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월 20일 환경 일기 [문화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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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 내게 큰 변화를 준 '북저널리즘'을 읽고 쓴 일기이다.
북저널리즘은 기사의 정보를 정보에서 끝내지 않고, 독자를 생각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플랫폼이다. 이번 글은 북저널리즘의 <예견된 재난의 시대는 글로벌의 대응 모델이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라는 저널을 읽고 썼다.
해당 저널은 튀르키예 지진을 포함해 지금 지구에 일어나는 재난은 '범지구적' 문제이며, 각 국가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는 것이 아닌, 국경을 넘어 다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고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 재난의 시대가 왔다. 우리만 몰랐던 예정된 것들이다. 코로나로 세계 경제가 무너지고,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난방비가 올랐다. 이제 우리가 먹고 쓰고 낭비한 대가가 몰려온다. 튀르키예 지진을 보니 한국의 재해도 멀지 않음을 느낀다. 지구의 문제는 정권, 국경, 대륙으로 나눌 수 없다. 인간이 나눈 국경과 정권은 자연 아래에 있기에, 우리는 이 문제가 범지구적 사안임을 알아야 한다.
2. 답습되는 전쟁과 역사를 보다시피 인간의 이기적인 태생과 천성으론 '전체'를 보는 능력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북저널리즘에서 언급한 “정부는 글로벌 규모로 존재할 수 없기에 국가를 넘어서는 의사 결정 체계" 를 구축할 필요성에 나 또한 동의한다. 하지만 모두가 각자도생하는 시대에 과연 ‘구원’의 안전망을 갖출 수 있을까?
3. 불현 듯 기후운동가들의 미술관 시위가 떠오른다. 토마토 수프 범벅이 된 반고흐의 그림을 보니, 수차례 일어난 재난에도 문제를 깨닫지 못 하는 인류에 대한 그들의 분노가 느껴졌다. 예술과 향유가 팔자 좋게 보였음에 나도 조금은 동의한다. 훼손된 그림에 분노하는 사람들은 과연 훼손 된 지구에 분노하는가? 혹은 평안한가? 분노한다면 누구를 향해? 스스로를 향해?
4. 미디어의 유행을 보면 개인이 얼마나 지구에 관심이 없는 지 알 수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과 <수리남>을 보면 가히 개탄스러울 뿐이다. 콘텐츠 생산의 척도는 대중의 취향이다. 쏟아져 나오고 있는 한국의 영상 콘텐츠를 아무리 찾아봐도 인권과 지구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전무하다.
5. 개발도상국과 저소득국가의 재난은 누가 책임지는가? 선진국이 ‘선진국’이 되기 위해 쏟아낸 환경오염물질로 저소득국가만 죽어나간다. 당연한 소리지만 이들은 자연재해에 대비할 돈이 없다. 튀르키예 지진 사태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매일 환경 일기를 쓰기 위해 노력한다. 날마다 읽은 기사를 스크랩하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쓰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방식으로 지구의 오염을 기억한다. 지구 온난화에 무뎌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매일 쏟아지는 부정적인 기사에 스스로 포기하고 절망하곤 하지만, 포기할 수 없기에 매일 환경 일기를 쓴다.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사유하고, 기록해야한다. 그리고 실천해야한다.
내 집, 내 가족, 친구들, 그리고 지구가 소중하다면 말이다.
[김유빈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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