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매끄럽지 않아서 매력적인, 나무로 빚은 세계 - 공현진 작가

글 입력 2024.03.22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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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국가, 종교를 막론하고 사람은 항상 복(福)을 기원하며 살아왔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해가 시작될 때, 무언가 큰일을 앞두고 있을 때면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도 기도를 한다. 신을 믿기 어려운 세상이라지만, 아무것에도 매달리지 않고 살아가기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비는 마음은 간절하고 신성하기도, 이기적이고 오만하기도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수많은 마음에 물성이 더해지면 어떤 모습이 될까.

 

지난 2월 13일부터 3월 15일까지 서울시 양천구 ‘오목한 미술관’에서 열린 공현진 작가의 개인전 <나무를 섬기는 마음>에서는 다양한 수호신을 볼 수 있었다. 공 작가가 주민들에게 받은 의견을 바탕으로 동네에 수호신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며 빚은 작품들이다. 소중한 것이 꼭 아름다우리라는 법은 없다. 나무의 거친 결이 그대로 드러난 수호신들은 무서워 보이기도, 익살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한 가지 결로 정제되지 않는 그 모습에서 무언가를 비는 우리의 다양한 마음이 그려졌다.


지난 13일, 공현진 작가를 만나 매끄럽지 않아 더욱 매력적인 그의 작품 세계를 들어 보았다.

 

 

 

나무와 함께 호흡하며 걷는 작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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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황규백

 


공현진 작가의 주된 작업 재료는 나무다. 다른 재료도 다뤄 봤지만, 석조 작업을 할 때는 돌가루 때문에, 용접을 할 때는 이상하게 계속 감전이 되어서 힘들었다고. 나무가 자신과 가장 잘 맞는 재료라는 걸 깨달은 다음부터는 나무와 소통한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나무를 섬기는 마음>이라는 제목 이야기부터 들어보고 싶어요. 어떻게 정해진 제목인가요?

 

옛날부터 나무는 우리나라 무속, 민간신앙과 깊은 연관이 있었어요. 마을의 오래된 나무는 수호신처럼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고, 마을 입구에는 사람 모양의 목(木)장승을 세워뒀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무를 섬기는 마음’이 계속 이어져 온 거예요. 


저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나무로 깎아내고 표현하는 작가로서 그 마음이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나무를 섬기는 마음’을 제목으로 하면 제 작업 세계가 잘 표현되면서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쉬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재료 중 나무를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나무는 살아있는 재료라서 좋아요. 한번은 졸업작품을 준비하던 시기에 가위에 눌린 적이 있어요. 보통은 귀신이 보인다던데 저는 만들고 있던 나무 작품들이 나오더군요. (웃음) 같이 놀자면서 제 방으로 뛰어 들어오는 모습이 무섭다기보다 신기했어요. 그때 나무라는 재료가 살아있다는 걸 다시 한번 체감했고, 지금도 나무와 소통한다는 마음으로 작업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제가 추구하는 작업 스타일을 보여주기에 나무가 적합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작품에서 투박하고 거친 절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데, 나무를 깎으며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불규칙한 표면이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각, 느낌과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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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섬기는 마음>의 작품에서도 그런 거친 면이 잘 드러났어요. 그래서인지 몇몇 수호신은 꽤 무서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제 작품은 늘 호불호가 갈려요. 재밌긴 한데 집에 놓기엔 끔찍하다는 말씀도 하시죠. (웃음) 심지어 가족들도요. 처음엔 대중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라는 생각에 상처도 받았지만, 이제는 이게 제 개성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피드백도 다 살이 돼요. 


이번 전시를 찾아오시는 분들도 왜 수호신을 이렇게 불편하고 무서운 모습으로 만드냐고 질문하시곤 해요. 저는 오히려 그런 지점이 재미있었어요. 저는 사람들이 준 의견을 바탕으로 수호신을 빚었거든요. 

 

뒤집으면, 왜 수호신이 아름다워야 하는지 질문할 수도 있죠. 실제로 천사를 성경에서 묘사된 그대로 재현하면 징그러운 모습일 거라고 하잖아요. 더 나아가 예술작품에도 비슷한 질문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요. 왜 예술작품은 항상 ‘예쁘게’ 가공되어야 하는지요.

 


관련하여 작가님의 예술관을 좀 더 듣고 싶어요.

 

제 작업의 원천은 재래시장이나 굿판, 동네 주민들의 오래된 아지트 같은 공간이에요. 꾸밈이 없고 정제되어 있지도 않고, 어떤 말이든 오가는 곳이죠.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이런 공간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공간이든 물건이든 처음부터 잘 가공된 것, 완벽하게 다듬어진 것에 너무 익숙해졌어요.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때론 그 반대의 것에도 관심을 가져 보면 좋겠어요. 아날로그적인 감각이 남아 있고, 사람의 손때가 묻어나는 것에요. 제 작품도 그런 모습이기를 바라요. 제가 조각 작업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미디어나 3D 작업과 달리 조각은 손에 분명히 잡히고 투박한 구석이 있죠.

 

 

 

일상으로 내려온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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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진 작가는 어린 시절 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할머니가 물을 떠 놓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거나 할머니를 따라 굿판 구경을 가는 등 자연스레 민간신앙을 접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인간의 감정과 믿음, 기도하는 행위에 관한 관심은 자연스레 작업으로 이어졌다.
 


<나무를 섬기는 마음>에서는 다양한 수호신을 만날 수 있는데, 작가님이 생각하는 신은 어떤 모습인지도 궁금해져요.


믿는 종교는 따로 없어요. 신은 내 마음속, 우리의 일상 속에 있다고 생각해요. 저한테는 주변에 있는 빗자루도,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도 신이 될 수 있죠. 제가 개인적으로 믿는 수호신은 돌아가신 할머니이기도 하고요.


일상 속에서 사람들과 수호신이 공존하는 게 현재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도 수호신들과 함께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는 사람들을 표현한 작품을 배치했어요.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 누워서 고민에 빠진 사람, 절 걱정하는 어머니… 다들 제 일상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죠.

 

 

신이 일상 속에 있다는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 우리가 오래전부터 믿어온 미신, 지켜온 관습도 상당수가 무속과 민간신앙의 영역이네요.

 

맞아요. 무속신앙이나 민간신앙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우물에 동전 던지고 가족과 친구의 건강을 기원하는 게 그냥 민간신앙이고 넓게 보면 무속이거든요. ‘구복(求福)’, 즉 복을 구하는 행위라고 하죠. 기복신앙이라고도 하고요. 정말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인간의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욕구예요.


그래도 무속신앙, 민간신앙이라는 단어 자체를 오해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 듯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그 지점을 파고들어요. 터놓고 무속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 보는 거죠. 실제로 예전 전시에서는 제가 무당 옷을 입고 관객의 고민을 들은 다음 즉석에서 부적을 써주는 퍼포먼스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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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전시는 정형화된 미술관보다는 열린 공간, 생활과 밀착한 공간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실제로 지금까지 일반적인 화이트큐브보다 버려진 공간, 사연 있는 공간에서 주로 전시를 해 왔어요. 오히려 이번 개인전이 예외였어요. 제 작품은 생활의 흔적이 있는 공간에 놓였을 때 아우라가 살아나고 새로운 맥락이 만들어져요. 우연이 겹치면 재미있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죠.


화이트큐브가 아닌 곳에서 전시를 할 때 무엇보다 좋은 건 예상치 못한 관람객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저는 마음먹고 전시를 보러 온 관객보다 그냥 지나가다 들르는 할머니의 한 마디에 영감을 받거든요. 자유롭게 피드백을 줄 수 있는 관객이 많이 오는 공간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만난 우연한 관객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을까요?

 

미아리 고개 하부 공간에서 전시를 했을 때, 전시를 다 본 관객분들에게 부적을 써드리는 퍼포먼스를 했어요. 우연히 들어오셔서 전시를 다 보신 아주머니께 부적을 써드릴 차례였는데 그분이 제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크고 구체적인 걱정을 털어놓으시는 거예요. 그때까지 부적을 쓰는 건 제게 하나의 퍼포먼스일 뿐이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고요.


그날 전시를 마무리하며 셔터를 내리는데 아까 그 아주머니가 다시 오셔서 음료수를 주셨어요. 처음 보는 사람한테 본인 이야기를 했더니 큰 위로가 되었다면서요. 그게 저한테 엄청난 경험이었죠. 진짜 무당도 아니고 의사도 아닌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이 있다니. 앞으로 돈을 못 벌어도 되니 이런 작업을 계속하는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원동력으로 지금까지 작업을 계속하는 것 같아요.

 

 

 

이 시대 예술가의 자리와 역할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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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개인전을 하기까지 공현진 작가는 작가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이 길었다고 전해왔다. 물론 그 끝에서 발견한 건 예술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이었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이 시대에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간다. 

 

작업을 하실 때 따로 마감 처리를 하지 않으신다고 들었어요.

 

나무가 계속 숨을 쉬는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굳이 플라스틱 코팅을 하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러다 보면 시간이 지나며 작품이 갈라지기도 하죠. 그러한 변화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도 작업을 하는 재미입니다.

 

 

시간이 정말 오래 지나면 작품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겠군요.

 

가끔은 작업을 하며 내가 또 대형 폐기물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 괴롭곤 해요. 작품은 분리수거도 안 되니까요.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재료를 써본 적도 있는데 전시가 끝나고 버려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참 몹쓸 짓을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무로 작업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나마 나무가 환경에 좀 덜 해롭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해요.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을 올려놓는 디스플레이(전시 다이)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것도 한 번 쓰면 버리는 건데, 재사용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종이 블록을 디스플레이로 활용하기로 했어요. 가격은 좀 비싸지만 내구성이 좋고 계속 쓸 수 있어요. 다음번 전시에도 활용하려 합니다.

 

 

이 사회에서 예술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시는 것 같아요. 코로나19가 심각하던 시기 작업하신 <코로나 백신(百神) 연구> 작품들도 그 고민의 연장으로 느껴집니다. 이 시리즈 소개도 간단히 부탁드려요.

 

2020년에서 2021년 무렵, 사회에서 예술가로서의 제 역할을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이전까지 저는 예술가니까 사람들에게 작품을 보여주고 소통하며 사회구성원서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전염병으로 예정된 전시가 취소되고 일도 끊기고 나니 나는 뭘 하는 사람이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 고민이 컸죠. 


그래도 예술가로서 이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뭐라도 해야겠다는 이상한 사명감을 안고 시작한 작업이 <코로나 백신(百神) 연구>예요. 예술가로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나만의 백신’을 개발해보자고 생각한 거죠. 여기서 ‘백신’이란 흔히 생각하는 의학적인 백신(Vaccine)이 아니라 코로나를 물리치는 데 도움을 주는 ‘100가지 신들의 형상’이라는 의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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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가시는 어떤 영감이나 원동력은 어디서 오나요?

 

앞서 잠깐 말씀드렸는데, 저는 정제되지 않은 일상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예를 들면 시장에서 과일을 판매하는 할머니나 아저씨가 써놓은 손글씨, 그분들이 바구니에 과일을 쌓아 놓은 솜씨 같은 것이요. 그런 것도 시장마다, 가게마다 다르거든요. 거기서 저는 영혼이 느껴져요.


빨래 너는 풍경에서도 영감을 많이 받아요. 저는 최초의 현대미술이 빨래 너는 행위라고 생각하거든요. 집마다 빨래집게를 쓰는 모양도, 옷을 거는 방식도 다 다른, 일종의 설치미술이죠. 생활의 지혜이기도 한 빨래 널기에서 저는 미학을 느낍니다. 


예술을 계속하기 위해 유학을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던 중 시험 삼아 미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깨달았죠. 유학이 아니라 내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요. 저는 이국적인 풍경이 아니라 한국의 재래시장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것에서 영감을 받는 사람이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이곳, 제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어요.

 

 

올해 예정된 다른 전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지금 신도림 문화철도959 레지던시에 입주작가로 있는데, 4월 5일까지 신도림역 선상역사 2층 통로에서 아까 말씀드린 <코로나 백신(百神) 연구> 중 일부를 전시합니다. 100가지 신 중 9가지 신을 우드락으로 제작해 선보일 예정이에요. 4월에는 신도림역 지하에 ‘고리’라는 예술 공간에서 단체전을 하고, 10월에도 단체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내년쯤에는 새로운 개인전도 열 계획이에요.

 

 

마지막으로, 작가로서 꿈꾸는 모습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일단 예술가로서의 구체적인 목표는 언젠가 국공립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는 것이에요. 그 외에 목표라면, 제가 생각하는 걸 멈추지 않으면 좋겠어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회에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런 말에 흔들리지 않고 단단한 마음을 먹고 싶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제가 좋아하는 이상한 것들을 계속 만들고 싶을 뿐이에요.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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