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0세기 거장들의 라운드 테이블 -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전시]

전시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을 감상한 후
글 입력 2023.04.02 14: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포스터_최종_루드비히.jpg

 


# 라운드 테이블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라운드 테이블’은 둥근 탁자 혹은 원탁회의를 뜻한다. 영국 아서왕 전설에서 유래했다. 카멜리아드 왕 레오데그란스가 딸 기니비아와 아서가 결혼할 때 100명의 기사와 함께 선물한 것으로 되어 있다. 주변에 150명의 기사가 둘러앉을 수 있는데 그 자리에 상하 구별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참석자가 우열 없이 자유 토론하는 ‘라운드 테이블(콘퍼런스)’은 이후 정치·경제 용어로 두루 쓰였다. 이해가 상충되는 개인이나 국가가 원탁에 둘러앉아 협의하며 타협점을 찾는 회의라는 뜻이다. 학술과 회의 용어로도 자리 잡은 라운드 테이블은 대화와 협조 정신을 표방한다. 참가자 간 의견 조정을 목적으로 하는 타협적 성격이 강하고 갈등적 상황에서 수평적 자유 토론을 거쳐 합의·중재에 이르는 과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갑자기 ‘라운드 테이블’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강남 마이아트뮤지엄에서 개최되는 <루드비히 컬렉션 –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전시를 감상한 후 내가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린 단어이다.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 마르크 샤갈, 잭슨 폴록 등 20세기 거장들의 작품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지금부터 내가 소개할 장소이다.

 

동시대를 향유하던 작가들이지만 그들이 작품에 사용하는 색감, 그림체는 상당히 달랐다. 상충되는 화풍을 지니고 있지만 “미술”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어떠한 타협점을 찾고 있는 것 같은 전시였다. 정확히 ‘라운드 테이블’의 목적과 상응하지 않는가. 20세기 미술 거장들의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콘퍼런스를 통해 어떠한 타협점을 찾고 싶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 같지만 다른 과일 바구니들 


 

‘20세기 미술 라운드 테이블’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예시로 조르주 부르크와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특별히 전시장의 2부 ‘피카소와 동시대 거장들 (Picasso and Environment)’에 설치된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자.

 

여기 이곳에 ‘과일 바구니’라는 같은 소재 아래 다른 그림을 그린 두 사람이 있다. 바로 조르주 부르크파블로 피카소. 파블로 피카소가 파리에서 활동을 할 당시에 함께 활동을 했던 조루즈 브라크. 두 거장 모두 기하학적인 모형을 사용해 새로운 차원의 그림을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조금 더 자세히 그들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명확한 차이가 보인다.

 

 

[크기변환]KakaoTalk_20230402_010106020.jpg

유리병, 레몬, 과일 그릇 Pichet, citron, compotier1928, Oil on canvas, 40.5×121 cm

 

 

조르주 부르크가 그린 과일 바구니를 먼저 살펴보자. 옅은 색채, 정확한 명암 구분, 그리고 천의 질감을 생생하게 살려내어 실제로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식탁의 모습이 떠오른다. 심지어 레몬은 반으로 갈라져 있다. 이미 누군가 손을 댔거나 혹은 요리를 위해 잘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사람은커녕 사람과 관련된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정물’ 멈춰있는 물체들을 억지로 더 멈춰놓은 듯 그 그림 안에 멈춰있다. 그렇기에 그림자와 원근법을 제외하고는 이 그림의 생동감을 느끼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색의 조화가 아름답다. 레몬의 노란색도 다른 색깔과 어울리는 옅은 노랑으로 표현해 포근한 느낌을 선사한다.

 

 

[크기변환]파블로 피카소 과일그릇.jpg

만돌린, 과일 그릇, 대리석 주먹 Mandolin, Fruit Bowl, Marble Fist1925, Oil on canvas, 97.5×131 cm

 

 

반면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을 살펴보자. 동일하게 과일 그릇이 등장하지만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포근했던 브라크의 작품과는 달리 차가운 느낌이 가장 먼저 든다. 과일 그릇에 담겨 있는 과일들도 희미하게 그려져 구분을 하기가 어렵다. 더불어 사람의 손으로 추정되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섬뜩하게도 그 손은 잘려나간 것처럼 보인다. 어둡게 표현하여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 사람의 팔이 아니길, 모형이길 간절히 바랐다. 한 가지 더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비파로 추정되는 악기와 그 옆에 놓여 있는 악보이다. 과일 그릇과 함께 놓여있지만 이 식탁은 단순히 먹기 위한 식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군지는 몰라도 이 식탁의 주인이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처럼 같은 ‘과일 바구니’를 소재로 하여 그림을 그려도 이렇게 다르게 표현이 된다. 만약 조르주와 피카소가 실제로 라운드 테이블에 둘러앉아 토론을 했다면 어떤 대화가 오고 갔을까? 각자 상상하기에 달렸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피카소는 조르주의 작품을 비판했을 것 같다. 식탁이 그저 아름답고 맛있는 것만 올려질 수 있는 것처럼 표현했다고 말이다. 반면 조르주는 가만히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사람의 손을 토막 내어 식탁에 올린 의도는 무엇인지 또한 사람의 것이 정물화에 속해 있는 이유도 피카소에게 질문하지 않았을까. 진실은 두 거장만이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이 두 작품을 번갈아가면서 볼 때면 그 둘의 대화가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그림체 속에서도 타협점은 분명히 존재했다. 바로 “과일 그릇”이다. 그들의 시작점이 그들의 타협점이 된 것이다. ‘과일 그릇’을 어떻게 표현해 내는지 그리고 그 외에 사물들의 종류와 배치는 다를 수 있어도, 과일 그릇을 중앙에 배치함으로써 그들 그림의 정체성은 동일하게 자리 잡혔다. 끝은 달라도 시작점은 달랐던 두 그림. 물론 서로를 견제하고 그린 그림은 아니었겠지만 계속해서 닮은 듯 다른 느낌을 주는 건 두 작품 사이에 똑같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과일 그릇’ 때문이 아닐까 감히 예상해 본다. 신기하지 않은가. 다른 그림, 같은 소재 그리고 그 같은 소재로 모인 두 거장. 이 모든 과정들을 두 눈으로 지켜볼 수 있어 영광이었다. 이 두 작가 외에도 다양한 작가들이 전시장 이곳저곳에서 그들만의 라운드 테이블을 펼치고 있으니 꼭 두 귀를 귀 기울이기를 바란다.

 

 

 

# 컬렉션의 위대함


 

내가 지금 이걸 볼 수 있는 것도, 이 그림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도 누군가의 집념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루드비히 컬렉션 –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은 2023년, 한독수교 140주년을 기념하여, 독일 쾰른 루드비히 미술관의 프리미엄 컬렉션으로 구성되었다. 20세기 이후의 컬렉션을 중심으로 매우 다양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루드비히 미술관은, 세계 세 번째 규모의 파블로 피카소 작품 컬렉션과 더불어 앤디 워홀 및 리히텐슈타인을 포함한 세계 최고 수준의 팝 아트 분야의 컬렉션을 가지고 있다.

 

총 78점, 전시회에서 엄선되어 우리와 마주하는 작품들의 수이다. 실제로 페터 루드비히(Peter Ludwig)와 이레네 루드비히(Irene Ludwig) 부부가 350점의 현대 미술품을 기증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관이 설립되었는데, 그중 거의 20%의 작품들을 우리가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단순히 거장들의 작품이어서가 아니라 미술을 사랑하기에 작품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컬렉터들이 있기에 우리가 지금도 거장들의 작품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컬렉션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끼는 전시였다.

 

혹시 아는가. 내가 지금 소장하고 있는 무언가가 후에 박물관 혹은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을지 말이다. 그 물건을 보며 관람객들은 날 실제로 마주할 수 없지만 바로 알 것이다. 그들이 보는 지금 이 물체가, 물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 그 자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린 더 소중히 지켜주어야 한다. 사진을 찍으러 가는 전시가 아닌 미술 작품을 소중히 아끼는 마음을 담아 감상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길 바라며 이만 글을 줄인다.

 


[임주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