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바다 위 낭만적인 보호자 - 도서 '세상 끝 등대'

등대는 곧 삶이다
글 입력 2023.04.06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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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처음 들었던 감상은 ‘미학적’ 이라는 것이었다.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접해본 수 많은 책들 중 손꼽히게 우아하고 미학적인 책이다. 동시에 그와 비례하는 쓸쓸함과 고요함을 담고 있는 독특한 책이기도 하다.


쥘 베른의 소설 ‘세상 끝 등대’를 인용하며 시작하는 이 책 ‘세상 끝 등대 : 바다 위 낭만적인 보호자’는 스페인의 작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편집자인 곤살레스 마시아스가 집필한 등대에 관한 책이다. 34개의 등대에 관한 이야기, 삽화에 지표와 정보를 붙인 지도첩(atlas)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띠고 있다. 

 

책을 열자마자 펼쳐지는 다양한 등대들의 삽화가 가장 먼저 내 눈을 사로잡았다. 고요한 듯 고독해 보이는 다양한 등대들의 삽화를 훑어보고 나니 마치 한 편의 아름다운 사진첩을 감상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등대에 관한 이야기를 쓰게 된 저자의 이유도 흥미롭다.

 

 

언젠가 나는 ‘노스 오브 사우스’라는 밴드의 음반 커버 디자인을 의뢰받았다. 그때 나는 소행성에 세워진 등대의 모습을 문득 떠올렸다. 하늘을 떠다니는 소행성 위 등대가 어두운 우주를 환히 비추고 있는, 꿈같은 이미지였다. 그 밴드의 음반에 딱 어울릴 것 같았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전 조사를 하는 동안, 나는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이미지에 시선을 사로잡혔다. 등대에서 뿜어져 나와 주변의 어둠을 몰아내는 한 줄기 빛을 담은 사진이었다. 

 

- '세상 끝 등대' 저자 서문 중


 

그야말로 무언가에 꽂혀버린 ‘덕후’의 마음으로 만든 책인 셈이다. 나도 무언가를 깊이 좋아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저 좋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에너지로 책까지 펴낸 저자의 결심과 행동력에 다시금 박수를 보낸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건 종종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무한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낭만과 현실 사이



태초의 인류는 진보와 발전을 거듭하며 지금까지의 생존을 쟁취해냈다. 과학 기술과 산업의 발전, 인류의 성장, 새로운 세상. 아주 오늘날의 현대인들이 귀 아프게 듣고 있는 화두가 아닐까 한다. 4차 산업혁명이니 인공지능이니 chatGPT니, 오늘 아침만 해도 인공지능의 발달로 앞으로 사라지게 될 인류의 직업 50선을 듣고 나오는 참이다. 많은 직업들이 지금도 사라지고 있고 사라질 예정이지만, 그만큼 새로운 직업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어서일까. 여러 변화들이 새삼 내게 와닿기도 하고 잘 와닿지 않기도 하는 알 수 없는 세상에 나는 살고 있다.


등대지기는 기술의 발달로 가장 먼저 직접적으로 사라진 직업 중 하나이다. 인공위성과 GPS를 통한 네비게이션, 수중 음파 탐지기, 레이더 같은 새로운 해상 통신 기술이 등장하면서 바다를 떠다니는 선박들은 더 이상 등대의 낭만적인 보호를 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동화된 해상 신호기들은 점점 늘어났고 등대 중 일부는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관광용으로 둔갑해버렸다. 해상 감시와 선박 보호의 상징이었던 등대지기도 이제 대부분 일터를 떠났다. 이들이 살았던 삶의 방식은 머지 않아 영영 사라지게 될 것이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내게 등대란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광지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주변에 등대지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흔히 볼 수 없었을뿐더러, 저렇게 외딴 등대가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 될 수도 있다는걸 생각조차 못 해봤다. 


34개의 등대의 이야기는 곧 34개의 삶의 이야기 그 자체였다.

 

바다를 밝히는 불빛이었던 그들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것만 같았다.




등대는 곧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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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발치에서 바다와 함께 바라보는 등대는 참 낭만적이다. 새파란 수평선 위 우뚝 홀로 솟아있는 등대는 그러나 등대지기에겐 삶 그 자체였다. 그리고 삶은 낭만이 아닌 현실에 가깝다. 


등대지기의 삶은 매우 고독했다. 고독하고 거친 등대에서 펼쳐졌던 삶의 이야기는 종종 날 놀라게 했고 또 매료시켰다. 우뚝 솟은 등대 위 홀로 짠내 나는 바다를 바라보던 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종종 표류하던 이들이 닿기도 했고, 거칠고 성긴 환경에 누군가는 외롭고 쓸쓸히 목숨을 잃기도 했으며, 영영 등대에서 나오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고립과 구조, 악천후, 파도, 추방,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수도 없이 교차했던 등대는 그러나 언제나 고요하게 치열했다. 


종종 지도 위 표시 되어 있는 외딴 섬 위의 등대를 볼 때마다, 그 드넓은 바다의 면적을 나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다는 생각에 잠긴다. 감히 내가 헤아릴 수도 없고 가늠할 수 조차 없는 바다와 그보다 더 넓었을 어느 날의 고독을 상상해보려 애쓴다. 집채만 한 파도가 몰아치는 날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등대에 밧줄로 자신을 꽁꽁 묶었다던 어느 등대지기의 거친 손을 생각해보려 노력한다. 


34개의 가지각색의 모양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등대 중 어쩐지 내 마음에 쏙 들었던 등대는 라임록(Lime Rock) 등대였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평생을 등대지기로서 살아온 아이다 루이스라는 소녀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때론 표류하는 사람들을 구조하고, 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와 함께 등대지기 일을 했던 이 작은 소녀는 결국 어른이 된 이후에도 평생을 등대지기로 삶을 보냈다. 라임록 등대는 곧 아이다의 삶이었으며, 아이다는 평생 등대를 사랑했다. 


 

 

희망의 불빛을 비추며



이 책을 덮을 때쯤엔 등대를 사랑했던 작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개인적인 작가의 감상이나 생각을 덧붙이지 않았음에도, 삶의 이야기들은 그 자체만으로 어쩐지 따스하고 은은한 온기를 띄며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고요하고 고독했을 어떤 삶의 이야기는 읽는 것 만으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었다.


과거 등대는 어두운 길을 밝히는 길잡이와 같은 역할이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 위에서 가야할 길을 안내해 주는 유일한 등불과 같은 존재였다. 세월이 흘러 등대지기도 떠나고 등대의 역할조차 퇴색되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등대’가 이토록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것 때문 아닐까. 한치 앞조차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가야할 길을 비춰주는 유일한 빛이란, 누구나 꿈꾸고 바라는 희망과도 닮아있곤 하니까. 


시간이 흘렀고 세상은 바뀌었다. 등대도 등대지기도 없이 이젠 폐허와 같은 흔적만이 남겠지만, 드넓은 바다와 끊임없이 치는 파도는 여전하다. 잔잔하고 때론 거친 파도가 치는 무한한 바다를 떠올릴 때마다 그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을 등대를 언제나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외딴 등대에서 헌신했던 분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알리는데 이바지한 분들게

이 책을 바칩니다


- 세상 끝 등대 중

 

 

[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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