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당신의 마음이 여기에, - 도서 '내가 읽는 그림'

그림을 읽으면 보이는 것들
글 입력 2023.04.18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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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는 그림_평면표지(최종).jpg

 

 

 

그림의 마음을 읽다


 

그림을 어떻게 보아야 잘 감상하는 걸까?


추상적이고 난해한 작품을 만나면 미술사적 배경이나 작가의 의도를 찾아보지만, 경직된 언어가 고압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미술을 전공한 나 역시 지루해 읽는 것을 포기하고, 도슨트의 설명에도 그림이 멀게만 느껴진다.


친근하게 내 이야기처럼 와 닿게 설명해줄 수는 없는 걸까? 여기 바로 그런 책이 있다. <내가 읽는 그림>은 나에게 딱 맞는 눈높이 선생님이 되어, 친절하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작품 속으로 초대한다.

 

<내가 읽는 그림>은 시인, 문화평론가, 방송작가, 화가, 큐레이터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필자들이 모여 자신의 감상으로 작품을 바라보고 에세이를 함께 담았다. 


방황하는 나의 시선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부드럽게 손짓하는 이들의 글은 놀라우리만큼 섬세하여, 또 다른 차원의 예술이었다. 그림의 마음을 단 한 톨도 놓치지 않고 읽어 내려가며, 그림의 마음을 읽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작품을 바라보는 시간만큼이나, 글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었다. 추상적 단어 안에 놓인 실체를 더듬으며, 필자의 사유의 깊이를 따라잡기 위해, 단어 한 칸 한 칸 의미를 더듬고 생각에 잠겨야만 했다. 


그러자 어느덧 필자의 감상을 넘어선, 나의 기억과 감각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달콤한 기억, 씁쓸한 맛이 떠올랐다.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나니 그제야, 단어 사이에 놓인 공백이 철저히 의도된 것임을 깨달았다. 떠올린 것들은 사라져 가는 게 아까울 만큼 소중한 것들이었다. 일상적이고 평범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일상의 발견



그 중 한 편의 글은, 정다은 작가의 <발맞춤의 감각>은 1880년대에 미국의 화가인 아서 보웬 데이비스(Arthur B. Davies)의 작품 Aldrich's Dog를 그녀의 시선으로 써내려간 에세이다. 그녀는 개와 산책한 경험과 함께 연상되는 기억을 에세이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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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hur B. Davies의 'Aldrich's Dog'

 

 

그녀의 새록새록 한 기억을 읽어 내려가니, 나에게도 반려견과 함께한 소중한 기억이 떠올랐다. 나의 반려견 쫑이가 산책을 할 때 보여주던 귀여운 뒤통수, 쫄랑거리는 꼬리, 바삐 움직이는 다리가, 순간 포착되듯 되살아나며 마음이 몽실몽실해졌다.

 

 

엇박으로 다시 정박으로 함께하는 산책에는 아무런 말이 없지만, 끈으로 연결된 대화가 존재한다.

 

- 정다은 <발맞춤의 감각>

 


제 3자의 시선에서 산책은 개에게 목줄을 걸고 거리를 오가는 행위일 뿐이지만, 반려견과 견주는 삶의 여정을 함께하는 '동행'의 순간이다. 끈으로 연결된 대화는 그 무엇으로도 끊어낼 수 없으며, 발걸음을 맞추어 나누는 이들의 대화를 통해 더욱 끈끈한 사이로 묶여간다.


 

 

영혼의 발견



삶에서 슬프고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한 글도 있다.

 

최리아 작가의 <밤이 되면 비로소 밝혀지는 것들>에선 화가 알버트 블레이크락(Ralph Albert Blackelock)의 시선에 몰입하여 작품 Moon light를 소개한다. 그가 발견한 어둠 속 빛에 관해 이야기하며, 고독의 가치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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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Albert Blackelock의 'Moon light'

 

 

여기서 어둠이란 외부와 차단되어 쓸쓸한 고립의 시간이 아닌, 홀로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기나긴 인생의 여정을 통해 흐려지고 지워진 것을 어둠 속에서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렇게 바라보면 유난히 빛을 내는 존재가 있는데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오면, 한마디를 놓칠세라 귀를 바짝 갖다 대는 유일한 시간이 바로 '어둠'이다.

 

 

진정한 홀로는 막막한 어둠에서 밝아지는 것을 알아본다. 

 

- 최리아 <밤이 되면 비로소 밝혀지는 것들>

 

 

숱한 미디어의 노이즈로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어둠의 시간이 절실하다.


캄캄한 밤에 들려오는 음성은 강하고 묵직하며, 진실하고 투명하다. 그 음성은 내 인생의 결정적인 힌트를 쥐고 있을지 모른다. 내 마음속 나침표는 어디를 향해 있는지, 지금 올바른 길 위에 서 있는지를 알려주는 인도자가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빛을 붙잡기 위해, 기꺼이 용기를 내 어둠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나의 마음을 읽다



<내가 그린 그림>은 사소한 일상부터 영혼이 침잠하는 순간까지 마음 구석구석을 건드리고 뒤흔들었다. 고인 마음을 휘젓자 흙탕물이 된 것 같은 착각도 잠시, 불순물이 가라앉은 마음은 더욱 맑고 투명해졌다.

 

그림의 마음을 읽는 법부터, 내 마음속 깊은 정수까지 발견할 수 있는 고마운 책이었다.

 

 

[정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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