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구애로부터 벗어나 나를 해방시키자 - 연극 이백십일

진정한 자유로 나아가는 길
글 입력 2023.02.1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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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연극을 보고 왔다.

 

사전 정보 없이 보러간 연극의 공연명은 <이백십일>이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이백십일이라는 말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극의 내용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었다.

 

극에 등장한 인물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봤다. 천천히 떠올리는 동안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아! 이 연극은 이걸 이야기하고 있구나.

 

아무래도 인물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듯 하다. 이 연극은 인물로 시작해 인물로 끝나니 말이다.

 

 

포스터.jpg

 


연극에는 개척자인 게이와 로쿠, 순응자인 여관 주인과 종업원, 마지막으로 둘 사이에서 모호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회피자 도련님이 등장한다.

 

원작자인 나쓰메 소세키가 본인을 투영해서 창작한 인물이기도 한 개척자 게이는 위풍당당이란 말이 찰떡같이 어울리는 인물이다. 연극에 가장 먼저 등장해 온 무대를 휘황찬란하게 걸어다닌다. 팔은 하늘로 치솟을 듯 높이 올라가며 과장된 듯 화려한 발걸음은 머뭇거림없이 당당하다. 두 눈은 똑바로 부릅뜬 채, 정면을 강하게 쏘아붙이듯 응시한다. 줄로 머리를 단단히 고정한 것 마냥 고개를 푹 숙이는 일도 없는 그는 열정 그 자체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 나왔으면 불로 묘사됐을 법한 인물이다.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하고 싶은 일은 기필코 하고야 마는 불도저 같은 인물인 게이는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이다.


개척자 로쿠는 게이와는 다르게 어딘가 위축돼 보이는 인물이다. 발걸음은 총총걸음이며 겁에 질린듯 두 팔을 자주 오므리고 다닌다. 시선은 정면을 향하기 보다 아래를 향하는 일이 잦고 어깨는 축 처져있다. 언뜻보면 병약하고 소심해보이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못하는 쭉쩡이는 아니다. 적당한 유머감각, 능구렁이 담 타고 넘어가는 듯한 말투, 주위를 잘 살피는 세심한 감각을 타고난 로쿠는 게이와 함께 있을 때 제대로 된 시너지를 낸다. 로쿠는 함께 있는 누군가를 돋보이게 해주는 역할의 인물로 물과 비슷한 느낌을 가졌다. 로쿠는 게이보다 주도적인 성격은 덜하지만 게이가 생각치도 못한 부분을 짚어주고 조언을 하며 새로운 시야를 제공해준다는 측면에서 게이의 든든한 우군이다.

 

순응자인 여관 주인은 극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느릿느릿 여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만 할 뿐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는다. 보통 누가 이야기를 하면 한 마디 정도는 거들 법 한데 그는 일절 그러지 않는다. 그가 오랜 기간 기른 머리와 수염이 그의 성격을 대변하는 듯 하다. 온 얼굴을 뒤덮을 정도로 무성하게 자란 털을 전혀 관리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두는 그는 자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그저 관망하기만 한다. 지켜보되 개입하지는 않는다. 풍파가 몰아닥쳐도 항상 제자리를 유지하는 바위가 그와 잘 맞아보인다.

 

또 다른 순응자인 종업원은 명량하고 쾌활한 성격을 지녔지만 어째 세상사에 그리 밝지는 않다. 반숙의 의미를 모르고 맥주는 모르지만 아사히는 안다는 엉뚱한 종업원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단순한 사람이다. 이리저리 곡선을 탄 사람이 아니라 지금까지 굴곡없는 직선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 외에 것은 보지 않는 사람이지만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직관적인 사람이다. 호불호가 뚜렷하고 원하는 바가 명확하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게 눈에 훤희 들여다보인다. 짐작컨대 그에게 좋은 것은 돈이고, 싫은 것은 돈이 없는 사람일 테다.

 

마지막으로 회피자 도련님은 개혁적 성향의 인물이나 현실 속에선 제자리 걸음만 하는 인물이다. 그는 여관 방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정작 방 안에서 나가는 액션은 취하지 않는다. 돈에 구애받고 싶지 않다 말은 열심히 하지만 정작 돈에서 해방될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돈에 구애받는 제 자신이 싫습니다.

구애받지 않으려 요량을 피웠으나

이젠 어떤 요량을 피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선택한 건 해방이 아니라 회피다. 여기저기 도망다니면서 자신에게 부과된 의무를 피한다.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문제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눈을 돌리기만 바쁘다. 돌고 돌고 돌아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지만, 그는 용기를 내어 제대로 직면하지 못한다. 생각만 하고 실행은 하지 않는다. 결국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연옥 속에서 영원히 고통받는다. 구애 받지 않으려 애썼지만, 행동 없는 말 뿐인 그 다짐은 결국 자신을 구애하고 만다. 

 

 

"구애 받는 것은 고통입니다.

고통을 피하는 것을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구애는 하루면 끝날 고통을 

열흘로 연장시킵니다.

쓸데없는 고통인 셈이죠."

 

 

쓸데없는 고통을 겪는 동안 그는 외상이 아닌 내상을 입게 된다. 실제 다친 것이 아닌, 마음이 만들어낸 병이다. 그 병은 다시 자신을 옭아매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지지부진한 악순환의 반복이다. 그는 결국 구애받는 길을 택한다. 돈에 구애받기 싫어하던 그는, 돈에 구애받아 순응자가 된다. 그는 자신이 경멸하던 모습을 스스로가 답습하며 본인의 모순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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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와 로쿠는 아소산을 오르기 전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각자의 의견을 묻는다. 그 과정에서 둘의 의견은 대립되지만 서로를 가시로 찌르진 않는다.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며 수용할 건 수용하고 버릴 건 버린다. 물론 그 과정을 주도하는 건 게이다. 게이의 입김에 따라 로쿠는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기도, 한순간에 접어버리기도 한다. 

 

둘은 아소산에 올라가느냐, 마느냐를 가지고도 논쟁을 펼친다. 산행하기 썩 좋지 않은 궂은 날씨, 가만히 쉬지 않는 화산과 하늘에서 눈처럼 내리는 화산재, 하필이면 온갖 기상 이변이 다 일어난다는 '이백십일'날까지. 누가봐도 산행을 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지만 게이는 아소산을 오르기로 한다. 원하는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밀어붙이는 게이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 말릴 법도 하지만 로쿠는 되려 설득당해 산행을 같이 간다. 

 

밤에 산행을 감행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일지도 모를 궂은 날의 아오산 등산. 그들의 산행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어느 누가봐도 실패할 것이 뻔했고 누구 하나 죽지 않으면 참 다행인 일일 테다. 그들이 얻은 것은 '산행을 시도했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 뿐이다.

 

그렇게 다시 여관으로 돌아온 그들은 정신 못차리고(?) 다시 산행을 준비한다. 언뜻보면 저렇게 멍청한 짓을 왜 또 반복하지, 싶겠다만 아마 그들은 이번 산행으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조금이나마 알게 됐을 것이다. 

 

아마 다음번 산행도 실패할 것이다. 여전히 날씨는 좋지 않고 화산재는 하늘을 날고 몸 상태는 더 나빠졌으니. 산행을 시도할때마다 여건은 더 나빠질 전망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산행을 포기하지 않는다. 뻔히 실패할 것이 보이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직접 몸을 갖다대면서 산을 마주한다. 넘어지고 구르고 다치고 깨지며 피를 흘리는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들은 '세상의 시선'과 '한계'라는 구애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

 

이백십일은 시험의 날이다. 거대한 시련, 혹은 예상치 못한 난관. 현실에 순응할지, 개척할지에 영향을 미치는 건 궂은 날이 아니라 오로지 의지다. 의지 하나로 설명이 된다. 어쩌면 <이백십일>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강인하거나 연약한 인간의 의지 아닐까, 싶었다.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 잘못된 선택은 아니다. 때때로 순응은 위험신호를 적기에 감지해 우리 몸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게 해준다. 대책없는 개척은 되려 독이 될 수도 있다. 게이와 로쿠가 산행 중 생명을 잃을 뻔 했던 것처럼.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그런 앞뒤 분간없는 산행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

 

다만, 살면서 한번쯤은 무언가를 향해 온몸 내던져 보는 것도 괜찮겠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공부든 일이든 취미든 사랑이든 내 온 마음 다해 끝까지 밀어붙여보는 게 먼 훗날 돌이켜 봤을 때 후회가 없지 않을까. 머뭇머뭇거리다 시기를 놓치고,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으려다 자신까지 놓아버린다면 그것만큼 통탄한 일이 있을까 싶다.

 

 

[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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