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나의 프랑스 적응기 3] 프랑스의 미술관은 좀 더 시끄럽다 [여행]

예술이, 타인과 함께하는 감상이 가지는 힘
글 입력 2024.03.2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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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최근에 관람하고 온 전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떤 친구는 왜 그 전시를 보고 감동받았는지 진심이 묻어나오는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하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전시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회 문제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중에는 조금 다른 감상도 있는데, 보통 ‘내가 잘 몰라서’로 시작되는, 전시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다.

 

“작품은 좋아 보이긴 하던데, 나한테는 어려워서 잘 모르겠어. 아직 나한테는 예술이 너무 어려운 것 같아.”

 

사람마다 좋아하는 식당이 있고 별로인 식당이 있듯이, 자신에게 맞는 전시와 맞지 않는 전시가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들이 왠지 ‘자신이 잘 모르기 때문에’ 내지는 ‘자신이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시가 어려웠다고 여기는 것처럼 들려 내심 안타까움이 생겼다.

 

전시는 정말로 공부를 한 사람에게는 마땅한 더 많은 것이 보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려운 것’일 수밖에 없을까? 어렵고 난해한 전시를 보게 되면 우리는, 그저 인터넷에 검색을 해서 더 많은 정보를 찾거나 작품을 감흥 없이 지나치는 것밖에 할 수 없을까?

 

이것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전에, 내가 프랑스에서 전시를 감상하며 느꼈던 새로움과 낯선 시각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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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프랑스에 와서 놀란 건 전반적으로 한국의 미술관이나 전시장과 프랑스의 전시장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아니, 사뭇 다른 수준이 아니라 180도 다르다. 이곳의 미술관이 가지는 분위기나 역할은 마치 ‘동네 공원’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쉬는 날이나, 평일 오후가 되면 미술관은 가족 단위의 손님들로 북적인다. 나는 관광객이 없는 도시에 살아서 더더욱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이 보인다. 아이가 있는 부부 못지않게 노부부, 혹은 노인 관람객도 매우 많이 보인다. 아이들은 전시장에서 뛰어다니기도 하고, 호기심을 품고 질문을 던지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다른 관람객을 방해하지 않도록 지도하며 그림과 공간에 대해 설명한다. 이건 중국인 작가가 찍은 사진이야, 중국이라는 나라 알지? 이건 옛날 그림인데, 200년 전의 모습이야...

 

한 그림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많다. 이 작가는 내 생각에 어떤 사람일 것 같고, 이 그림의 표현은 어떻게 보여- 하며 자기 생각과 추측을 주고받는다. 작가의 의도와 맞고 틀린 것은 중요치 않아 보인다. 그저 자신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을 온전히 느끼고, 이를 다른 감상자와 나눌 뿐이다.

 

이것이 내가 미술관을 ‘동네 공원’에 비유했던 이유다. 사람들은 마치 공원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듯 가까운 사람과 함께 미술관 자체를 즐긴다. 미술이 공부해야 할 대상이기보다는 대화의 공공 소재가 된다. 미술관에 오는 일이 이토록 활기찰 수 있다는 것은 프랑스에서 처음 알았다.

 

그 때문에 프랑스의 미술관은 어쩐지 한국의 전시장보다 조금 소란스럽지만, 그래서 더 풍부하게 느껴진다. 한국의 미술관을 갈 때면 나는 어쩐지 저절로 엄숙해지곤 했었다. 고상하게 그림을 감상해야 할 것 같고, 검은색과 하얀색으로 이루어진 세련된 착장을 입고 가야 할 것만 같다. (실제로도 주로 그렇게 입고 간다) 한국도 프랑스 못지않게 좋은 전시가 많고, 사람들도 큰 관심을 보이는 추세지만, 프랑스처럼 많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전시는 아직 흔하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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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전시에 어려움을 느끼는 친구들로 돌아가자면, 이것은 마냥 전시된 그림이나 조각의 난해함을 넘어서서 미술관이 가지는 하나의 엄숙한 분위기가 곁들여진 문제라고 생각한다. 미술이 제각기 다른 얼렁뚱땅 추측의 소재가 되기보다는 ‘해석해야 할 대상’처럼 보이는 것이다. 바보 같더라도 재미있는 가설을 던지는 행위가 사라진 ‘관람’은, 정답은 존재하는데 풀이법은 영영 알 수 없는 난제와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단지 관람객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전시는 의미를 갖게 된다. 아름다움을 연구하고, 새로운 형태를 탐미하는 것은 창작자의 몫이지만 관람자가 무조건 그들의 노동 과정의 가치를 탐독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저 예술가로부터 남겨진 형태와 색조 앞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옆 사람과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미술이 가지는 가치를 만끽한 것이다.

 

결국 나는 내 눈앞의 예술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 자체에 주목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함께 온 사람과, 혹은 나 혼자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가며 미술관을 걷고 있는 그 순간을 즐기면 된다. 그림이란 공부하면 재미있는 대상이지만 감상은 공부가 필요 없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전시를 관람한다는 사실, 나의 감정과 감상이다. ‘어렵다’라는 넓고 포괄적인 표현도 감상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보다는 어떠한 당혹스러움을, 어떠한 낯섦을, 어떠한 생경함을 느꼈는지 돌아보는 것이 한껏 풍부할 테다.

 

바보 같더라도 내 생각을 두려워하지 말고 내뱉는, 뒤이어 타인의 추측에 귀를 기울이는 관람 문화가 우리에게 조금 더 익숙해지면 좋겠다. 다른 관람객의 관람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생각을 키우고 또 키운다면, 어려울 수는 있어도 기억에 남는 전시 관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예술이, 타인과 함께하는 감상이 가지는 힘이다.

 

 

 

박소은 컬쳐리스트 태그.jpg

 

 

[박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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