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쿄 예술 여행 [여행]

도쿄에는 스시만 있나? 예술도 있다, 그것도 잔뜩!
글 입력 2024.02.1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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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여행’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것들이 있다. 스시, 야경, 쇼핑, 온천…. 거리도 가깝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다녀올 수 있는 편한 여행지라서 한국 사람들에게 도쿄는 인기 많은 여행지이다.

 

그런데 도쿄가 의외로 예술 여행을 하기에 최적화된 곳이란 걸 아는가? 나 역시 작년에 도쿄를 처음 갔을 때는 익히 알려진 루트로 신주쿠, 시부야, 아사쿠사 등의 명소만 둘러보며 식도락 여행을 즐겼다. 어쩌다 보니 올해도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클래식 공연을 보기 위해 도쿄를 재방문하게 되었는데, 도쿄가 예술을 즐기기 좋은 도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예술 애호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행지, 도쿄에 대해 알아보자.

 

 

 

유럽까지 못 간다면 도쿄로! - 도쿄에서 만나는 서양미술


 

일본 미술 시장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크고 유서가 깊다. 반 고흐를 비롯한 많은 서양 예술가가 실제로 일본을 좋아하기도 했고, 역사적으로 서양 예술가들이 많이 거쳐 간 곳이기 때문에 일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서양 미술 작품도 꽤 방대하다.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작품을 들여오는 기획전도 보통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유명 작품을 가져온다. 미술 애호가들은 유럽까지 멀리 갈 것 없이 도쿄에서 좋은 전시가 열리면 원정 관람을 떠나기도 한단다.

 

제일 먼저 추천하고 싶은 곳은 도쿄의 대표적인 서양미술관인 국립서양미술관이다. 모네, 마네, 고갱, 고흐, 드가, 르누아르, 피카소 등 이름만으로도 엄청난 라인업을 자랑하는 방대한 소장품을 줄줄이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 입구 정원에서부터 로댕의 대표작인 <생각하는 사람>,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을 감상할 수 있는데, 과장을 살짝 보태서 로댕 작품이 ‘발에 치이게’ 많다. 소장품이 워낙 많아서 상설전에 올라오는 작품도 매번 바뀐다고 한다. 국립미술관이라 500엔(한화로 약 5,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서양 예술을 실컷 볼 수 있으니 도쿄에서 미술관을 한 곳만 가야 한다면 이곳을 강력 추천한다.


긴자에 위치한 아티즌 뮤지엄도 국립서양미술관 못지않게 방대한 소장품을 자랑하고 있고 큐레이션도 훌륭하다. 일본 미술의 현재가 궁금하다면 롯폰기 아트트라이앵글도 좋은 선택이다. 롯폰기에 위치한 3개의 미술관으로, 국립신미술관, 모리미술관, 21_21 디자인사이트로 이루어져 있다. 세 미술관 모두 도보로 이동 가능하며 함께 방문 시 입장권 할인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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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술관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다름 아닌 조명.

충분히 밝으면서도 눈이 전혀 피로하지 않은 조명이었다.

우리나라 미술관도 조명을 좀 밝혀주면 좋겠다.

 

 

그외에도 네즈미술관, 산토리 미술관, 메트로폴리탄(도쿄도)미술관 등 도쿄에는 개성 있는 미술관들이 다양하게 있으니 여행 일정에 맞춰 전시 정보를 찾아보고 마음에 드는 전시가 있다면 꼭 방문해 보길 권한다.

 

 

 

알고 보면 건축 맛집!


 

도쿄는 동네마다 분위기가 정말 다르다. 예컨대 고층빌딩이 시원시원하게 들어서 있는 긴자는 메트로폴리탄 도시 느낌이 물씬 나는 반면 코엔지는 소박하고 개성있는 작은 건물들이 아기자기 모여있다. 도쿄를 걸을 때는 길을 찾는 지도 앱만 쳐다보지 말고 길가의 건물을 자세히 보길 바란다. 지역에 따른 특색이 있어서 건축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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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닥다닥 초밀착해서 붙어있는 도쿄 건물들

 

 

앞서 소개한 미술관들 역시 건축적으로도 무척 흥미롭다. 국립신미술관은 파도처럼 굽이치는 유리 창문들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움집처럼 지어진 건물 입구도 독특하고 꼭대기 층에서 보는 내부 모습도 미래적이면서 우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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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_21 디자인사이트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지은 건물로, 마치 종이접기를 한 것과 같은 건물 외관도 재밌지만 이에 따른 내부 모습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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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양미술관은 프랑스 건축의 대가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건물로, 근대 건축의 간결함과 합리성, 기능성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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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즌 뮤지엄은 아래와 같이 전시실 중앙을 통유리로 뚫어서 아래층까지 보이도록 개방감을 준 내부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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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음향을 자랑하는 클래식 공연장


 

일본은 미술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 시장도 우리나라보다 크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클래식 시장이기 때문에 서양의 명문 악단과 아티스트는 아시아 투어의 거점을 일본으로 삼는다. 두터운 클래식 팬층을 지닌 나라답게 프로그램도 다양하며 라인업도 화려하다. 그 원인인지 결과인지, 일본의 클래식 공연장은 유럽의 유명한 홀에 못지않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음향을 자랑한다. 따라서 일본을 방문하는 클래식 팬이라면 여행 시기에 맞춰 공연을 보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나는 도쿄를 대표하는 클래식 콘서트홀인 산토리홀과 도쿄오페라시티에서 공연을 본 적이 있다. 두 곳 중에서는 도쿄오페라시티의 음향이 단연 뛰어났다. 이곳의 내부 구조는 슈박스(신발상자처럼 네모나고 좁게, 높이 지어진 공연장 형식)로 지어졌는데, 피라미드처럼 천장이 삼각형으로 높이 솟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홀 내부 벽과 천장은 오로지 음향을 위해 하나하나 세심하게 조각되었다는 인상이다. 이곳에서의 피아노 소리는 풍부하고 아름다운 잔향 속에서도 모든 음이 조금도 뭉개지지 않고 또렷하게 들린다. 마치 세공사가 음표를 하나하나 예쁘게 깎아낸 듯한 소리다. 보통은 울림이 좋으면 아티큘레이션이 뭉개지고 울림이 너무 없으면 소리가 건조하기 마련인데 도쿄오페라시티는 잔향과 아티큘레이션, 두 가지를 전부 완벽한 밸런스로 잡은 경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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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에도 듣기에도 경이로운 도쿄오페라시티.

김남돈 음향 컨설턴트에 의하면 "음향 전문가로서 짜증 날 정도로 잘 지어진 홀"이라고 한다.

(<음악저널> 23년 12월호 김남돈 음향 컨설턴트 인터뷰 중)

 

 

일본 공연장들은 보통 공연 1~2시간 전에 로비 문을 개방하는데, 이때 작고 귀여운 오픈식(?)을 진행하기도 한다. 직원이 공연장 앞에서 오르골을 돌려서 미니 연주회를 해준다던가 시그니처 음악을 틀어준다던가 하는 식이다. 도쿄오페라시티의 경우 인터미션이 끝나고 2부 시작을 알리기 위해 실제 직원이 손수 종을 쳐 준다. 이런 나름의 전통(?) 의식 덕분에 공연을 보러 가는 설렘이 한층 더 높아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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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녹음 방송이 아닌 진짜 종소리라는 게 귀엽고 재밌었던 기억.

 

 

예술 외에도 일본을 여행하면서 느낀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뭐든 사람이 직접 한다’는 사실이다. 워낙 아날로그 사회로 유명한 일본 사회지만 여행 중 마주한 일상에서 이를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특히 일본 지하철을 탈 때마다 역무원을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일본 지하철에는 언제나 역무원이 한두 명씩 있는데, 도쿄의 철도 시스템이 아무리 복잡해도 길을 잃거나 티켓이 꼬이면 언제든 역무원에게 다가가 물어볼 수 있다는 게 여행객으로서는 참 안전하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모든 것이 기계화되어 역무원이 거의 없다시피 한 지 오래된 우리나라 지하철과는 사뭇 다른 정다운 분위기다. 역무원들이 항상 제복을 잘 갖춰 입고 모자까지 꼭 쓰고 있는 게 왠지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 가득해 보이기도 한다. 

 

또 하나 도쿄를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바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새삼 복지가 좋은 나라에는 장애인들이 길에 많이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휠체어 장애인이 지하철에서 내리려고 할 때 역무원이 정차역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열차와 승강장 사이를 이어주는 발판을 손수 깔아서 길을 만들어주는 장면이 무척 인상 깊었다. 


한 나라를 여행할 때 그 나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와 유명한 유적지를 가보는 것도 좋지만, 나는 좀 더 일상적인 풍경과 현지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발견하는 걸 즐긴다. 그래서 목적지 없이 동네를 걸어 다녀 보기도 하고 현지 사람들이 즐기는 것, 이를테면 예술 향유를 해 본다. 여행객이 짧게 머물며 잠시 체험해 보는 수준에 그칠 뿐이겠지만,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어떻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이해하는 것이 여행의 진정한 묘미라고 생각한다.

 

도쿄 예술 여행을 하면서 예술 향유 자체도 물론 즐거웠지만, 그 안에 녹아있는 일본인들의 아기자기한 향유 문화와 생활 양식을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황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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