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고마운 존재들에게

짧게 쓰는 편지
글 입력 2023.04.3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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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시아스 POLYSCIAS


 

우리 집에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 화초가 있다. 바로 '폴리시아스'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 집 터줏대감이다.

 

이사를 오고 나서 엄마께서 한창 플랜 테리어에 푹 빠져계실 때 우리 집에 입성했다. 이파리의 형태가 독특한 폴리셔스는 추운 겨울보다 날이 따뜻해지는 봄, 여름 즈음에 새순이 돋아나고 더욱 풍성해진다.

 

정말 더운 한여름의 날씨를 제일 좋아해서, 기분이 좋은 게 느껴질 정도다. 빛깔도 초록빛을 머금어 한결 뚜렷해진다. 텔레비전 옆에 자리한 폴리셔스를 보면 내 마음도 함께 푸릇해진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쭉 오랫동안 우리 집을, 우리 가족을 지켜주길.

 

늘 고마워하고 있다는 걸 잊지 않아줬으면 해.

 

 

 

라일락 LILAC 


  

언젠가부터 4월 초가 되면, 공동 현관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향긋한 꽃내음이 코를 찔러왔다.

 

어디서 나는 향기인지 근원을 따라가 보니, 길 옆쪽에 피어 있던 이름 모를 꽃에서 풍기는 것이었다. 그 향기는 정말 마법 같았다. 좋지 않은 일로 얼굴을 한껏 구기고 있던 순간에도, 피곤에 찌들어 무기력한 상태로 걸어가던 순간에도 그 향은 순식간에 내 기분을 180도 바꿔놓았다.

 

엄마가 말씀하시길, 이 꽃은 '라일락'이라고 했다. 그렇게 좋다고 생각했던 향이 바로 라일락이었다니. 꽃의 이름을 알고 나니 그 향기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꽃이 진 지금도 라일락의 잔향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내년 봄에도 올해처럼 활짝 피어 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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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MUSIC


 

나, 날씨와 기분이 비례하는 사람. 계절이 변하는 것에 민감한 편이다.

 

봄눈이 오면 아직 겨울이 가기 싫다고 떼쓰는 것 같고, 찌는듯한 더위가 가시고 시원해지면 가을이 여름에게 이제 좀 나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이렇듯 유독 감수성이 풍부한 탓이라 그런지 그때마다 듣는 음악도 다르다.

 

봄에는 살랑이면서 간질거리는 노래를 들으며 봄기운을 만끽하고, 여름에는 페스티벌에서 나올법한 하우스 풍의 곡을 들으며 내적 댄스를 춘다. 가을에는 쓸쓸한 느낌이 드는 이별 노래를 들으며 한껏 잔잔함에 취하곤 한다. 겨울에는 포근한 느낌, 연말 분위기가 나는 곡을 들으며 한 해를 보낼 준비를 하는 것 같다.

 

폭넓은 예술의 세계를 항상 동경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수들에게 특히 고마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검도 KUMDO


 

생소한 종목이라 겁을 먹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1년이 넘도록 하고 있다는 게 나조차도 신기하다. 지난 1년간 4번의 승급 심사를 거치며 어느새 1급이 되었고 아마 내년쯤엔 유단자가 될 거다.

 

검도를 하며 느끼는 건,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의 소중함이다. 동작의 정확도와 악력에 신경을 쓰다 보면 머릿속을 지배하던 잡생각들이 날아가고 칼을 휘두르는 상황에 몰입하게 된다.

 

물론 돌아가면서 대련을 하거나 연속 공격을 하다 보면 힘에 부칠 때도 많고, 개인 수련 시에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발 동작에 답답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마저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받아들이니 그저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어 갔다.

 

완벽주의자인 나로선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앞으로의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더 발전할 수 있겠지. 채찍도 좋지만 당근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우울한 생각들에 빠져 며칠을 땅굴에 틀어박혀 있었다. 하지만 우울함에 파묻히면 괴로워지는 건 오로지 나였다. 소중한 것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이 감정을 조금은 승화시켜고 싶었다.

 

다행히도 성공적인 것 같아 괜스레 기분이 좋다.

 

 

[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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