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행복이 뭐냐고요? 지금이요. [사람]

인생 중대사로 깨달은 진짜 행복
글 입력 2023.03.07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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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걱정하지 마. 밥 잘 챙겨 먹고 있어.”

 

의연한 표정과 담담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덜덜 떨리는 손은 미처 감추지 못했다. 아빠는 엄마를 부축해 집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엘리베이터는 뿌옇고 또 출렁거렸다.


여동생과 거실 식탁에 앉아 휴대폰과 시계만을 번갈아 봤다. 5를 가리키는 시침은 느리지만 정신없이 흘러갔다. 우주 한 공간에 버려진 우리는 시침과 맥박 소리에 의존했다. 나의 세상이 이대로 멈춰버린 게 아니라는 증거가 절실히 필요했다. 


깜깜한 새벽, 아빠는 엄마를 태우고 응급실로 내달렸다. 마약성 진통제 링거를 두 통 맞고도 숨 쉬지 못할 통증을 호소했지만, 수십 가지 검사 결과는 정상. 5시간 동안 총 세 명의 의사를 만났지만, 그들이 엄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아침 해가 뜨고 남들의 하루가 시작됐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같은 표정과 맥박으로 앉아있었다.


아빠는 엄마를 태우고 다시 한 시간을 내달려 서울 어느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10시간은 기다리셔야 해요. 앉아 계시기 힘들면 차에서 대기하세요.”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지. 외관상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해 보이는 엄마는 진료 대기 후순위로 계속해서 밀려났다.

 

독감에 걸렸을 때도, 코로나에 걸려 열이 40도가 넘는 와중에도 아픈 내색 하나 없던 엄마다. 응급실 대기실에서도 앓는 소리 없이 입술만 꽉 깨물고 죽을힘을 다해 참아냈다. 그리고 다른 응급환자가 올 때마다 대기 시간은 늘어났다.


방역 지침으로 병원에는 한 사람만 동행이 가능했고, 나는 전화 통화만으로 상황을 전해 듣는 처지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타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지인 A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A는 신경과 진료를 보는 게 좋겠다고 조언하며 응급실 대기 시간까지 알아봐 주었다. 또 아빠의 차가 병원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A가 엄마를 모시고 진료에 필요한 모든 접수 및 이동을 도왔다. 그렇게 진료 및 입원을 했고, 다시 이틀에 걸친 전신 검진이 진행됐다.


그렇게 받아 든 병명은 ‘섬유근육통’. 검사를 통해 가능성 있는 모든 질병을 배제한 후에야 알 수 있는 질병으로, 전신에 걸쳐 통증이 나타나지만, 실제로 손상이 되거나 이상이 생긴 곳은 없다는 게 특징이다. 다르게 말하면 발병 원인도 치료법도, 완치 시기까지 모든 게 명확하지 않다는 것. 예방할 방법도 없단다.

 

신체는 모두 정상이니 시술하거나 수술을 할 수도 없고, 여전히 진통제 효과도 없어 엄마는 누워있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일주일간 대여섯 시간도 못 자고 고통스러워하는 엄마를 보며 미친 듯이 관련 논문과 기사, 커뮤니티를 뒤졌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와 하염없이 기도하는 것뿐.


섬유근통의 발명 원인으로 스트레스와 바이러스 감염, 호르몬 변화 등이 '추정'된다. 주치의는 혹시 최근에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는 일들이 있었는지 물었다.

 

아빠는 아빠의 사업 내에서 생긴 여러 일들이 엄마를 힘들게 한 것 같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전달받은 나는 이제 두 달 남은 내 결혼으로부터 온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확신했고, 여동생은 자신의 공무원 준비로 인해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가족은 엄마의 아픔 앞에 각자 죄인이 되었다.


병원 앞에서 잠깐 엄마 얼굴을 보고 A와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집에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는 온통 행복한 사람만 있었다. 그 순간 편히 숨 쉬고, 이야기 나누고, 걱정 없이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엄마가 아프기 전날까지도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던 걱정과 근심들은 이제 생각해보니 우습기 짝이 없다. 결혼 준비를 하고 회사 생활을 하며 생긴 나름의 큰 사건들이 엄마의 아픔 앞에서는 그저 작디작은 일이 되어버렸다.


다행히 처방 약이 잘 맞았는지 몸이 스스로 치유를 시작한 건지 엄마의 몸 상태는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좋아졌다. 느릿한 회복에도 사소한 개선에도 나는 뛸 듯이 기뻤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엄마의 몸 상태를 확인했고, 매일 밤이면 감사 기도를 했다.


그렇게 2주 뒤 엄마는 퇴원했고, 매일 밤 병실 의자에서 쪽잠을 자던 아빠는 집에 도착해 밀린 잠을 하루 내리 잤다. 나와 동생은 엄마가 안방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벅차 빨개진 눈으로 시큰한 눈물을 흘렸다. 내가 얼마나 목청껏, 절절하게 울부짖은 일상이었나. 퇴근을 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탈 때, 집 문을 열 때마다 적막함에 눈물 흘리며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 평화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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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날, 엄마와 나

 

 

엄마는 그 뒤로도 꾸준히 회복해 한달 뒤 내 결혼식에서 하객 맞이를 하고, 화촉점화를 했다. 울지 않겠다던 엄마는 나와 끌어안고 ‘잘 살아’ 인사를 하며 눈물을 터뜨렸다.


짧은 기간에 갖은 중대사를 경험하며, 기쁨과 슬픔, 절망과 즐거움을 몽땅 느꼈다. 그리고 새삼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한 치 앞을 모르는 세상에서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지혜로운 건 지금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하면 좋을 텐데, ~만 되면 완벽할 텐데. 행복에 조건 달지 말자. 지금이 아니면 언제 행복하나요? 우리 가족 건강하고, 내 옆에 좋은 사람들이 있고, 밤공기는 맑고, 내일은 일요일이고.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김민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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