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ge를 따라서] 화려하고 달콤한 크림빛 향기, 튜베로즈

튜베로즈에 관하여
글 입력 2023.12.0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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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의 원료인 ‘로우 머티리얼(Raw Materials)’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칼럼이 어느새 13편째를 달리고 있다. 향의 원료에는 이전에 소개한 알데하이드와 같은 화학 원료도 존재하지만, 칼럼에서는 주로 에센셜 오일 및 앱솔루트 같은 천연 원료를 중점으로 소개해 왔다. 각자의 향료들은 모두 필요성을 가지지만, 자연의 향이 지닌 생명력과 깊은 이야기와 역사는 무엇보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흔히 자연의 향을 이야기하면 풀, 나무 혹은 숲을 떠올린다. 화사한 꽃향기가 바로 떠오르지 않는 것은 자주 접하지 못할뿐더러 맡고 있어도 이것이 정말 자연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향인가 싶을 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덕분에 꽃향기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귀히 여겨졌다.

 

향수의 플로럴 노트를 대표하는 꽃은 장미이지만 단언컨대 장미조차 오늘 소개할 꽃의 화려함에는 비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튜베로즈(Tuberose)이다.

 

 

[크기변환]튜베로즈1.jpg

 

 

튜베로즈, 한자로는 월하향(月下香)이라 불린다. 달빛 아래의 꽃. 튜베로즈의 흰 꽃잎을 떠올리면 달빛 아래에서 얼마나 밝게 빛날지 유추가 가능하다.

 

그 찬연함을 그대로 향기로 치환했다고 하면 튜베로즈의 향을 글에서 조금이나마 표현할 수 있을까. 외관에서 알 수 있듯이 튜베로즈 역시 화이트 플라워 계열의 향으로 분류된다. 화이트 플라워의 대표주자는 자스민이지만, 자스민조차 튜베로즈의 풍성한 화려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화이트 플라워는 부드럽고 달콤한 향의 특성상 성적인 뉘앙스와 자주 연결되고는 한다. 튜베로즈 또한 예외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가장 매혹적인 향일지도 모른다. 과거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튜베로즈가 심어진 정원을 거니는 것을 금기시했다고 한다. 튜베로즈의 부드럽고 황홀한 향에 여인들이 삿된 생각을 품을 수 있다 여겼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는 발상이지만, 튜베로즈의 향이 얼마나 강력한지 잘 설명하는 일화다.

 

 

[크기변환]튜베로즈3.jpg

 

 

다양한 향료들은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때로는 물감처럼, 때로는 음표처럼 느껴진다. 그 중 튜베로즈는 나에게 두터운 크림빛 유화를 떠오르게 한다. 두툼하게 쌓아서 캔버스 위로 풍부한 양감이 느껴지는 유화 말이다.

 

튜베로즈를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향은 달콤함과 크림 같은 부드러움이다. 그러나 이런 향이 튜베로즈의 전부는 아니다. 튜베로즈는 매우 복잡한 향을 지니고 있다. 화한 박하의 향이 느껴지기도 하고, 맵고 알싸한 향신료의 향이 느껴지기도 한다. 덕분에 이런 향들을 강조하고 싶을 때 튜베로즈를 소량 섞으면 그 볼륨감이 극대화된다. 사실 튜베로즈는 너무나 강력해서 다루기 어려운 향료이다. 그러나 적재적소에 활용하면 무엇도 대체할 수 없을 향이 된다.

 

그럼에도 사실 튜베로즈 앱솔루트는 과거보다 그리 자주 쓰이진 않는데, 이는 비단 튜베로즈의 경우만은 아니고 많은 에센셜 오일 혹은 앱솔루트들 모두 그렇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가격, 두 번째는 섬세한 조향이다.

 

우선 가격은 너무나 당연한 이유다. 천연 향료들은, 특히 튜베로즈 같은 원료들은 세밀한 공정 과정이 필요하고 여전히 사람의 손이 꼭 필요한 작업도 많다. 꽃을 따는 것이 그 예이다. 꽃의 향이 가장 농밀한 새벽시간에 보통 수확하는데, 기계를 이용하면 꽃이 상하면서 향을 온전히 얻을 수 없다. 그렇기에 가장 이른 시간에 사람의 손으로 직접 꽃을 따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꽃들과 마찬가지로 낮은 수율도 높은 가격에 한 자리를 차지한다. 거기에 시트러스 오일들과 다르게 간단히 압착하거나 수증기 증류를 통해 향을 얻어낼 수도 없다. 향기 분자가 열에 약하기 때문이다. 튜베로즈는 과거에는 냉침법을, 현재는 용매 추출과 초임계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여 추출된다. 원가를 생각한다면 그리 쉽게 많은 양의 천연 오일들을 쓰기 쉽지 않은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섬세한 조향이다. 천연 향료 안에는 상상할 수도 없이 다양한 분자 물질들이 뒤섞여 있다. 그 안에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물질들도 존재한다. 덕분에 향에 대체하기 힘든 깊고 복합적인 느낌을 부여해 준다. 그러나 반대로 이야기하면, 조향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세밀하게 향을 계산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뜻한다. 동물적인 느낌이 전혀 없는 튜베로즈 향을 만들고 싶을 때 천연 앱솔루트만 이용하는 것보다 분자 향료를 이용하면 보다 손쉽게 향의 느낌을 조절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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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베로즈는 엄청난 향으로 과거부터 사람들을 매혹해 왔다. 아즈텍에서는 신에게 바치는 의식의 최음효과를 위한 초콜렛 음료에 튜베로즈를 넣었다고 한다. 루이 14세는 병을 두려워해 씻는 것을 싫어했다고 하는데(당시에는 물이 병균을 옮긴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궁전을 향기롭게 유지하기 위해 곳곳에 튜베로즈를 배치했다고 한다. 정원에는 수천 개의 튜베로즈를 심었고 궁전 안에는 튜베로즈의 꽃잎을 물에 띄운 그릇을 놓았다. 덕분에 그의 재위 동안 베르사유궁은 ‘향수의 궁전’이라 불렸다고 한다.

 

여기까지 글을 읽었다면 도대체 튜베로즈가 도대체 어떤 향인지 궁금할지도 모른다. 사실 가장 직관적으로 향을 알 수 있는 물건이 있다. 바로 갑티슈다. 엄밀히 따지자면 갑티슈의 향이 튜베로즈의 향이라고 하기엔 엄연히 다르다. 특히 튜베로즈 앱솔루트의 경우 그 복잡한 풍미는 직접 맡아보는 것이 답이다. 또 튜베로즈를 모티브로 한 향수들도 각티슈 향에 비하기엔 훨씬 더 완성도 있고 고급스러운 향들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갑티슈로 설명하는 건, 그 안에 분명히 튜베로즈의 뉘앙스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유의 부드러운 향기가 티슈의 이미지에 잘 어울려서 적용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꽤나 많은 사람이 튜베로즈 향수를 시향하고는 갑티슈를 언급하곤 한다. 묘하게 티슈가 연상되서 튜베로즈 노트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다 말하는 이들도 많다.

 

비단 각티슈가 아니더라도 무겁고 농밀한 향인 만큼 강한 향기에 약한 사람들은 힘들게 느낄 수도 있는 향이 튜베로즈이다. 그러나 그 어떤 꽃과도 다른 화려하고 폭발적인 향에 한 번 중독되면 분명 튜베로즈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꼭 한번은 튜베로즈가 메인인 향수를 시향해보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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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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