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있는 그대로? 보는 그대로! -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전시]

내가 보는 방식에 따라 시점도 달라지기 때문에 대상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글 입력 2023.04.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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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색감과 다양한 매체의 활용으로 유명한 영국의 예술가 데이비드 호크니를 필두로 영국의 팝아트를 소개하는 전시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가, 한국과 영국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여 2023년 7월 2일까지 DDP 뮤지엄에서 진행된다.


'Swinging London'은 1965년 잡지 『보그(Vogue)』에서 편집자 다이애나 브릴랜드가 말한 문장에서 유래된 용어로, 기존 문화에 도전하는 창의적인 젊은이들의 주도로 아주 역동적으로 변화하던 1960년대의 런던을 지칭하는 말이다. 팝아트 역시 그러한 변화 속에서 탄생했다. 팝아트가 기존의 관습에 대항하는 '사회적 예술'의 특성을 강하게 띠는 것은 이러한 영국의 시대정신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London is the most swinging city in the world at the moment.

런던은 지금 이 순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이다.

 

- 다이애나 브릴랜드 -


 

얼마 전에 문화초대로 다녀온 전시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에도 팝아트를 다루는 한 챕터가 있어 흥미롭게 보았는데, 이번 기회에 팝아트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설레는 마음을 안고 DDP로 향했다.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전에는 데이비드 호크니를 비롯한 14명의 영국 팝 아티스트들의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각 섹션마다 적혀 있는 자세한 설명과 무료로 제공되는 도슨트를 통해 영국의 사회·문화적 배경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기반으로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전시에는 팝아트가 발전할 수 있도록 시대를 이끌었던 예술가 그룹인 인디펜던트 그룹다양한 팝 아티스트들의 작품, 그리고 예술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던 인쇄술이라는 기술적 배경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었지만, 이번 리뷰에서는 전시의 주인공이자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보았던 예술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展 전시 구성

 

섹션 1 / 1960s Swinging London

섹션 2 / 인디펜던트 그룹

섹션 3 / 팝 아트의 창시자 리차드 해밀턴

섹션 4 / 대중문화와 팝 아트

섹션 5 / 브리티시 팝 아티스트 I

섹션 6 / Swimming Pool

섹션 7 / 데이비드 호크니와 물

섹션 8 / 팝 아트가 사랑한 인쇄술

섹션 9 / 브리티시 팝 아티스트 II

섹션 10 / 이 시대 가장 사랑받는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

 

 

 

 

팝아트 : 덧 없고 소모적인, 그러나 섹시하고 요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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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나는 왠지 원색에 가까운 선명한 색채와 더불어 그 안에 담긴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이 떠올랐다.


내가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모습도 그와 같았다. 강렬한 붉은색으로 칠해진 벽에는 커다란 글씨로 팝아트의 정의가 쓰여 있었다. 영국의 예술가이자 팝아트 운동의 창시자 중 한 명이었던 리차드 해밀턴이 말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팝아트

대중적이고 덧 없으며 소모적인,

저비용으로 대생산이 가능한,

젊고(청년층을 대상으로 하고) 위트 있는,

섹시하고 요염하고 매력적인

빅 비즈니스이다.

 

- 리차드 해밀턴 -

 

 

예술이라면 왠지 품격 있고 심오한 세계를 이해해야 할 것만 같지만, 해밀턴에 의하면 팝아트라는 예술은 그와 정반대의 무언가에 해당한다. 상업 예술이 예술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킨다는 비판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며, 오히려 예술 역시 하나의 매력적인 비즈니스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정의에서부터 당대의 편견과 관습을 깨려던 '스윙잉 런던'의 시대정신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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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전시 벽면에는 커다란 영국 국기와 함께 왁자지껄한 도시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는데, 말 그대로 급변하는(swinging) 런던의 한복판으로 이동한 기분이었다. 이곳에서는 영국의 저명한 팝아트 예술가들의 연력을 읽어볼 수 있었고, 그중 한 명이 바로 데이비드 호크니였다.

 

호크니의 작품 역시 거대한 '스윙잉 런던' 문화운동의 한 줄기로 등장한 것이기에, 그의 작품 세계와 브리티시 팝아트를 하나의 전시로 엮어내었다는 전체 전시의 취지를 알 수 있었다.

 

 

 

데이비드 호크니 : 눈은 언제나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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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의 일렁이는 물결로 가득 찬 커다란 방을 지나고 지나고 나면, '물'로 가득 채운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 세계가 이어진다. 그림의 청량한 색감들이 단숨에 눈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사실 내게 그보다도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그가 이렇게나 물을 사랑했던 이유이다.

 

 

물은 '어느 지점'을 볼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에요.

반사된 부분이나 물 표면을 보다 갑자기 물 속을 볼 수도 있죠.

 

- 데이비드 호크니 -

 

 

호크니는 물의 이미지가 가지는 순간성을 탐구해 나간다. 물은 빛을 반사하고, 그림자를 만들고, 심지어 사물을 왜곡하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쉽게 출렁이기 때문에 그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1초보다도 짧은 시간동안 뿐이다.

 

그는 이러한 '흐름'을 포착하고자 했다. 물의 모습은 빛에 따라 달라지기에 다양한 시점에서, 다양한 시각에 수천 장의 사진을 찍어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가 촬영한 폴라로이드에는 비슷한 듯 전혀 다른 물의 모습이 가득하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것은 인화된 사진들, 그러니까 정지된 순간순간들 사이의 시간적 공백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너무 빠르게 변화해서 실제 눈으로는 담아내지 못했던 움직임과 그 사이의 시간을, 정지된 사진을 통해 비로소 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데이비드 호크니의 관심사가 '시간'에서 '시각'으로 건너가는 것이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하나의 시각은 세상을 완벽하고 정확하게 포착하지 못한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이 가지는 시각마다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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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후반부에서는 호크니가 '물'이 아닌 다른 대상들을, 보다 도전적인 형식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여러 장의 사진을 콜라주하는 기법을 활용하여 작품을 완성하였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사진을 조합하는 것은 결국 그림을 그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 사진을 어떻게 배치할지 고민하는 것은 결국 화가가 어떤 그림을 그릴지 고민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콜라주 방식을 통해 한 사물을 포착하는 수많은 관점을 평면적인 캔버스 위에 표현해보고자 했다.


 

눈은 언제나 움직인다.

눈이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 없다.

눈이 움직일 때 내가 보는 방식에 따라 시점도 달리지기 때문에

대상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실제로 다섯 명의 인물을 바라볼 때 그곳에는 1천개의 시점이 존재한다.

- 데이비드 호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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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가 탐구하고 표현하고자 했던 본질은, 사람마다 볼 수 있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한 사물의 다양성이었던 것이다.

 

기존의 문화적 가치관에 대항하는 새로운 가치관이 힘을 얻어가는 과도기를 경험했을 호크니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어느 쪽이 옳고 그름을 나누기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표현하고자 했던 그의 예술관이 한편으로는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다.

 

호크니의 말처럼 이 세상에 있는 그대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가 바라보는 세상이 존재할 뿐이다. 아마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그가 세상에서 본 것일 텐데, 호크니가 본 세상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공존하는 세계였나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의식적으로 알아챌 필요가 있겠다.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가 나를 설명하고, 당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가 당신을 설명해준다.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과 함께 글을 마치고 싶다.

 

 

이 점을 기억하세요.

그림을 보는 것은 항상 인물입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거기에는 항상 작은 거울이 있습니다.

모든 캔버스에는 어딘가에 작은 거울이 있습니다.

 

- 데이비드 호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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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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