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세상을 상실하는 건 한 사람을 구하는 것 - 단 한 사람

글 입력 2023.11.0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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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작가를 좋아한다. <몬스터: 한낮의 그림자>에 수록된 단편 <고백록>으로 처음 접했고, 이후 장편소설 <구의 증명>을 읽으며 열렬한 팬이 됐다. <해가 지는 곳으로>, <내가 되는 꿈>을 읽으며 최진영 작가 특유의 심장을 저릿하게 만드는 감성과 이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문체에 빠졌다. 감정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핍진성 있게 그려내면서도, 은은하게 뒤섞인 판타지적 요소는 책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를 더욱 묵직하게 전달했다.


이번 신작 <단 한 사람>은 이제까지 최진영 작가가 써 온 작품의 응집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목화의 초인적인 능력과 이를 고뇌하는 과정은 <고백록>을 떠올리게 하고, 가족에 대한 깊고도 섬세한 고찰은 <내가 되는 꿈>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한 단계 발전했다. <고백록>에서 괴로워하며 사람을 죽일 수 있던 아이는 이제 ‘단 한 사람’만 살릴 수 있는 아이가 되어 깨달음을 찾아 나선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삼대(代)에 걸친 이야기로 더욱 견고하고 탄탄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나무의 이야기. 책 표지의 가운데에 있아 책의 중심을 이야기하는 우직한 뿌리를 가진 그 나무. <단 한 사람>은 결국 인간을 이야기하기 위해 자연을 선택한 최진영 작가의, 한 발 넓어진 세계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나무의 상실


 

살아가며 상실의 경험은 불가피하다. 잃는다는 것은 어떤 방향으로든 깊은 골의 감정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상실을 겪는 것은 나무다. 숱한 세월에 걸쳐 함께 단단히 뿌리를 동여매어 숲에서 가장 큰 존재가 되었던 두 나무가 있었다. 그들은 이미 한 번 이별을 겪은 적 있었다. 자신과 같은 또 다른 자연에 의해, 태풍에 의해 필연적으로 상실을 겪어봤다. 그리고 그때는 다시 소생할 수 있었다. 다시 작은 가지와 이파리의 움틈에서 시작해야 했지만, 죽음 이후 다시 성장을 겪은 그들에게 무서울 것은 없었다.


그러나 처음 보는 형태의 죽음이 그들을 덮쳤다. 사람이 나무를 베고, 자르고, 죽였다. 그 과정에서 사람도 죽었다. 어떤 사람은 쓰러지고, 어떤 사람은 나무에 깔리고, 어떤 사람은 먹지 못해서 죽었다. 사람은 그들 자신을 스스로 죽이면서도 나무를 죽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그렇게 죽은 나무는 다시 소생할 수 없었다. 이처럼 강제적인 죽음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결국 살아나지 못했다.


 

그루터기만 남기고 줄기는 통째로 사라져버리는 기괴한 죽음은 300년이 몇 번씩 거듭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숲에서 보고 들은 죽음과 완전히 달랐다.

그러므로 그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이별 또한 아니었다.

훼손이었다. 파괴였다. 폭발이자 비극이었다.

 

p19

 


장엄한 나무는 그렇게 죽음이 아닌 파괴이자 폭발이자 비극을 겪었다. 수천 년을 함께 살아내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넓고 깊은 뿌리를 두었음에도 무자비한 훼손을 당한 나무는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옆에서 홀로 남은 나무 역시 더는 성장하지 않았다. 다시는 죽을 수 없으므로. 함께인 이 나무가 다시 살 수 없으므로. 그리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무의 상실이 인간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되살아난 그는 되살리는 존재.

그는 그 자리에서 사람에게 파괴된 적이 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사람을 파괴한 적이 있다.

 

p21

 



상실과 구원


 

넷째 쌍둥이인 목화와 목수는 셋째 금화의 상실을 경험한다. 금화, 목화, 목수는 함께 산을 갔다가 금화가 쓰러지는 나무에 깔리는 사고를 겪는다. 목화는 목수에게 언니를 돌보고 있으라며, 자신이 어른을 불러오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목화가 다시 돌아왔을 때 나무에 깔려 죽을 고비를 넘고 있었던 것은 목수였다. 목수는 목숨을 잃을 뻔한 사고의 후유증으로 그때의 기억을 잃어버렸다. 금화는 사라졌다. 목화는 자신을 의심하다가, 세상을 의심하다가, ‘단 한 사람’만 구하는 기이한 능력을 느끼게 된다. 목화는 이것이 미스터리한 금화의 상실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나무.

부활한 나무.

시간을 초월한 생명.

무성한 생에서 나뭇잎 한 장만큼의 시간을 떼어 죽어가는 인간을 되살리는 존재.


그 모든 것을 목화는 첫 소환에서 깨달았다.

 

p92


 

금화의 상실이 책에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지 긴 시간 고민했다. 금화의 상실로 가족 전체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금화는 나무에 깔리기 직전, 기이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엄마 장미수의 말을 되새기다가, 머리에 폭죽이 터지는 듯 생각하다가 나무에 깔린다. 이후 사라진다. ‘단 한 사람’만 구하는 저주 혹은 능력은 나무로부터 비롯되는 것. 그리고 어쩌면 그 나무는 죽음과 소생과 파괴를 겪은 ‘그’ 나무. 나무에 깔린 금화. 금화는 어쩌면 장미수와 가장 닿아 있었던 자식. 금화의 상실로부터 시작된 목화의 구원과 나무에 대한 인지.


금화는 나무에 의해 희생당한 상실의 객체인가, 아니면 그 모든 구원의 구심점에 있는 구원의 주체인가?


목화 모녀 삼 대에 단 한 사람을 구하라는 명령이자 능력이자 저주를 내리는 이 나무가 자신과 수천 년의 세월을 함께한 옆의 나무가 인간에게 파괴된 후, 인간을 파괴하기로 했다면. 파괴당한 그 나무는 이 능력의 씨앗이 아닐까? 살아남은 나무에게 죽은 나무는 상실의 대가이자 분노의 시발점. 그렇다면 살아남은 나무에게 금화의 사라짐은 파괴를 일삼은 인간에 대한 대가이자 분노의 표현. 목화에게 금화의 상실은 저주스러운 능력의 시작이자 과정의 씨앗. 상실의 씨앗은 결국 죽음. 죽음의 씨앗은 삶의 상실.


죽음의 주체는 결국 상실의 객체이고, 상실의 주체는 결국 죽음의 객체가 된다. 즉, ‘단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는 능력이자 저주를 선사하여 많은 이들의 죽음을 관망하는 그 나무는 희생당한 나무를 상실한 객체이고, 금화의 상실을 겪은 목화는 ‘단 한 사람’만 구하며 수많은 죽음의 객체가 된다. 상실로 인해 죽음을 중개하며 삶을 구원한다. 죽음을 곁에 두어 결국 삶을 인지하게 되는 아이러니.

 

 

미안해. 난 너를 도울 수 없어.

금화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반가운 악력을 놓치고 싶지 않아 목화는 그 손을 힘껏 잡았다. 금화가 다짐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널 지켜줄게.

 

p146

 

 

고통스러운 죽음들 속에서 한 사람의 생을 구하는 것이, 결국 ‘삶’을 지키는 일일 지어니.




결국, 사랑


 

‘단 한 사람’ 밖에 구하지 못하는 능력 속에서, 목화는 죽음과 더 가까운 삶을 살게 된다. 수많은 이의 죽음 속에서도 단 한 사람밖에 구하지 못해 괴로워하지만, 그러나 또 단 한 사람은 구할 수 있기에 사랑하는 가족을 구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목화는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잃을 존재가 생긴다는 것이므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신에게 구걸할 일이 늘어난다는 것. 목화는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p125

 

 

그러나 목화는 점차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목화의 할머니인 임천자는 축복이라고, 엄마인 장미수는 저주라고 여긴 이 능력을 알아내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다. 자신이 중개를 통해 목숨을 살린 사람을 직접 찾아가 보고, 그들이 평범히 숨 쉬고 살아있는 모습을 본다. 수많은 죽음 속에서 한 사람밖에 구하지 못하는 무력함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일을 몸소 실감한다.

 

 

목화가 목수에게 물었다.

중개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뭔지 알아?

목수는 짐작하여 대답했다.

글쎄, 살려달라는 말?

목화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사랑한다는 말.

 

p104


 

그래서 목화는 자신의 원하는 삶이자 자신이 원하는 죽음을 선택하기 위해, 결국 ‘사랑’하기로 마음먹는다. 결국, 한 사람을 구하는 초인적인 능력을 겪으면서, 죽음을 더 선명히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을 느끼면서 얻은 깨달음은 현재를 마음껏 즐겨야 한다는 것. 삶과 죽음을 나눌 수 없기에 삶이 더 탁해지는 것이 아니라, 후회 없는 삶을 위해 후회 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

 

 

어떤 사랑은 끝난 뒤에야 사랑이 아니었음을 안다.

어떤 사랑은 끝이 없어서 사랑이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떤 사랑은 너무 멀리 있어 끝이 없다.

어떤 사랑은 너무 가까이 있어 시작이 없다.

 

p155

 

 

‘후회 없이 사랑하라’는 메시지는 최진영 작가의 <해가 지는 곳에서>도 익히 읽어왔다. 그러나 <해가 지는 곳에서>는 그 메시지를 춥고 황폐해진 겨울 황무지 속에서도 나침반처럼 잃지 않고 따라가야 할 한 줄기 빛처럼 따스하게 그려냈다면, <단 한 사람>에서는 잿빛 하늘 아래 위태롭게 일렁이는 작은 불쏘시개 하나처럼 그려냈다. 따뜻함보다는 고됨의 심상. 찬란하게 빛나는 큰 빛이라기보다는 내가 겨우내 찾아낸 작은 빛. 그러나 이 고된 인생 속에서도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이 아닐까. 그래야 우리는 인간다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삶이란 뿌리째 뽑히는 것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있다는 말처럼, 죽음을 우리 삶에서 받아들일 때 삶도 더욱 윤택해질 수 있다는 말은 그리 새로운 말이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what’보다 ‘how’. 같은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글의 몰입도와 깊이는 달라진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죽음과 상실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이런 상상력을 덧붙인 스토리로 전달할 수 있구나, 하며 감탄했다.

 

 

사람의 탄생이란, 어쩌면, 뿌리째 뽑히는 것.

사랑의 시작 또한, 어쩌면, 뿌리째 뽑히는 것.

 

p139

 

 

작중 목화는 작은 라일락 나무 전체를 뽑았다가 다시 화분 속에 넣으며 이런 깨달음을 얻는다. 목숨의 탄생도, 사랑의 탄생도 모두 뿌리째 뽑힌다는 것. 씨앗에서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이때까지 일궈놓은 모든 것이 뿌리째 뽑히는 것이 시작이라니.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말처럼, 내 세계가 파괴되는 일을 통해 나의 무력함과 나의 수준을 더 인지할 수 있을 때, 진짜 삶이 시작된다는 것 아닐까. 빗대어 본다면 상실이 탄생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최진영 작가의 <고백록>을 읽었을 때, 판타지적 장치에 대한 개연성을 독자에게 친절히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가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짧은 분량의 단편 내에서 전력을 기울인 느낌. 그러나 이번 책을 읽으며 최진영 작가는 사실 조금 더 열린 결말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품에서는 열린 결말보다 닫힌 결말을 더 좋아하는데, 최진영 작가는 친절한 묘사 뒤 개방된 출구여서 그런지, 오히려 먹먹하게 느껴진다. 대단한 힘이다.


최진영 작가의 책을 한 권도 빠짐없이 읽은 건 아니지만, 최진영 작가의 색깔은 암청빛이다. 짙고, 묵직하고, 깊이 있는데 처연하다. 최진영 작가의 넓어진 세계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어 좋았다. 앞으로 최진영 작가가 써내려 갈 더 넓은 이야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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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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