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랑, 결코 별 게 아닌 : 영화 '클로즈'

글 입력 2023.04.2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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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 단어를 구글에 검색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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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 개가 넘는 검색결과 중에서 맨 앞을 차지한 이 정의에 따르면 사랑은 크게 셋으로 구분된다. 성별이 다른 연인, 가족, 사제 관계에서 발생하는 마음의 상태.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불충분하다고 느낄 사람이 상당할 것 같다. 성별이 달라야 연인 관계가 성립하는 게 아니라는 것과 친구, 반려 동물이나 식물과 나누는 감정 또한 사랑의 일부라고.


여기서 살짝 비튼 질문을 얹어볼까. 친구 사이의 사랑과 연인 사이의 사랑. 두 관계의 사랑의 크기나 형태가 똑같을 수 있느냐고.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결코 똑같을 수 없다'라고 답할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크리라. 무엇이 다른가. 다르다면 얼마만큼 다른가. 체온을 얼마나 맞대느냐는 물리적인 이야기가 가장 지배적일 것 같다.

 

그렇다면, 성적인 행위에 전혀 관심 없는 어린 날의 한 시기라면? 그럼 친구와 연인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그 감정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끝없이 던지는 영화가 바로, <클로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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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주요 사건이나 연출 등의

스포일러는 배제했습니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데미안' 하면 단박에 떠오를 두 문장.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이제 막 새로운 환경의 한가운데에 선 몸뚱이들이 겪을 혼란, 공포, 경이로움과 배신을 축약한 문장이라고 볼 수 있겠다. 1919년에 세상에 나온 책이 아직까지 그 이름과 명성을 떨칠 정도라니.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관계에 독자들이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건 처음이란 게 무엇인지 몸소 경험했기 때문일 거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세계가 완전히 깨어지던 충격. 그 방향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다. 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강도의 무언가가 들이닥칠 때 사람은 선택하기 마련이다. 끝끝내 무시하거나 도망치기를. 레오는 외부의 개입으로 깨어진 둘만의 세계를 제 발로 헤쳐 나가 다른 이들의 세계에 기꺼이 들어가고자 애쓴다. 질문을 빙자한 확신으로 말을 끝마친 후에 '우리는 그런 거 편견 없어'라며 대꾸할 시도조차 막던, 조롱 섞인 놀림을 말끝마다 일삼던, 그 아이들이 사는 세상으로.


원래의 세계에서 도망쳐 새로운 세계에 당도한 레오와 달리 레미는 한결같이 제자리다. 무시를 택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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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둘에 대해 뭐라고 정의하든 그건 레미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레오와 자신의 관계는 어떤 단어가 어울릴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관계는 어떠한 것인지, 주변 세계를 살펴보거나 고심하려는 움츠러듦도 없다.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서 레오를 인지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둘만의 놀이, 둘만의 언어, 둘만의 루틴. 이걸 느낌으로 표현하자면, 꽃밭을 물든 색색의 아름다움과 비슷한 기억. 달리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 악기를 연주하던 시간, 또 다른 즐거운 시간들 모두가 레오와 보낸 시간과 닮았다. 그러나 같지는 않다. 어느 것이 더 크고 어느 것이 더 작아서가 아니라, 제각기의 존재이기에 무엇하나 똑같다고 결론 지을 순 없다. 우리는 모두 고유하니까.


레미가 지각하는 세상이 이렇다면, 그의 환경은 온통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투성이었을 거다. 하물며 자신과 꼭 붙어 다니며 모든 걸 함께하던 레오마저 다른 세계로 사라졌다. 마치 레미의 생각에 온몸으로 반박하듯. 그 공허와 상실, 배신감, 외로움은 무엇으로 이겨낼 수 있을지.


사람은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를 바란다. 나를 이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지속적으로 벽에 부딪히면 나라도 타인을 이해하고자 애쓰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고자 숱한 노력을 거듭한 사람은 안다. 이 방향마저 막혀버릴 때 좌절감이 어떤 크기로 몰려오는지.


레오가 깬/깨진 알이 레미와의 세계였다면, 레미가 깬/깨진 알은 사랑의 구분이 없는 세계였을 것이다. 감정에 부러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저 좋으면 좋은 대로. 마음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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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는 꼭 언어의 한계를 읊은 것만 같다. 세상엔 너무 많은 명명이 있다고. '사랑'처럼 추상적인 단어를 구체화하겠다는 시도, 인간이라는 종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암묵적인 명목하에 말이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우리는 어렴풋이 사랑이 어떤 감정인지 알지 않나. 다정히 마주 보는 눈빛, 입맞춤, 어깨를 다독이려는 손, 어깨에 닿는 체온. 따스하고 몰랑몰랑한 것의 이면까지도.


낯선 세계를 조우한 이들의 처음. 나란히 걷던 길은 어느덧 엎치락뒤치락해야 할 싸움터가 되고, 어깨를 맞대고 잠들던 밤이 지나자 푸른빛 맴도는 아침 햇살에 서로가 등 돌린다. 처음이 빚은 격변을 보여주면서도 영화는 끝없이 하나의 단어를, 그 단어의 범주와 정의를 흐릿하게 한다. 그건 사소한 타인이 선뜻 건넬 수도 있고, 마냥 밝고 유쾌하진 않을 수 있다고.

 

이미 당신도 경험해 본 적 있지 않느냐고 넌지시 물음을 띄우며.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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