는 그냥 그 친구에게 사과를 했고, 지금까지도 눈송이를 오해하는 친구와는 풀지 못했어.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난 고등생의 어느 날, 눈송이를 싫어한 그 친구는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눈송이에게 인사를 했고, 친했던 적이 있었던 것처럼 웃으며 착하게 대해줬어. 그 당시의 눈송이는 그래도 친구였구나 싶어 잘 지냈어. 그 친구에겐 전혀 기억나지 않을 말과 행동들이 눈송이 안에는 가득한 채. 지나고 보면 정말 타당한 이유조차 되지 못할 이유들이 미움의 이유가 되었지. 어릴 땐, 남들에 비해선 약하고 크기가 작은 눈송이였기에 그 친구는 바보 같은 생각으로 어린 눈송이를 대했던 거야. 그 친구가 눈송이를 싫어했을 때, 눈송이는 스스로에게 잘못이 있으면 고쳐야겠다는 생각에 친구를 통해 이유를 물었지만, 그 답변은 싫어하는데 이유가 없다고 말했어.

 

 

 

그때부터 눈송이는 사람을 온전히 믿지 못해.


 

한번은 밤에 자기 전, 여린 눈사람에게 "한 친구가 날 안 좋아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라는 말을 울면서 했고, 여린 눈사람은 그걸 듣곤 내게 다정한 위로를 해줬어. 사실 어린 나이에 그 위로로 문제가 해결되진 못했어. 내일이면 다시 그 친구를 마주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 주말에 정 많은 눈사람은 바다로 눈송이를 데려갔어.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가장 넓고 탁 트인 곳으로 눈송이를 데려가 바다를 보라고 차를 세웠지.

 

수평선 끝 너머 바다는 너무 넓었어. 아무것도 없이 탁 트인 파란색이었지. 하늘과 바다만이 오로지 눈에 담겼어. 연하늘색 하늘과 몽글한 하얀색 구름, 파란색 맑은 바다. 눈송이는 한참을 바다를 바라봤어. 숨을 크게 마시고 내쉬었지. 그때의 바다 내음은 머리에게 시원한 숨을 선물했고 그 숨은 맑고 산뜻했어. 모든 고민과 걱정은 부서지는 파도와 함께 거품이 되어 사라졌지. 바다 소리는 불안한 생각을 사라지게 만들었어. 바다에 비친 윤슬은 반짝이는 기억들을 되살려주었고, 그렇게 생각 정리를 하고 그 바다를 떠났지. 여린 눈사람은 그 후, 자신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해주며 나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보듬어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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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눈송이는 좋은 친구들을 만나 다시 활기를 되찾았어. 세상엔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도 진정한 친구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지. 눈송이가 힘들 때 꺼내주고 성격에 영향을 준 친구들이니까. 그 친구들의 이름이 아직도 기억 난대. 눈송이는 그렇게 다시 사람을 좋아하게 돼. 하지만 깨달은 게 있지. 세상 사람들이 나를 다 좋아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나와 잘 맞는 친구들은 언제나 내 곁에 남아 날 응원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런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은 눈송이는, 좋은 인연들에겐 다정함을 해가 될 것 같은 인연들에게는 단호함을 보이기로 하며, 굵게 동그란 선을 그어둬. 그렇게 지금의 큰 눈덩이가 된 눈송이는 아직까지도 힘들 때 바다 보러 가고 싶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고, 힘들 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눈에 연하늘색을 가득 담아. 눈송이에게 바다와 하늘은 그래. 단순히 좋아하게 된 계기는 없어. 모든 것엔 이야기 있어.

 

 

 

그때부터 눈송이는 하늘색과 파란 바다를 좋아해. 그리고 사람의 다정함을 좋아해.


 

어느 날 조금 자란 눈송이에겐 첫 번째 이별이 와. 눈송이가 정말 좋아하는 외할아버지와의 이별이었지.

 

외할아버지는 작은 구멍가게를 하셨어. 외할아버지 집에 갈 때마다 외할아버지는 어린 눈송이에게 별사탕을 한 통씩 주셨지. 투명하고 얇은 플라스틱 통 안에 든 별사탕은 정말 달콤했어. 그중에서도 파스텔 색의 분홍색, 노란색, 하늘색 별 사탕은 따로 모아두기도 했어. 마당이 보이는 방 안에서 하얀 눈을 내려보며, 하얀색 별사탕들로는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이나 별 모양을 만들기도 했지. 그래서 눈송이는 늘 외할아버지를 별사탕 할아버지라고 불렀어. 눈송이가 태어나던 날. 외할아버지는 여린 눈사람 곁에서 한없이 작은 눈송이를 보며 행복해하던 사람이야.

 

그러던 날, 구멍가게는 별사탕 할아버지의 건강으로 문을 닫게 되었어. 눈송이는 오랜 시간 정을 쌓아온 그리고 너무 좋아했던 별사탕 할아버지와의 이별이 두려워 여러 가지 투정 섞인 말들도 했어. 대게 건강을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말이지. 눈송이가 가장 행복했던 날들 중에는 별사탕 할아버지 집에 깃든 추억들도 많았어. 4명의 언니 오빠들과 했던 땅따먹기, 비석치기. 눈 오는 날에는 석류나무 아래서 눈을 만지며 놀기도 하고, 다 같이 걸어서 시내로 가 여러 구경들도 했지. 다락방으로 올라가 스티커북에 있는 스티커 교환도 하고 밥도 빨리 먹어가며 하던 카드 게임을 계속하곤 했어. 밤늦게 집에 갈 땐 늘 아쉬웠어. 북적했던 시간들이 아쉬웠대.

 

별사탕 할아버지 집 마당에서 보는 별은 정말 수없이 많고 맑았어. 밤하늘과 별을 정말 좋아해. 그리고 결국 외할아버지와의 영원한 이별과 함께 추억이 서린 집은 재개발구역이 돼버렸어. 눈송이는 재개발 구역이라 표시된 집을 보고 그 간의 반짝였던 추억들을 정리했대. 그리고 눈송이의 세상 중 아름다웠던 곳에 그 추억들을 조각 내 오리지 않고 온전히 붙여뒀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소중한 사람 중, 한 명과의 끝없는 이별은 사람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들었어. 있을 때 소중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수많은 인연들이 내 삶에 다녀가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소중한 인연들에게 따스함과 다정함을 한없이 보여주겠다고. 그리고 나에게 해가 되는 인연들은 그렇게 흘려보내도록 놓아주겠다고. 고요한 그 밤, 불이 꺼지지 않는 장례식장에서 눈송이는 별사탕 할아버지를 보내고 그날의 유독 반짝이는 별을 보며 그 생각을 했어.

 

 

 

그때부터 눈송이는 밤하늘의 별과 우주의 고요함을 좋아해.


  

눈송이는 어느덧 자라, 큰 눈송이가 되기 전이였고 하나의 전공을 정해야 했어. 어릴 때부터 한 방향의 꿈으로 생각을 이어왔고, 주변 눈송이들은 일찍 꿈을 찾아 부럽다는 말을 했지. 눈송이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들었어. 하지만 생각보다 현실의 벽은 높았어. 원하는 전공에 원하는 대학을 가기는 어려웠고 비슷한 결의 전공으로 갈 수 있었지. 하지만 그 분야는 전문 분야에 대한 공부와 입시 경쟁률이 치열한 전공이었어. 그래도 눈송이는 비슷한 분야에서 쌓아둔 것들 있어, 일 년도 채 안 남았지만 입시 공부를 할 수 있었지. 영화 시나리오를 창작해 내는 것은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입시를 위해 해야 하는 것들이 되었고, 그렇게 나오지 않는 아이디어를 짜내어 글을 썼지. 그렇게 눈송이는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갔고, 글보다 말하는 것에 자신이 있어, 대학교 원서 쓰는 날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믿고 학원을 바꿨어.

 

눈송이는 두려웠어. 갑자기 달라진 환경과 사람들 교육방식. 원서 마감날은 다가오고 그간의 노력이 모두 무너질까 봐. 그리고 왜 가야 하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채, 대학교를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지. 그렇게 결국 눈송이는 어느덧 큰 눈송이가 되어 대학교에 들어갔어. 눈송이는 눈사람 가족을 떠나 학교 때문에 혼자 살게 되었지. 눈송이가 살던 세상에는 전염병이 돌았고 그 때문에 사람들과의 단절이 몇 년간 지속되었어. 그리고 배우는 전공의 이론은 재밌었지만, 현장은 어려웠어. 맞지 않다는 것을 느꼈지. 건강에도 무리가 생겼고 정신없이 눈앞에 놓인 일들을 처리하느라 스스로를 챙기지 못했어. 취향이 있는 사람들과 뚜렷한 색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웠던 눈송이는 뭘 좋아하는지 생각을 했지. 하지만 취향도 좋아하는 것도 생각이 나질 않았대. 그리고 스스로를 방치하며 눈송이를 녹게 만들었어. 단단해야 할 눈송이는 어느새 녹아내려 사라지기 직전이었지.

 

 

 

그때부터 눈송이는 스스로를 잃어갔어.


 

큰 눈송이는 미래에 자기가 어떤 눈사람이 될지 너무 궁금했어. '어떤 색을 가졌을까?', '어떤 모양에 무슨 목도리를 했을까?', '털이 복슬한 장갑은 꼈을까?' 상상하며 말이야. 그렇게 눈송이는 자신을 찾고 싶어 더 크고 넓은 도시에 도착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일 년을 보내겠다고 다짐하지. 여린 눈사람과 정 많은 눈사람은 그새 나이가 더 들었지만 큰 눈송이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어. 늘 멀리서 걱정 어린 말들과 눈송이의 행복을 바라고 응원했지. 큰 눈송이는 자신의 삶이 건강하지 않다고 느껴 고민을 하다 건강한 삶을 위해 스스로를 진단해 보기로 해.

 

큰 도시에 어떤 동네에 가서 스스로와 시간을 보낼까 하다, 가을빛 눈송이에게 망원동의 한 카페를 추천받아. 그곳은 아주 조용한 동네에 제철 과일과 구운 식빵, 커피와 차가 있는 곳이었고 그렇게 눈송이는 그곳에서 노트에 이것저것 메모를 해. 얼음이 담긴 커피 안에는 햇빛의 조각들이 들어왔고 얼음은 녹아 달그락 예쁜 소리를 냈지. 그 카페에선 인디 음악이 흘러나왔고, 구운 식빵과 사과잼은 폭신하고 달콤했어. 그때같이 나온 사과도 천천히 먹으며 창문 밖으로 보이는 햇살과 그 사이로 들어오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눈송이는 공간의 취향을 느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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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도 눈송이는 망원동을 자주 들렸어. 당산을 지나 합정으로 갈 때 보이는 탁 트인 한강을 넋 놓고 바라봤지. 누군가의 추천이 아닌 스스로의 취향도 찾아보고 싶었어. 어느새 어린 눈송이의 세상은 추억이 깃든 보물 상자로 바뀌어있었고 큰 눈송이는 그 보물 상자에 자기가 아끼는 것들을 넣어두고 싶어 했지. 그래서 눈송이의 취향을 찾아 걸었고 그렇게 연두색 어린잎이 생각나는 카페를 발견했어. 푸딩과 커피 그리고 책들로 가득 차 있었지. 눈송이는 세상 사람들을 구경했어. 작은 것들에게 계속 눈길이 갔지. 어린 강아지와 아스팔트에 혼자 우뚝 자란 민들레, 무언가를 보고 천사의 날개라고 말하며 꺄르르 웃는 아이들, 더운 여름날 지쳐 가게 앞에 앉아있는 한 어르신을 보고 얼음 물을 권하는 섬세한 가게 주인 어르신의 대화, 막걸리를 가득 담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을 하곤 지나가는 할아버지. 봉지 가득 담은 과일과 함께 땀을 흘리며 개운하게 지나가는 자전거들. 

 

눈송이는 행복했어.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들이. 아기자기한 소리가 가득 담긴 아담한 동네가 좋았대. 눈송이는 온전히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감정들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어. 음식을 먹을 때 외부의 소리를 차단하며, 폰을 보며 밥을 먹기보다도 음식의 맛과 소리 식감에 집중했지. 식사를 하는 환경과 분위기를 느끼며 천천히 주위를 바라보며 생각을 하며 먹었어.

 

 


그때부터 눈송이는 자신에 대해 더 궁금해졌어.


 

지금까지의 눈송이는 맑은 여름의 생기, 푸르름과 초록이 가득한 풀 내음을 좋아해. 시끄러운 곳보단 조용한 곳을 좋아하고 조용한 인디음악에 마음이 가더래. 아삭 거리는 것들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주위를 둘러보며 걷는 것을 좋아해. 햇살이 가득 담긴 따뜻하고 바삭한 책의 향기를 좋아해. 눈송이는 생각했대. 좋아하는 것들로 삶이 채워지는 게 이토록 행복한 일이었다니. 그리고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좋아할 수 있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했대.

 

그렇게 눈송이는 일기를 썼어. 좋았던 오늘 하루에 대한. 그리고 집에 와서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써보고자 노트북을 켰어. 그리곤 블로그를 개설하고 스스로에 대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해. 새벽 내내 글을 써도 지치지 않았지. 좋아하는 글을 쓰니까. 손목이 아려와도 멈출 수 없었어. 그렇게 첫 글을 올리고 큰 눈송이는 무언가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할 때마다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어. 글을 쓰고 올릴 때마다, 주변 눈송이들은 눈송이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글에서 느껴지는 눈송이에 대해 말을 하기 시작했지. 아직도 기억에 남는 표현은 글에서 초록빛이 난다는 것. 풀 내음이 가득하고 잔디에 앉아 누워 책을 읽는 느낌이 난다는 표현, 글에 이입이 잘되어 자신의 이야기인 것 마냥 투영이 되었다는 표현. 글을 읽을 때마다 기분이 묘해진다는 표현이었대. 눈송이는 기뻤어. 좋아하는 글로 눈송이라는 한 개체가 표현된 것 같아서. 어떤 눈송이는 눈송이의 글을 보고 따뜻한 동화가 잘 어울린다는 말을 해주었어.

 

눈송이는 제법 자신의 글이 마음에 들어 더 열심히 글을 썼어. 그러다 보니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과 친해지게 된 거야. 그러던 중 눈송이의 친구 거북이가 자신의 취향이었던 책을 소개해 주었어. <고요한 우연>이라는 책이었지. 추리 소설만 읽던 눈송이는 처음으로 사람과 우정 사랑에 대한 소설을 읽고 장르와 책에 대한 매력을 느껴, 새로운 취향이 생긴 눈송이는 북 카페를 찾아다니며, 쉬는 날마다 거북이와 아니면 혼자 책을 읽으러 다니기 시작했지. 눈송이는 자신의 글을 사람들에게 더 내보이고 싶었고 따뜻한 글을 쓰거나 사회적인 시선이 담긴 글을 쓰며, 조금 더 다정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 했어. 그렇게 눈송이는 자신의 꿈을 담은 지원서를 쓰며 결국 한 분야의 에디터가 되었고 쓰고 싶은 다정한 글을 쓰며, 삶의 균형을 잡아갔어.

 

 

 

그때부터 눈송이는 글과 책을 사랑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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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송이는 스스로를 위해 정성이 가득 담긴 식사를 차려, 정갈한 한상차림을 좋아하는 눈송이를 위해서 좋은 식재료로 눈송이를 위한 음식을 만들지. 천천히 요리를 하며 눈송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식재료가 뭔지 보며, 스스로를 알아갔어. 눈송이는 어렸을 적 못 먹은 채소들을 하나씩 먹어봤어. 미나리를 먹고 오이를 먹고 브로콜리를 먹고 깻잎을 먹었지. 어린 눈송이는 오이의 밍밍함을 좋아하지 않았어. 건강한 맛이 나는 브로콜리를 피했고, 털이 난 깻잎의 거친 면이 싫었어.

 

그러나 큰 눈송이는 놀랐지. 밍밍하던 오이는 깔끔하고 시원하게 상큼한 맛이 났고 브로콜리는 소금 후추 간으로만 하니 아삭거리는 식감이 너무 맛있었어. 향이 세던 미나리와 털이 난 깻잎은 어느새 한 봉지를 다 먹을 만큼 독특하고 향긋한 향에 매료되었어. 눈송이는 그렇게 채소의 깔끔함과 기분 좋은 맛들에 냉장고는 어느새 야채들이 가득했지. 그렇게 눈송이는 서툰 칼질에서부터 시작해 이젠 다양한 요리를 직접 해먹는 눈송이가 되었어.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들은 바뀌는 거지. 입맛도 살아가는 방식도. 눈송이는 그렇게 스스로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단단한 눈송이가 되어갔어. 눈송이의 취향들이 하나씩 모여 어느덧 동그란 눈덩이가 되었지.

 

 

 

그때부터 눈송이는 단단하게 동그란 눈덩이가 돼.


 

큰 눈덩이는 어느새 본인만의 색을 내어갔어. 그 색은 파스텔의 연 하늘색이었지. 머리에는 좋아하는 딸기 털 모자를 쓰고 있었어. 손에는 책과 일기장을 쥐고 있었지. 몽실 거리는 구름 가방 안에는 네잎클로버와 함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쓴 편지가 가득했어. 언젠가 완연한 눈사람이 되길 바라며.

 

자신의 삶으로 안정을 찾고 스스로를 알아가는 것에 푹 빠져있던 눈덩이는 우연히 맑은 연 하늘을 만나게 돼. 눈덩이는 맑은 연 하늘의 투명함이 좋았고 언젠가 눈송이였던 시절 되고 싶었던, '맑고 다정한 사람'이 떠올라. 자신이 되고 싶었던 모습을 한, 맑은 연 하늘에게 눈덩이는 호기심이 생겨. 눈덩이는 맑은 연 하늘이 자신과 같은 마음이길 빌며, 조심스럽게 연 하늘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 했어. 확신이 없다면 확신을 만들어 가고 싶었지. 처음으로 먼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것 같은 마음에 눈덩이는 떨리기도 설레기도 했어. 그런 눈덩이 스스로의 모습도 궁금했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까.

 

깊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연 하늘이 좋았고 조용한 공간과 책을 좋아하고 지향점과 취향이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비슷해 편안했대. 둘은 그렇게 한참을 서로의 취향에 대해 이야기했고, 신기할 정도로 생각과 행동이 잘 통했어. 같은 한강과 같은 하늘색 같은 북 카페 심지어 다를법한 부분도 맞았던 둘은 그렇게 같은 이끌림에 서로를 알아가 보고 싶어 했지. 다른 점은 서로를 보완해 주기에 좋았어. 맑은 연 하늘은 여유롭고 단단하지만 유연했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가득했고 뚜렷했지. 눈덩이는 재빠르고 이리저리 톡톡 튀었어. 유연하지만 단단했어. 스스로를 알아가는 중이었고 항상 최선을 다해 바쁘게 살았지. 눈덩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맑은 연 하늘에 대한 마음이 커져만 갔어.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보고 싶었지. 각자의 삶이 서로에게 자극이 되었어. 안정감 있고 편안하게 믿음으로 가득 찬 하루들로 쌓여갔지. 맑은 연 하늘은 눈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내게 눈덩이도 되어주며 잠깐 눈사람이 될 수 있게도 해주었어. 둘은 서툴지만, 늘 서로의 행복과 안녕을 바랐지.

 

 

 

그때부터 눈덩이는 하루빨리 눈사람이 되어, 더 안정적이고 다정한 눈사람이 되고 싶어 해.


 

녹을 것 같이 흘러내리던 눈송이는 어느새 스스로를 찾아가 단단하고 동그란 눈덩이가 되었어. 많은 감정들로 인해 단단해졌지. 스스로를 알아가는 것은 눈덩이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되었고,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 단단함 안에서 유연함을 알게 해주었어. 완전한 동그라미는 아니지만 눈송이의 반짝이는 어릴 적 기억들과 눈덩이의 취향을 오려서 정성스레 이어붙인 동그라미지. 완벽한 동그라미가 되지 않아도 좋아, 어쨌든 스스로가 만든 동그라미니까. 그게 눈덩이에겐 가장 소중하고 멋진 동그라미인 거야. 눈덩이는 주변 사람들의 좋은 영향을 받고 성장했어. 눈덩이는 주변 사람들의 좋은 점들을 동경하거든. 그리고 가장 중심에는 다정함이 여려있어. 한 가지의 꿈에 머물러있던 눈덩이는 어느새 여러 꿈도 생겼지. 그리고 그 꿈을 위해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어. 세상 안에 자신이 있어 스스로가 작게만 느껴졌던 눈송이는 자신의 안에 세상이 있다는 생각으로 조금 더 유연하게 세상을 받아들이고 수긍하고 품을 줄 아는 눈덩이가 되었어.

 

 

 

그때부터 큰 눈덩이의 머리에는 작게 방울만 한 눈덩이가 자라났어.

이제 어린 눈사람이 될 준비를 하고 있나 봐.


 

어떤 눈사람이 되어도 그 모습은 네가 가진 고유의 색과 결로 널 성장시킬 거야.

 

오늘도 맑은 하루가 되길 바라.

 

 

[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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