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외전 너머의 세계로. [만화]

글 입력 2023.12.1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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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끝이 가까워진다.

 

오늘은 12월 16일, 벌써 2023년의 마지막 달도 절반만이 남았다. 올 한 해 동안 뭘 했는지 돌아본다. 상반기에는 적당히 학교생활을 하고, 하반기는 런던에서 교환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정확히 어제가 교환 교의 종강 날이었다. 수업도, 교환학생 생활도, 여유로운 몸과 마음도, 2023년과 함께 끝에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언제나 끝을 맞이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어릴 때에는 끝을 믿지 않거나 회피했고, 커서는 그것을 직면할 때마다 많이 괴로워했다. 특히 이 끝이 정말 마지막이어서 다시는 이 감정을 느낄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제일 버거웠다. 왜냐하면, 완전한 끝이라는 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한 슬픔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절대 돌아갈 수 없어 만회할 수 없단 사실은 내 속을 후회라는 알을 깐다. 이 알은 ‘그때 이 만화를 봤어야 했는데!’와 같은 아주 작은 알일 수 있고, ‘그때 널 병원에 데려갔어야 했는데’와 같은 아주 무겁고 질긴 알일 수도 있다. 작은 알은 떼어 내기 쉽지만 무겁고 질긴 알은 그렇지 않다. 알을 깨고 나온 애벌레는 나를 약한 부위부터 뜯어먹는다. 결국엔 내 속이 텅 빌 때까지, 텅 비어서 아주 약한 손에도 우지끈하고 부서질 때까지 나를 좀먹어 끝내 무너뜨린다.

 

끝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곧 행동이 겁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이 행동이 마지막이 되면 어떡하지, 내 선택으로 망하면 어떡하지, 조바심에 나는 대담함을 잃었다. 그럴수록 두려움은 자기암시로 작용해 더더욱 나에게 끝은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2.



 

Q. 좋아하던 만화가 완결나면 어떤 기분인가요?

 

A. 끝이라 하더라도 캐릭터들은 자신의 시간을 살고 길을 걸어가며 영원히 웃고 있을 텐데, 그걸 더이상 보지 못하고 나혼자만 마지막에 멈춰있다는 게 슬프다.


 

아주 어릴 때 최초의 끝은 좋아하던 만화의 완결이었다. <아즈망가 대왕>, <포켓몬스터>, <슈가슈가룬>의 마지막 화가 끝날 때마다 느껴지는 그 적막함이 소름 끼치게 공허했다. 함께 모험을 떠나던 동료였는데, 이젠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에 배신감도 들었다.

 

하지만 만화에 완전한 끝은 없다. 마지막 화의 순간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을 이제 함께하지 못한다는 점이 나를 더 슬프게 하지만, 그 사실은 역설적으로 만화가 창조해낸 이 세계에 완전한 끝은 없음을 말한다. 치요가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지우가 포켓몬 마스터가 되어도, 바닐라가 마계의 여왕이 되어도 그들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지켜보는 나와 독자들이 없어도 캐릭터들은 마지막 화를 넘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특히 외전이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 사실을 절감할 수 있다. 2023년 최고의 웹툰을 뽑으라면 나는 <가비지타임>을 뽑을 것이다. 웹툰에서 느껴본 적 없는 전율을 느끼게 해준 인생 첫 스포츠 웹툰이었다. 전국대회 결승전이 끝나고 동시에 마지막 화가 마무리되었다. 2년 동안 캐릭터들이 이 승리를 얼마나 열망했는지 봐왔기 때문에 결승전은 곧 이들의 목표의 끝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웹툰 <가비지타임>의 끝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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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지막 화가 공개되고 한달 뒤, ‘일상타임’이라는 제목으로 외전이 연재되기 시작했다. 고교합숙 캠프를 배경으로 지금까지 지상 고등학교와 겨뤘던 학교가 총출동해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상 고등학교의 성장 발판쯤으로 생각했던 조연들이 함께 비중있게 나와 또다시 농구 시합을 하고 있었다.


각자의 끝은 다 달랐다. 누군가는 시즌1을 마지막으로 사라졌고, 누군가는 전체 만화의 완결까지 얼굴을 비추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나아가고 있었다. 자기들의 농구 인생은 그 어떤 마지막화에서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들은 모두 공을 향해 뛰었다. 어김없이 말이다.


나는 그래서 외전을 좋아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끝이 아니라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느낄 수 있다. 특히 <가비지타임>처럼 잊었던 조연을 등장시키는 외전이라면 더욱 그렇다. 모두의 이야기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전이 끝나가는 것은 이 애정어린 캐릭터들과의 작별이 다가옴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이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가비지타임>의 인물들이 전국대회가 끝나도, 계속해서 새로운 농구게임을 시작하는 것처럼. 이 만화가 끝난 후, 성장한 이들의 새로운 시작. 그래서 나는 아쉬운 마음을 숨기고 이들의 끝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인 완결을 응원할 수 있다. 나와 이들의 인연은 끝이지만 그것의 완전한 끝은 아니기 때문이다.

 


 

3.



끝이 가까워진다.

 

하지만 동시에 나의 새로운 시작이 다가오고 있다. 어디서부터가 나의 마지막화고, 어디까지가 나의 외전인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뭐가 됐든 이 끝은 완전하지 않다는 점이다. 런던에서의 교환생활도, 그 과정에서 앓았던 숱한 고민도 모두 끝나가지만, 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건 내 인생의 일부분, 그저 한 만화의 분량, 어쩌면 하나의 시즌의 마지막에 불과하다. 시기상 시즌 3쯤이 될, 아주 짧은 단편이다.

 

이제는 끝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다. 끝이 다가온다는 것은 그만큼 성장한 나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살아있고 내 이야기는 끝나지 않으니까. 2023년의 나는 끝나지만 한 시즌만큼의, 만화만큼 이루어낸 성장을 바탕으로 앞으로 또 새로운 경험을 할 것이다. 나를 지켜봐 온 독자들이 있다면 분명 함께하지 못해 아쉬울 만큼 흥미진진한 날들로 나아갈 테다.

 

어딘가의 마지막 화를 넘어서, 다음 에피소드로 혹은 반가운 외전으로 혹은, 완전히 다른 새로운 만화로.



[박상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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